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70 - 음식 사치는 재앙을 부르는 일이다.

從心所欲 2021. 9. 6. 07:15

[이방운(李昉運) <빈풍칠월도첩(豳風七月圖帖)> 中 4면, 견본채색, 34.8 x 25.6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빈풍칠월도>는 주(周)나라 농민들이 농사와 길쌈에 종사하는 생활을 읊은 일종의 월령가(月令歌)인 『시경詩經』의 「빈풍칠월편」을 그린 것이다. 이 시가는 중국의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을 위하여 백성들의 농사짓는 어려움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 율기(律己) 제3조 제가(齊家) 8
음식을 사치스럽게 하는 것은 재화(財貨)를 소비하고 물자를 탕진하는 것이니 재앙을 불러들이는 길이다.
(飮食之侈 財之所糜 物之所殄 招災之術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가정을 바로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제가(齊家)는 그 가운데 3번째이다.

 

후한(後漢) 공분(孔奮)이 고장(姑臧)의 수령이 되었는데, 오직 늙은 어머니만은 아주 진수성찬이었고 처자들의 밥상에는 파와 겨자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공분을 조롱하기를,

“기름 속에 넣어두어도 스스로 윤택할 줄 모른다.”

하였다.

 

조어(趙峿)가 합천 군수(陜川郡守)가 되어 청렴한 절조가 비길 데가 없었다. 군수로 있을 적에 아들과 사위, 노비(奴婢)들이 왕래하는 경우에는 모두 자기 양식을 가지고 왔다. 또 그 고을에 은어(銀魚)가 났는데, 여름철에 고기가 썩게 되더라도 처자들에게는 먹지 못하게 하였다.

▶조어(趙峿) : 세종 때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문신

 

후당(後唐) 때 유찬(劉贊)의 아버지 유빈(劉玭)이 현령이 되었고, 유찬은 그때 비로소 입학하였는데, 청포(靑布) 저고리와 바지를 입혔고, 식사 때마다 자기는 고기반찬을 먹으면서 유찬에게는 따로 나물 반찬을 차려 상 아래에서 먹게 하면서,

“육식은 임금이 주신 녹이다. 너도 먹고 싶거든 부지런히 공부하여 국록(國祿)을 받도록 하여라. 내가 먹는 육식은 네가 먹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유찬은 힘써 공부하여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청포(靑布) : 푸른 빛깔의 베

 

호수안(胡壽安)이 영락(永樂) 연간에 신번지현(新繁知縣)이 되었는데, 벼슬살이할 적에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 아들 자휘(自徽)가 문안드리기 위해 와서 한 달 동안 묵으면서 닭 2마리를 삶아 먹었다. 호수안이 노하기를,

“음식을 밝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천하게 여긴다. 나는 벼슬살이한 지 20여 년이 되도록 항상 사치함을 경계하고 있으나 오히려 끝을 잘 맺지 못할까 걱정하는데, 네가 이처럼 먹기를 좋아하니 내게 누(累)가 되지 않겠느냐.”

하였다.

▶영락(永樂) : 중국 명나라의 제3대 황제인 영락제 때의 연호(1403 ~ 1424년)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