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17 - 중국 고대서론1

從心所欲 2018. 5. 9. 18:03

서예는 한자(漢字)를 대상으로 시작되었기에 서예는 태생적으로 중국이 본류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선조들은

모두 중국 서예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글씨를 썼고 추사도 중국 서예가들의 만남과 교류를 통하여 글씨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는 서예에 대하여 어떤 담론들이 있었는지

주마간산격으로라도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씨를 쓰는데 기본이 되는 규칙을 정하고, 글씨를 쓰는 이치를 논하는 것을 서론(書論)이라고 하며 또한 

서론은 서예의 심미원칙의 요점이기도 하다.

중국의 서예는 후한 말이 되어서 하나의 예술로서 독립성을 인정받았으며, 서론은 위·진(魏·晉 : 220 ~ 420)

시대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당대(唐代)에 이르러 다양한 서론서가 나와 이론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중국 고대 서론은 매우 방대하다. 2천년을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인사들이 서예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였기에, 그 다양한 깨달음과 주장들은 간단히 정리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큰 줄기에서

간추리면 대략 일곱 가지의 명제를 뽑을 수 있다. 이러한 명제들은 기본적으로 심미론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개중에는 기법론과 창작론, 감상론까지도 포함한다. 각각의 명제에 속하는 수많은 주장을 소개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명제 자체를 소개하는 것조차 결코 간단치가 않다. 각 명제의 주요 내용을 동문선 발행, 곽노봉 선주

「중국고대서론」의 내용을 요약, 인용하여 대략적으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골기론(骨氣論)

서론(書論)에서 골(骨)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골력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필획에 내재된 힘이며, 이로부터

근(筋). 즉 '서법적 필의(筆意)'라는 말이 파생된다. 또한 기(氣)는 기세, 기운, 기백 등과 서예의 여러 요소 중에서

신기(神氣)와 서권기(書券氣) 및 서예의 정신적 의취인 기미(氣味) 등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근(筋)

까지 포함한 골(骨)은 서예의 비교적 형상적인 점과 획의 형태나 질감 그리고 힘을 말한다면, 기(氣)는 서예의

형상 가운데 비교적 추상적인 형식감에서 정신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쪽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골기론을 좁은

의미로 해석할 때는 골력에 관한 기법과 의의 및 미학의 독창적인 이론이라고 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글씨는 근골이 우선(書以筋骨爲先)이라는 골력론, 글씨는 기가 제일(書以氣味爲第一) 이라는 기론(氣論),

골과 기가 서로 합하고 사고와 정신이 합한다(骨氣相合 思與神會)는 주장 등을 포함한다.

 

당태종 이세민1 <진사명(晉祠銘)>


2) 신채론(神彩論)

신채론은 서예의 이론에 있어 형태와 정신의 관계를 체현(體現)하는 이론이다. 서예의 신채는 회화에서 전하고

있는 정신과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회화에서 정신이라는 것은 주로 자연 중에서 구체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생명의 정신을 묘사하거나 자연에 작가의 정신을 이입시키는 것인 반면, 서예는 일만 가지의 다른 것을 포괄하여

하나로 만든다는 점에서 다르다.

서예에서의 형태는 자연적인 한자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자연의 모습을 흉내 낼 수 없다. 따라서

서예에서 신채라는 것이 비록 글자의 형태와 시각적인 감각을 통한 것이지만 중심을 이루는 것은 역시 작가의

정신을 전달하는 데 있다.

신채론에는 '정신과 퐁채가 으뜸이며, 형태로 정신을 전한다(神彩爲上 以形傳神)', '정신을 으뜸으로 하며,

형태를 버리고 정신을 얻는다(精神爲上 捨形得神), '옛 것을 변화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고, 글씨는 나의 정신에

들어간다 (化古爲我 書入我神) ' 는 주장들이 포함된다.

 

3) 자연천취론(自然天趣論)

'自然天趣'의 경지는 중국 고대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로 숭상되는 경지로 서예에서도 중요한 심미학적

이론이다. 이러한 미학 사상의 근본은 전국시대의 노장사상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면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는 대교약졸(大巧若拙: 큰 기교는 졸렬함과 같다)이나 대음희성(大音稀聲: 정말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라든지, 「장자」에서 자연스럽고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아름다움을 숭상하고 조탁2하면서 조작하는 심미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노장의 이러한 미학사상은 이후에 고대 문학이나 예술의 근본적인 미학

정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고대 서론에서 '자연천취론'은 다음의 네 가지 방향으로 귀결된다.

① 無意于佳乃佳

'아름다움에 뜻을 두지 않았을 때 비로소 아름답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서예가들이 창작을 함에 있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정신을 설명한 것으로 자연천취를 실천하려는 근본이기도 하다.

② '逸品' 說

고대 서론에서는 서예의 최고 경지를 말할 때 항상 '일(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본래 '방종(放縱)'을

가리키는 것으로, 방종은 진부한 법도에 구속을 받지 않고 뜻을 따라 나아간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후세에

이르러서는 마음에 작용이 없는 한가로움을 뜻하는 '안한(安閑)'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일품(逸品)'이라는 말의 근본에는 이러한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逸品'이란 말이 처음 쓰여진 것은

양나라 때 바둑을 가리키는 말에서 비롯되었으나 당나라 때에 이르러 이것이 문학 창작의 품격을 품평하는데

사용되었다.  당나라의 이사진3은 「서후품書後品」에서 시서화를 품평하면서 종래의 9품 등급 위에 '逸品'을

두어 평가기준의 새로운 지침으로 삼았다. 서론에서   '逸品'과 '神品'은 서로 연관관계가 있는 말로, 격조를

논할 때는 흔희 '逸品'을  '神品'의 위에 올려놓는다.  '逸品'은  '神品'의 기초 위에 천진난만함을 더하여

강조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③ 精能之至反造疏淡/熟後求生

높은 경지의 자연스럽고 진솔한 작품을 창작하려면 반드시 '무의(無意)'와 '천연(天然)' 그리고 '정미하고

익숙한 필법'에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그래서 고도의 자연적인 창작정신과 정미하고

익숙한 기법 사이의 이론 중에서 '자연천취설'이 중요시 된다. 소동파의 '정미하고 능숙함이 지극하여

오히려 성기고 담담한 데로 나아가려 한다( 精能之至 反造疏淡)'는 것이나 동기창의 '익숙한 뒤에 생동감을

구한다(熟後求生)', 유희재4의 '교묘함으로부터 교묘하지 않은 것을 구한다(由工求不工)'는 등의 이론은

바로 이러한 것을 설명한 말들이다.  '무의(無意)'와 '천연(天然)' 을 설명한 이런 말들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

멋대로 하는 '임의(任意)'가 아니라 서예가가 기법을 익혀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경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④ 拙者勝巧

'巧拙論'은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미학관에 그 연원을 둔 것이다. '巧'의 개념은 '拙'의 개념과

상반되는 것으로 모든 범주에서 '잘 다듬어 꾸미는 것'과 '공교로움을 얻는 것'이라는 개념이 바탕이다. 그에

반하여 '拙'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고 진솔하면서 소박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만 황정견5은 서예를 말하면서

'졸박함이 교묘함보다 많아야 한다'고 하였고 부산(傅山)6 같은 인물은 '졸박할지언정 기교를 부려 꾸미려

하지 말라(寧拙毋巧)'고 까지 주장하였다.



 

  1. 중국의 역대제왕 중에는 글씨를 잘 쓰는 왕이 적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당태종 이세민은 서예에 대한 조예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글씨는 정신으로 정갈한 혼을 삼아야 한다. 정신이 만약 화목하지 않으면 글씨는 형태와 법도가 없게 된다고 했다. [본문으로]
  2. 조탁[彫琢, 雕琢]:조각탁마(彫刻琢磨)의 준말로 '새기고 쪼다'는 뜻. 비유적으로 문예(文藝)에서 '퇴고를 가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는 물론 내용과의 적절한 조화보다는 오로지 문채를 다듬고 수식하는, 이른바 문식(文飾)에만 골몰한 나머지 천연(天然)·질박(質朴)·평담(平淡)을 중시하는 시문의 풍격과는 상충되는 부정적 비평용어로 원용된다.(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셔에에서는 글자의 모양을 중시하여 꾸미려 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는 자연적인 것과 대치되는 인위적인 것을 지칭한다. [본문으로]
  3. 중국 당대의 화가. 서화론가. 불도 ∙ 귀신을 잘 그렸다. 시서화에 대해 품평을 했으나 현존하는 것은 『서후품(書後品)』 뿐이다. (미술대사전(인명편),1998., 한국사전연구사) [본문으로]
  4. 1813년 ~ 1881년. 청나라 강소(江蘇) 흥화(興化) 사람. 천문과 산법(算法), 자학(字學), 운학(韻學) 등 정통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으며 문예를 논하는 안목에도 탁월한 점이 있었다.(중국역대인명사전) [본문으로]
  5. 황정견(1045~1105)은 복송 때의 시인이자 서예가로 소동파의 문하생이었다. 행서와 초서를 잘 썼고 용필이 기이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 유명한 송사대가(宋四大家)의 한 사람이 되었다. 서예에 관한 글로 論書가 있는데 논리가 정당하며 자못 탁월한 견해가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문으로]
  6. 최고의 서예가로 항상 이름이 오르기는 하나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명나라 말에서 청나라 초의 인물이다. 의학과 도교, 불교, 학문, 시, 서화 등의 학문을 깊고도 넓게 연구하였으며 서예에 관하여는 사녕사무(四寧四毋)를 주장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