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3조 제가(齊家) 10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이것이 집을 바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
(干謁不行 苞苴不入 斯可謂正家矣)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가정을 바로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제가(齊家)는 그 가운데 3번째이다.
내 지위가 존귀해지면 내 처자들부터가 모두 나를 막아 속이고 저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아비를 공경하지 않는 처가 없고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는 아들이 없는데, 어찌하여 막고 속이고 저버리는 마음이 있겠는가.
도리를 아는 자가 드물기 때문에 안면에 끌리기도 하고, 혹 뇌물에 유혹되기도 하여 청탁이 행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부녀자의 인(仁)이라는 것이다. 혹 살을 찌르는 듯한 통절한 참소[부수지참(膚受之讒)]로 어느 아전을 제거하라 하고 혹은 쓸모없는 어떤 사람을 재목[반목지용(蟠木之容)]이라고 천거하기도 하고, 혹 누구의 송사는 여론이 원통하게 여긴다고 말하며, 혹 누구의 옥사는 판결이 잘못되었다 하여, 아래에 있는 간사한 사람들이 온갖 계교로 뚫어내어 이간을 붙이면 인정 많은 아내나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술책에 빠져서 스스로는 공론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사사로이 고자질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이와 같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부수지참(膚受之讒) : 말하는 사람이 몸소 당하는 것처럼 간절하게 하는 참소.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침윤(浸潤 : 점점 스며드는 듯함)의 참소와 부수(膚受 : 직접 당하는 듯함)의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으면 밝다고 이를 수 있다.” 하였다. ▶반목지용(蟠木之容) : 《사기(史記)》에 “구불텅하게 서린 큰 나무 뿌리는 괴이하게 생겼으되 만승(萬乘)의 기구가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면, 좌우에서 먼저 조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로, 쓰일 수 없는 사람이 주변의 청탁 덕분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 |
이런 말을 들을 때에는 선뜻 믿지 말고, 오직 공리(公理)로 따져서 서서히 살피도록 하라. 만약 그 말하는 바가 과연 진실이라면 형적은 나타내지 말고 잠자코 헤아려 선처하고, 만약 말하는 것이 본시 간인(奸人)들의 계책에 의한 것이라면 경위를 캐내고 숨은 진상을 들추어내되 본 사건 외에 청탁한 죄까지 부가해서, 자기의 마음을 명백히 보이어 크게 징계를 행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처자들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니 그들의 말은 반드시 충성될 것이라 생각하면 몹시 잘못된 것이다. 처자도 그러한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양계종(楊繼宗)이 가흥군(嘉興郡)을 맡아 다스릴 때 마부[圉卒]가 삶은 돼지머리를 보내왔는데 그것을 부인이 받았다. 양계종이 돌아와서 그것을 먹고 어디서 온 것인가를 물으니 부인은 사실대로 고하였다. 양계종은 크게 후회하고 북을 두들겨 부하 이속들을 불러놓고,
“양계종이 집단속을 잘못하여 처로 하여금 뇌물을 받아 자신을 불의에 빠지게 하였다.”
하면서, 조협환(皁莢丸)을 먹어서 토해낸 후 그날로 처자들을 돌려보냈다.
▶조협환(皁莢丸) : 토하게 하는 약. |
살피건대, 이 일은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돼지 값을 후하게 주고 몰래 집안사람들을 경계하여 다시는 뇌물을 받지 말도록 하며, 그래도 만약 고치지 않거든 남모르게 서서히 보내는 것이 좋다. 겸손은 지극한 덕(德)이지만 겸손을 소문내면 덕을 손상하고, 청렴은 고상한 행동이지만 청렴을 소문내면 거짓된 행동이 되는 것이다. 매양 청렴한 선비의 전기(傳記)를 보면 인정에 가깝지 않은 행동은 도리어 이름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군자가 본받을 것은 아니다.
고려 유응규(庾應圭)는 조행이 곧고 견고하였다. 일찍이 남경(南京) - 지금의 양주(楊州). - 의 쉬(倅)로 있을 때 정사에 청개(淸介)함을 숭상하였다. 그의 아내가 해산 후에 유종(乳腫)이 심했는데 오직 나물국만 먹을 따름이었다. 어떤 아전이 몰래 꿩 한 마리를 선물하였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평소에 남의 선물을 받지 않았는데 어찌 내 구복(口腹)을 위해 남편의 청덕(淸德)에 누를 끼칠 수 있겠는가.”
하니, 그 아전은 부끄러워서 물러갔다. - 쉬(倅)는 판관(判官)이다. -
▶쉬(倅) : ‘으뜸의 바로 아래인 버금’이란 뜻으로 수령 다음의 벼슬자리를 가리키는 말. |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벼슬살이할 때 청백하였다. 어느 관인(官人)이 자기 아내가 뇌물을 받아 비방이 있음을 걱정하자, 공이,
“부인의 소청을 한 가지도 들어주지 않으면 비방이 그칠 것이다.”하니, 그 관인이 크게 깨닫고 그 말대로 하였다. 관인의 부인은 늘 김공(金公)을 욕하면서,
“저 늙은이가 저만 청백리가 되었으면 그만이지 왜 남까지 본받게 하여 나를 이렇게 고생하도록 하는가.”
하였다. - 정재륜(鄭載崙)의 《인계록(因繼錄)》에 보인다. -
이공 안눌(李公安訥) - 호는 동악(東岳). - 이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선영(先塋)이 면천(沔川)에 있었다. 공의 아들 유(梄)가 면천에서 죽자, 유의 어머니가 분곡(奔哭)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도중에서 만나 빨리 돌아가도록 하고서,
“내가 지금 한 도를 다스리고 있으니 나의 부녀자들이 내 도계(道界)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하였다. 준엄하여 사정을 두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선영(先塋) : 선산(先山).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분곡(奔哭) : 먼 곳에서 부고(訃告)를 듣고 달려가는 것.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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