목민심서

목민심서 67 - 임지에 데려갈 사람은 엄선해야 한다.

從心所欲 2021. 8. 14. 18:32

[이방운(李昉運) <빈풍칠월도첩(豳風七月圖帖)> 中 1면, 견본채색, 34.8 x 25.6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빈풍칠월도>는 『시경詩經』의 「빈풍칠월편」을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주(周)나라 농민들이 농사와 길쌈에 종사하는 생활을 읊은 일종의 월령가(月令歌)를 그린 것이다. 이 시가는 중국의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을 위하여 백성들의 농사짓는 어려움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 율기(律己) 제3조 제가(齊家) 5
빈종(賓從)이 많더라도 따뜻한 말로 작별하고 종이 많더라도 양순한 자를 고를 것이요, 사사로운 정에 끌려서는 안 된다.
(賓從雖多 溫言留別 臧獲雖多 良順是選 不可以牽纏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가정을 바로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제가(齊家)는 그 가운데 3번째이다.

 

종족 간에는 화목해야 하나 데리고 가서는 안 되며, 빈객(賓客)에게는 후하게 해야 하나 불러들여서는 안 되며, 겸종(傔從)은 노고가 있더라도 따라가게 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자들에게는 선물을 보내 줄 것을 약속하여 따뜻한 말로 만류시키고 관부(官府) 안에는 많은 친지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원망이 없을 것이다.

▶겸종(傔從) : 양반이나 부호가의 집안 업무를 관장하던 일종의 가신. 청지기 또는 겸인(傔人)이라고도 한다.

 

좌상(左相) 정홍순(鄭弘淳)이 평안감사(平安監司)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겸인(傔人) 중에 오랫동안 부지런히 일한 사람이 있어서 그는 당연히 따라갈 것으로 알고 사사로이 행장을 갖추었으나, 공은 이를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겸인은 울분한 나머지 병이 들었다. 그 후 반년 만에 체면을 불고하고 평안 감영(平安監營)으로 갔다. 공은 3일 동안 묵게 한 후 곧 돌려보냈는데, 아무것도 주지 않고 말 한 필만 주니 겸인은 더욱 분히 여겼다. 공이 임기가 차서 돌아왔는데도 그 겸인은 종적을 끊었다. 달포가 지나서 공이 불러 책망하고 낡은 종이 한 축(軸)을 주었다. 겸인은 더욱 불평을 품고 돌아와 어미 앞에 그 종이를 내던졌다. 어미가 펴 보니 기인공물(其人貢物) 2인의 교권(交券)이었다. - 기인(其人)이란 시탄(柴炭)과 횃불의 공급을 맡은 자다. -

▶정홍순(鄭弘淳) : 조선 문신(1720 ~ 1784).
▶기인공물(其人貢物) : 기인(其人)은 고려 때 지방 향리의 자제로서 서울로 뽑혀 올라와 일정한 역을 지는 동시에 자기 지방의 일에 대한 자문 역할을 했던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후 차차 기인의 성격이 변하여 조선시대에 와서는 궁중과 서울의 각 관사의 땔나무 따위를 바치는 역을 지게 되었다. 광해군 때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된 뒤로는 땔나무와 숯을 중앙에 납입(納入)하는 중간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공물인(貢物人), 공물주인(貢物主人) 등으로 불리어졌다. 교권(交券)은 공인(貢人) 영업 허가장에 해당한다.

 

노복(奴僕)들이 과실을 가장 잘 저지르므로 선량하고 충직한 사내종 1명, 계집종 2명만 골라가는 외에는 더 거느리고 가서는 안 되며, 혹시 가족이 많지 않으면 계집종 하나로도 좋다. 제오륜(第五倫)은 처가 몸소 부엌일을 하였고, 왕서(王恕)는 종을 데리고 가지 않았으니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범문정공(范文正公)이 수령으로 나갔을 때 여종 셋이 있었는데, 이부(二府)의 직을 역임하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한 명도 더 늘리지 않았고 또한 바꾼 적도 없었다.

▶제오륜(第五倫) : 중국 후한(後漢) 때의 관리. 회계 태수(會稽太守)로 있을 때에 받는 녹봉이 2천 석이었으나, 자신은 몸소 꼴을 베어 말을 사육하고 아내는 부엌일을 하였으며, 받은 녹봉은 1개월 양식분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왕서(王恕) : 명(明)나라 때 관리. 운남순무(雲南巡撫)로 나갈 적에 하인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서 “하인을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백성들의 원망을 살까 두려워 늙은 몸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온 것이다.” 하였다.
▶범문정공(范文正公) : 송(宋)나라 때의 명신 범중엄(范仲淹). 이부(二府)란 송대(宋代)의 추밀원(樞密院)과 중서성(中書省)을 말한다. 추밀원은 병사(兵事)를, 중서성은 문서를 관장한다. 추밀원 부사와 참지정사를 지냈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