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허균 19 - 한정록(閑情錄) 한적(閒適) 2

從心所欲 2021. 9. 2. 17:13

● 낙성(洛城) 안팎 60~70리 사이의 모든 도관(道觀)과 불사(佛寺)와 고적지(古跡址)와 별장 가운데 천석(泉石)이나 화죽(花竹)이 있는 곳은 놀아보지 않은 데가 없고, 좋은 술과 거문고가 있는 인가(人家)는 들러보지 않은 데가 없고, 도서(圖書)와 가무(歌舞)가 있는 곳은 구경하지 않은 데가 없다. 낙천(洛川)의 수재(守宰)로부터 포의가(布衣家)에 이르기까지 연유(宴遊 : 잔치를 베풀어 즐겁게 놂)할 일로 부르는 자가 있으면 또한 때때로 찾아갔다. 매양 좋은 계절, 좋은 경치나 혹은 눈 내린 아침, 달뜨는 저녁에 호사자(好事者)들이 서로 찾아올 때면, 반드시 그들을 위해 먼저 술항아리를 꺼내 마시고 다음엔 시 상자[詩篋]를 열어 놓고 읊으며, 술이 이미 거나해지면 이내 거문고를 가져다가 궁성(宮聲) 한 곡조를 타서 추사(秋思) 일편(一篇)을 노래한다. 《옥호빙(玉壺氷)》

 

● 당(堂) 가운데에 목탑(木榻) 4개, 소병(素屛) 1벌, 소칠금(素漆琴) 1장(張), 유서(儒書)ㆍ도서(道書)ㆍ불서(佛書) 각기 두어 권(卷)씩을 설치(設置)하여 놓고, 낙천(樂天 : 백거이(白居易))이 와서 좌주(座主)가 되어 우러러 산(山)을 구경하고 허리 구부려 샘물 소리를 들으며, 곁으로는 죽수(竹樹)와 운석(雲石)을 엿보되, 진시(辰時)로부터 유시(酉時)까지 매우 바쁘게 보내었다. 이윽고 경물(景物)로 인해 나의 심기(心氣)가 이끌리어 밖으로는 유유자적하고 안으로는 마음이 화평하여, 하룻밤을 묵고 나니 몸이 편안해지고 이틀 밤을 지내고 나자 마음마저 편안해지며, 사흘 밤을 지내고 나서는 마치 술에 취한 듯, 멍하니 정신이 없는 듯도 하여 도무지 그렇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되어버렸다. 《옥호빙》

 

● 장송(長松)과 괴석(怪石)이 황폐한 마을과의 거리는 10~20리 정도인데, 아주 좁은 길, 가파른 벼랑 밑으로 물을 건너가면 풀숲 사이의 좌측(左側)ㆍ우측(右側) 두서너 군데에 두세 인가(人家)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린다. 대나무 울타리에 초가집, 그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난초며 국화를 물가에 심고 때로 복숭아나무며 매화나무를 심어 놓으니 상월(霜月)과 춘풍(春風)에 날로 생각에 여유가 있게 된다.

아동(兒童)과 비복(婢僕)들은 모두 포의(布衣)와 단갈(短褐)을 입고서 땔나무와 마실 물을 공급하니 이로써 촌주(村酒)를 빚어 마신다.

책상에는 잡서(雜書)인 《장자(莊子)》ㆍ《사기(史記)》ㆍ《초사(楚辭)》ㆍ《황정경(黃庭經)》ㆍ《음부경(陰符經)》ㆍ《능엄경(楞嚴經)》ㆍ《원각경(圓覺經)》 등 수십 권뿐이다.

명아주 지팡이에 나막신 신고서 깊은 산골과 큰 냇물을 왕래하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소용돌이치는 여울을 구경하고, 맑은 연못을 감상하고, 높은 다리[橋] 위를 거닐고, 무성한 숲 속에 앉았기도 하고, 그윽한 구렁[幽壑]을 탐색하고, 높은 산봉우리를 오르나니, 이 어찌 즐기지 않고 죽을 수 있겠는가. 《징회록(澄懷錄)》

▶포의(布衣)와 단갈(短褐) : 베옷과 거친 베로 만든 짧은 옷

 

● 매양 새 지저귀고 꽃 떨어질 때면 흔연히 내 마음에 만족함이 있다. 이에 작은 종아이를 보내어 항아리에 든 백주(白酒)를 가져다가 이화자잔(梨花瓷盞)에 부어 마시고는 급히 시권(詩卷)을 가져다가 한바탕 유쾌하게 읽고서 음미하니, 흥취가 소연(蕭然)하여 세속(世俗)에 있는 줄을 모를 지경이다. 《옥호빙(玉壺氷)》

 

● 옛 초가집을 보수하고 도랑을 터서 샘물을 끌어들이고 빙 둘러 화목(花木)을 심어 놓고서, 날마다 그 사이에서 시가(詩歌)를 읊조리며, 친구와 만나 차를 달여 마시고 바둑을 두며 잔술이 방안에 가득 널려 있으니, 그 낙(樂)은 자못 속세(俗世)에 있을 바가 아니다. 또한 가래[鍤]를 가져다가 계천(溪泉)을 터서 채마밭[圃]에 물을 주고, 그 틈새에는 연못을 파고 그 주위에는 수목(樹木)을 심어 놓고서, 거닐면서 노래하고 앉아서 낚시질하며 청천(靑天)과 백운(白雲)을 바라보면서 이것으로 유유자적하니, 이 또한 아무 걱정 없이 여생(餘生)을 보내기에 만족하다. 《옥호빙》

 

● 한가하게 사는 것이 벼슬살이보다 훨씬 나은데 그 일은 한결같지 않다. 그 가운데 가장 편한 것은 더욱 더운 계절에서 볼 수 있다.

아침 일찍이 향(香)을 피우고 밥을 먹고 나서 두건(頭巾) 벗고 웃통과 아래옷과 짚신 등을 모두 벗어던지고는 등나무 와상(臥床), 대나무 안석[几]에 몸을 기대고 북쪽 창(窓) 아래 전전(展轉)하다가 맑은 바람이 때로 불어오면 도리어 너무 서늘함을 걱정하며, 책(策)을 끼고 잠자리에 들면 이내 깊은 잠이 든다.

그리고 서늘한 저녁에는 목욕을 끝내고서 지팡이를 짚고 이곳저곳을 서서히 거닐면서 연못에 가서 달을 구경하고 높은 데에 올라 바람을 쏘이며, 연(蓮)을 캐서 가시연밥[芡]을 따고 쪼갠 오이조각과 하얀 연뿌리로 안주하여 흰 막걸리 서너 잔 마시고서 거나하게 취하여 유유자적하니, 그 낙(樂)이 자못 하나 둘로 헤아릴 수 없다. 《경서당잡지(經鋤堂雜志)》

 

● 명산(名山)엔 능히 복거(卜居)할 수 없으니, 조그마한 산이 겹겹으로 둘러싸이고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에 나아가 땅 두어 이랑[畝]을 개간하고 삼간초가집을 짓고서, 무궁화나무를 꽂아 울타리를 만들고 띠[茅]를 엮어서 정자(亭子)를 만들며, 한 이랑에는 대나무를 심고 또 한 이랑에는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또 한 이랑에는 오이와 채소를 심는다.

이리하여 사벽(四壁)은 맑게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데, 산동(山童)을 시켜 원포(園圃)에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한다. 이에 의자 한두 개를 정자(亭子) 밑에 놓고는 책과 벼루를 끼고서 고적(孤寂)과 벗 삼고 거문고와 바둑을 가져다가 좋은 친구를 만류하며, 이른 새벽에 말을 채찍질하여 나갔다가 해 저물어 돌아오곤 하면 이 또한 노년(老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미공비급(眉公祕笈)》

 

● 예로부터 초야(草野)에 한가히 묻혀 사는 선비치고는 반드시 또 그와 도(道)를 같이하고 뜻을 같이하는 선비가 있어 서로 더불어 왕래하기 때문에 자락(自樂)할 수 있었다. 도연명(陶淵明 : 연명은 도잠(陶潛)의 자)의 시(詩)에,

昔欲居南村 옛날 남촌에 살고자 한 것은

非爲卜其宅 그곳에 복거(卜居)하기 위함이 아니라

聞多素心人 마음씨 고결한 사람 많다기에

樂與數晨夕 아침저녁 그들과 즐기려 함이라네.

 

고 하였고, 또,

 

隣曲時來往 이웃 마을 때때로 왕래하면서

抗言談在昔 서로 마주 대해 옛이야기 나누며

奇文共欣賞 좋은 글은 함께 감상도 하고

疑義相與析 의심난 것은 서로 변석도 했지.

 

라고 하였으니, 남촌(南村)이란 이웃이 어찌 용렬한 선비가 사는 곳이었겠는가.

두소릉(杜少陵 : 소릉은 당(唐) 두보(杜甫)의 호)이 금리(錦里)에 있을 때 또한 남촌의 주 산인(朱山人)과 왕래하면서 지은 시에,

 

錦里先生烏角巾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서

園收芋栗未全貧 밤이며 토란을 수확하니 가난하지만도 않구려.

慣看賓客兒童喜 손들을 자주 보아 아동은 기뻐하고

得食階除鳥雀馴 뜨락에서 먹이를 먹고 새들은 길들었네.

秋水纔添四五尺 가을 물은 겨우 네댓 자나 불어났는데

野航恰受兩三人 들 배는 꼭 두세 사람을 태울 만하네.

白沙翠竹江村暮 흰 모래 푸른 대숲 강마을 저물어 가는데

相送柴門月色新 서로 전송하는 사립문에 달빛이 새롭구나.

 

라고 하였고, 또,

 

相近竹參差 서로 가까워도 대[竹]는 들쭉날쭉하고

相過人不知 서로 지나면서도 사람은 알지 못하네.

幽花欹滿徑 그윽한 꽃은 기울어 길에 가득하고

野水細通池 들 물은 가늘게 못으로 통하누나.

歸客村不遠 돌아가는 손은 마을이 멀지 않은데

殘尊席更移 남은 술잔은 자리에서 다시 옮겨지네.

看君多道氣 보건대 그대는 도기(道氣)가 많은지라

從此數追隨 앞으로는 자주 따르며 모시리다.

 

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주산인(朱山人)이란 자는 진실로 보통 위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태백(李太白 : 태백은 이백(李白)의 자)의 ‘노성 북쪽의 범거사를 찾으려다가 잘못 창이 가운데 떨어졌다[尋魯城北范居士誤落蒼耳中]’는 시(詩)에는,

忽憶范野人 문득 생각난다. 범 야인이

閒園養幽姿 한가한 동산에서 그윽한 풍치 기르겠지.

 

라 하였고, 또,

 

還傾三四酌 서너 잔 술을 거뜬히 들이마시고

自詠猛虎詞 스스로 맹호사를 읊조리네.

近作十日歡 가까이는 십일 간의 환희를 가졌지만

遠爲千歲期 멀리는 천년의 기약을 만들었다오.

風流自簸蕩 풍류가 매우 호탕하니

謔浪偏相宜 해학하기가 서로 마땅하구나.

 

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범야인(范野人)이란 자도 진실로 쓸모 있는 무리였으리라. 《학림옥로(鶴林玉露)》

 

[민화 고사인물도 8폭 병풍(故事人物圖八幅屛風) 中 , 지본담채, 국립민속박물관]

 

● 향(香)을 피우고 글을 보니 인사(人事)는 다 끝났다. 주렴(珠簾) 밖엔 꽃잎 떨어지고 소나무 끝에 달이 떠올랐을 때 종소리가 갑자기 들려오자 창문을 밀어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니 은하수와 뜬구름이 대낮보다 훨씬 빛난다. 심려(心慮)를 맑게 씻어서 효상(爻象)의 밖에 득의(得意)한 자가 아니면 혼자서 이 말을 깨달을 수가 없다. 《소창청기(小窓淸記)》

 

● 이태백(李太白)의 시에,

‘청풍명월은 일전이라도 돈을 들여 사는 것이 아니다.[淸風明月不用一錢買]’라고 하였는데,

동파(東坡 : 소식(蘇軾)의 호)의 적벽부(赤壁賦)에는 이르기를,

“저 강상(江上)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듣노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노니 빛이 되도다. 갖자 해도 금할 이 없고 쓰자 해도 다할 날이 없으니, 이것은 조물(造物)의 무진장이다.”

라고 하였으니, 동파(東坡)의 뜻은 대개 이태백의 시구(詩句)에서 나온 것이다. 대저 바람과 달은 돈을 들여 사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가져도 누가 금할 이가 없는 것이니, 태백과 동파의 말이 진실이다.

 

그러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사람 되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도 1년 동안에 또한 몇 날도 되지 않는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낙(樂)을 안다 할지라도 혹은 세속 일에 골몰하여 정신을 빼앗기거나 혹은 장애(障礙)로 인하여 비록 그를 즐기려 해도 즐기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렇다면 일없이 한가하게 있으면서, 이미 돈을 들여서 사는 것도 아니요 게다가 그를 가져 보았자 누가 갖지 못하게 금할 이도 없는 이 청풍명월을 만나가지고도 즐길 줄을 모른다면 이는 자기 스스로 장애를 만들어낸 것이다. 《경서당잡지》

 

● 집에는 뽕나무와 삼이 있고 밭에는 메벼와 찰벼가 있고 물가에는 버들과 연꽃이 있으며, 높은 공중엔 창을 던져 높게 낮게 날아가는 물오리와 기러기를 쫓고 깊은 물엔 낚싯줄 던져 헤엄치는 상어와 다랑어를 쫓으니, 이는 내가 내 힘으로 생활을 영위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바이다.

쉬려 하니 높은 나무의 무성한 그늘이 있고, 깔고 앉자 하니 풍성한 풀의 그윽한 향기가 있으며, 산에 올라 구름을 헤치고 천지(天地)의 기변(奇變)을 관람하고, 샘물을 희롱하여 달을 타고서 혼탁한 먼지를 깨끗이 씻으니, 이런 일은 내가 그 권태(倦怠) 속에 처하여 스스로 뜻을 이루는 데에 즐기는 것이다. 《옥호빙(玉壺氷)》

 

● 이목(耳目)을 맑게 텅 비워 기관(機關)을 설치하지 않고서, 마음이 안한(安閑)하고 몸이 활발하게 쭉 펴이기를 기대한다. 삼경(三更)이면 잠자고 고용(高舂)이면 일어나서, 고요한 집 밝은 창 아래 경사(經史)와 거문고와 술동이를 죽 늘어놓고 스스로 즐기다가, 흥(興)이 나면 작은 배를 띄우고 나가서 창(閶)을 돌며 소리 내어 시가(詩歌)를 읊고 강산(江山)의 사이에서 고적(古跡)을 찾아보고 회상한다. 차[茶]와 술은 족히 시름을 풀 수 있고, 순채[蓴]며 벼[稻]며 물고기[魚]며 게[蟹]는 족히 입에 맞을 수 있으며, 게다가 또 고승(高僧)과 은군자(隱君子)며 불사(佛寺)요 승경(勝景)이 많고, 집에는 원림(園林)이 있어 진기한 꽃이며 기괴한 돌이며 굽은 연못이며 높은 대각(臺閣)이며 물고기와 새가 있으므로, 거기에 정신이 팔려 날이 저문 것도 모를 지경이다. 《옥호빙》

▶고용(高舂) : 해질녘. 글로 봐서는 ‘(해가) 높이 솟음’의 뜻인 고용(高聳)의 오기 같기도 하다.

 

● 어떤 사인(士人)이 몹시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香)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되 날이 갈수록 더욱 성의를 다하자, 하루 저녁에는 갑자기 공중에서,

“상제(上帝)께서 너의 성의를 아시고 나로 하여금 너의 하고자 하는 바를 물어오게 하였다.”

는 말이 들리므로, 사인이 대답하기를,

“제가 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작은 것이요 감히 과도하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라건대, 이 인생은 의식(衣食)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山水) 사이에 유유자적하다가 죽었으면 만족하겠습니다.”

하니, 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이는 천상계(天上界) 신선(神仙)의 낙(樂)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귀(富貴)를 구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으니, 이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내가 보건대, 세상에 빈천(貧賤)한 자는 기한(饑寒)에 울부짖고 부귀한 자는 또 명리(名利)에 분주하여 종신토록 거기에 골몰한다. 알건대, 의식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의 극락(極樂)이건만 천공(天公)이 매우 아끼는 바이기에 사람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필문규두(蓽門圭竇)에 도시락 밥 한 그릇 먹고 표주박 물 한 잔 마시고서 고요히 방 안에 앉아 천고(千古)의 어진 이들을 벗으로 삼는다면 그 낙(樂)이 또한 어떠하겠는가. 어찌 반드시 낙이 산수 사이에만 있겠는가. 《금뢰자(金罍子)》

▶필문규두(蓽門圭竇) : 사립문의 가난한 집.

 

● 飽食緩行初睡覺 배불리 먹고 느리게 거닐다 막 잠에서 깨어나니

一甌新茗侍兒煎 아이가 향기 좋은 차 한 잔을 달여 오네.

脫巾斜倚繩床坐 두건 벗고 비스듬히 승상에 나앉으니

風送水聲來耳邊 바람이 귓가로 물소리를 불어오누나.

 

라고 하였는데, 이는 배진공(裴晉公 : 진공은 당 나라 배도(裴度))의 시(詩)이고,

細書妨老讀 잔글씨는 늙은이가 읽기에 거북하고

長簟愜昏眠 긴 평상은 깊이 잠들기에 족하구나.

取簟且一息 평상 가져다가 한 번 쉬려할 제

抛書還少年 책을 던지니 다시 소년일세.

 

라고 한 것은 반산옹(半山翁 : 왕안석(王安石))의 시이며,

 

相對蒲團睡味長 포단에 서로 마주한 채 조는 맛 진진하여

主人與客兩相忘 주인과 손[客]이 서로를 잊었네.

須臾客去主人覺 잠깐 사이 손은 가고 주인은 잠에서 깨니

一半西窓無夕陽 서쪽 창 한 허리에 석양빛이 졌구나.

 

라고 한 것은 육방옹(陸放翁 : 방옹은 송(宋) 육유(陸游)의 호)의 시이고,

 

謮書已覺眉稜重 글을 읽자 하니 미골(眉骨)이 무겁고

就枕方欣骨節和 잠자리에 드니 뼈마디가 편안하구나.

睡去不知天早晩 자느라 하늘의 이르고 늦음도 모르는데

西窓殘日已無多 서쪽 창에 남은 햇빛 벌써 얼마 없구나.

 

라고 한 것은 오(吳) 나라 승(僧) 유규(有規)의 시이며,

 

老讀文書興易闌 늙어서 글 읽으면 흥이 무르녹기 쉬우니

須知養病不如閒 병을 요양함엔 한가함이 제일임을 꼭 알지라.

竹床瓦枕虛堂上 대나무 와상 돌베개로 텅 빈 마루에 누워

臥看江南雨後山 강남 쪽 비 갠 산을 건너다보네.

 

라고 한 것은 여형양(呂滎陽 : 형양군공(滎陽郡公)에 봉해진 여희철(呂希哲))의 시이고,

 

紙屛瓦枕竹方床 종이 병풍 돌베개 대나무 침상에

手倦抛書午夢長 게을리 책 던지고 낮잠을 자는구나.

睡起莞然成獨笑 잠에서 깨어나 빙그레 혼자 웃음 짓노니

數聲漁笛在滄浪 어부의 피리소리 창랑에서 들려오네.

 

라고 한 것은 채지정(蔡持正 지정은 송(宋) 채확(蔡確)의 자)의 시이다.

 

나는 게으름 피우는 것이 버릇이 되어 매양 서책을 대할 때마다 반드시 누워서 쉬곤 한다. 그리하여 효선(孝先)을 조롱하는 손이 있을 때는 문득 이 효선의 고사(故事)를 읊어서 스스로 해명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매양 침열(枕熱)이 괴로워서 두서너 번씩 엎치락뒤치락한다.

뒤에 전배(前輩)의 말을 보니,

“형공(荊公 :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진 왕안석(王安石))이 낮잠을 즐겼는데 여름철에도 항상 방침(方枕)을 사용하므로 어떤 이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형공이 ‘오래 졸다가 훈김이 일어 베개에 열이 나면 한쪽 냉(冷)한 곳으로 바꿔 베기 위해서이다.’ 했다.”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낮잠 자는 맛을 아는 자가 아니면 쉽게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계신잡지(癸辛雜識)》

▶효선(孝先) : 후한(後漢) 시대 변소(邊韶)의 자(字). 변소는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인데, 그가 일찍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그의 제자(弟子)가 조롱하기를 “변효선은 배[腹]가 뚱뚱하게 살이 쪄 가지고 글 읽기는 싫어하고 낮잠만 자려 한다.” 하자, 변소가 가만히 그 말을 듣고는 즉시 대응하기를 “내 뚱뚱한 배는 오경(五經)이 들어 있는 상자요, 잠을 자려는 것은 경사(經事)를 생각하기 위함이다. 잠잘 때는 주공(周公)과 꿈에 서로 만나고 고요히 있을 때는 공자(孔子)와 뜻을 같이한다.” 하였다. 《後漢書 文苑 邊韶傳》
▶침열(枕熱) : 베개가 뜨듯한 것.

 

● 花竹幽窓午夢長 꽃과 대나무 그윽한 창에 낮 꿈이 진진하니

此中與世暫相忘 이 가운데 세상과 잠시 서로 잊었다네.

華山處士如容見 만일 화산처사를 만나게 된다면

不覓仙方覓睡方 선방은 그만두고 수방을 찾으리.

▶선방(仙方)은 선인(仙人)의 방술(方術), 수방(睡方)은 수면법.

 

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잠자는 데도 방법이 있는 것인가.

희이(希夷 : 송(宋) 진단(陳摶)의 별호)의 말은, 온 세상 사람에게 혼(魂)과 신(神)을 떠나는 것이 곧 부동(不動)이라고 한 데에 불과한 것이다. 그가 남긴 교경(敎經)에는 곧 ‘번뇌(煩惱)의 독사(毒蛇)가 너의 마음속에 들어 있으니 그 독사가 나가버려야만 편히 잠을 잘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근세(近世)의 서산(西山) 채계통(蔡季通 : 송(宋) 채원정(蔡元定)의 자)의 수결(睡訣)에 이르기를,

“졸 때는 몸이 기울어서 굽고 깨면 몸이 곧게 펴지니 잠자는 데 있어 조만(早晩)을 때에 맞춰 하되, 먼저 마음이 잠든 뒤에 깊은 잠을 잔다.”

라고 하였는데, 회옹(晦翁 : 주희(朱熹)의 호)은 이에 대해 ‘이는 고금(古今)에 발명하지 못한 묘(妙)이다’ 하였다.

 

초여름 원림(園林)에서 살살 부는 바람에 술이 깨자 마음 내키는 대로 이끼를 쓸고 돌 위에 앉아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대나무 그늘에서 햇빛이 새어 나오고 오동나무 그림자는 구름을 뚫고 올라간다. 이때 잠깐 서궤(書几)에 기대고서 눈으로 본 바의 시치(詩致)를 가지고 이리저리 탁마하여 문장을 만든다면 족히 운치 있는 가영(歌詠)이 될 것이요, 붓을 끌어다가 동산음(東山吟)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혹 천뢰(天籟)가 맑게 터져 나오고 학(鶴)의 울음소리가 창공을 가로지르며, 둥둥 뜬구름이 대각(臺閣)에 부딪고 일천 산봉우리에 비가 내릴 때, 침상(寢床)에 들어 낮잠을 잔다면 쇄락한 깊은 꿈이 또한 운치를 얻을 것이다. 《소창청기(小窓淸記)》

▶동산음(東山吟) : 진(晉) 사안(謝安)이 죽림(竹林)이 무성한 동산(東山)에 별장을 짓고 거기에 은거(隱居)하면서 자질(子姪)들을 모아 놓고 시회(詩會)를 가졌었다. 그때의 운치 있는 놀이를 가리키는 듯하다.
▶천뢰(天籟) : 바람 소리, 빗소리, 새 소리 같은 대자연의 소리.

 

● 반죽림(斑竹林) 가운데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청석궤(淸石几) 위에 몸을 기대고서, 갖고 있는 도서(道書)와 범서(梵書)를 혹 네댓 자 교수(校讐)도 하고 혹은 한두 장(章)을 외기도 한다. 차[茶]는 그리 정세(精細)하지 못하나 찻잔은 항상 마르지 않고, 향(香)은 그리 좋지 못하나 꺼지지 않고 계속 탄다. 짤막한 거문고는 곡(曲)은 없으나 줄[絃]은 있고, 긴 노래[謳]는 가락[腔]은 없으나 소리는 있으며, 격발(激發)한 기운은 숲 그늘에서 터져 나오고 좋은 바람은 물가로 보내주니, 이는 만일 희황상인(羲皇上人)이 아니면 분명 완적(阮籍)의 형제간일 것이다. 《암서유사(巖棲幽事)》

▶희황상인(羲皇上人) : 태고(太古)시대 사람. 속세를 떠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완적(阮籍) :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죽림7현의 한 사람.

 

● 산(山)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름지기 붉은 난간[欄]에 푸른 휘장[幄]이며 밝은 격자창(格字窓)에 짤막한 돛대의 조그마한 배 한 척을 갖추고 그 배 안에다 도사(圖史)와 정이(鼎彝)와 주장(酒漿)과 천포(荈脯)를 뒤섞어 싣고서, 가까이는 봉묘(峯泖)에 이르러 그치고, 멀리는 북쪽으로 경구(京口)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전당(錢塘)에 이르러 그치되, 바람이 알맞게 불고 길이 편리하거든 이내 고인(故人)을 찾아가며 혹 만류하는 자가 있으면 하룻밤 동안 얘기를 나누거나 열흘 동안 술을 마시는 것도 무방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산수(山水)가 있는 곳을 만나거나, 혹은 고승(高僧)과 야인(野人)의 집[廬]을 만나, 죽수(竹樹)가 무성하고 초화(草花)가 서로 비치며 복건(幅巾)과 장극(杖屐)이 서로 마주하여 있는 자리에서, 풍광(風光)이 맑고 시원하고 수월(水月)이 공허하고 맑으며 쇠피리[鐵笛] 한 소리에 흰 갈매기가 너울너울 춤을 추려는 광경을 구경한다면, 이 또한 시끄러운 속세를 피하여 손[客]을 사절하는 한 계책이 될 것이다.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