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아치(雅致)는 6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한정(閑情)을 좋아하는 선비의 뜻은 자연히 달라서, 속인(俗人)은 비웃고 고인(高人)은 찬탄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6 ‘아치(雅致)’로 한다.”
● 유여려(兪汝礪)가 말하였다.
“부귀(富貴)를 누리는 선비는 강산(江山)이나 송죽(松竹)의 즐거움에 뜻을 두지 못하고, 산천(山川)ㆍ괴기(怪奇)ㆍ연운(煙雲)ㆍ죽석(竹石)ㆍ시주(詩酒)ㆍ풍월(風月)은 오직 세상을 만나지 못한 사람만이 비로소 그 즐거움을 독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사이에 있는 웅위(雄偉)하고 범상치 않는 곳은 하늘이 어진 사람에게 주어 그들의 우울한 생각을 풀도록 한 것이다.” 《지비록》
● 손적(孫覿)이 추밀(樞密) 호송(胡松)에게 준 편지에,
“소공옥(邵公玉)이 한 번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문득 곡지(曲池)가 이미 평탄해져 버린 탄식이 있게 되었다.”
하였는데, 내가 일찍이 이르기를,
“헌면(軒冕 : 초헌과 면류관. 전하여 관직을 일컬음)의 낙(樂)은 조물주(造物主)가 중시하지 않아서 아끼지 않지만, 매양 구학(丘壑 : 속세를 떠난 산수(山水) 좋은 곳)을 즐김에 있어서는 사람에게 선뜻 주지 않았다.”
하였으니, 더욱 손적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되었다.
● 문 승상(文丞相 : 남송(南宋) 문천상(文天祥))이 말하였다.
“천상(天祥)의 삼간(三間) 띳집[茆屋]이 만산(萬山)의 깊은 곳에 있어, 서책(書冊)을 빌려오거나 술을 사오는 일 이외에는 털끝만큼도 공사(公私)간의 일로 인하여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다만 1백 이랑[畝]에 소나무를 심고서 날마다 그 사이에서 소[牛]를 타고 쇠뿔을 두드린다.” 《문산집(文山集)》
● 조 문민공(趙文敏公 : 문민은 원(元) 조맹부(趙孟頫)의 시호)은 용모(容貌)가 훤하고 예의범절(禮儀範節)이 분명하였다. 그가 매양 조정(朝廷)에 들어갈 때면 전정(殿庭)이 환히 빛이 났으므로, 세조(世祖)가 항상 그를 눈여겨보곤 하다가 좌우(左右)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신선(神仙)이다.” 《하씨어림(何氏語林)》
● 이우(李愚)가 어떤 이에게 말하였다.
“내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공무(公務)에 바쁘다 보니, 일찍이 화서국(華胥國)에 가서 한번 실컷 놀아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낙양(洛陽)에다 수죽(水竹) 좋은 땅을 사고 거기에 접암(蝶庵)을 지은 다음, 모든 세간(世間) 일과 인연을 끊고 그 속에 살면서, 암자 가운데 마땅히 장주(莊周)를 개산제일조(開山第一祖)로 삼고 진단(陳摶)을 거기에 배향(配享)시키고 싶다. 그러나 나같이 바쁜 사람은 그런 일에 몰두하기가 어렵다.” 《장설소췌(藏說小萃)》
▶화서국(華胥國) :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인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에 아주 잘 다스려지는 나라인 화서국(華胥國)에 가서 그 나라의 태평스러운 모습을 보고 깊이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나라 이름. ▶장주(莊周) : 중국 고대 도가(道家)의 사상가인 장자(莊子). 이름이 주(周). 송(宋)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확실하지 않다. ▶개산(開山) : 절이나 종파를 처음으로 건립하는 것. ▶진단(陳摶) : 오말송초(五末宋初) 시기의 도가학자(道家学者)이자 역학가(易学家)로 송(宋)나라 태종(太宗)으로부터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
● 전학탄(錢鶴灘 : 학탄은 명(明) 전복(錢福)의 호)이 휴가(休暇)중에 있을 때 문생(門生) 모(某)가 유양 태수(維揚太守)로 있으면서 사자(使者)를 보내어 공(公)을 맞으려 하였으나 기한(期限)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뒤에 처음으로 그가 한번 오자 모든 큰 장사치들이 서로 다투어 와서 공을 맞아 뵈므로, 공이 말하기를,
“병든 내가 이 광릉(廣陵)의 파도[濤]를 보면서 온 것은 경치(景致)를 보기 위해서이며 아울러 경화(瓊花)의 소식을 한번 알기 위해서였을 뿐이요, 호강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고는 드디어 남몰래 돌아가 버렸는데, 태수(太守)는 그를 만나려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견문수옥(見聞搜玉)》
● 육 문유공(陸文裕公 : 문유는 명(明) 육심(陸深)의 시호)이 조사(朝士)에게 말하였다.
“나는 오활한 미치광이라서 무슨 일에 실패하여도 뉘우치지 않는다. 요즈음 비법(祕法) 하나를 얻었는데, 조참(朝參 : 벼슬아치가 조정에 나아감)한 나머지 시간에는 문(門)을 닫고 향(香)을 피우고서 조용히 앉아 참선(參禪)을 하며, 비록 서책(書冊)이라 할지라도 모두 치워버리니, 바로 크게 이익됨이 있었다.” 《견문수옥》
● 고소문(高蘇門 : 명(明) 고숙사(高叔嗣)의 호)이 말하였다.
“내가 구산(丘山) 가운데 편히 누워 세상 밖의 이름을 회피하고서, 농사지어 군왕(君王)께 조세(租稅) 바치고, 땔나무 해다가 어버이 봉양하며, 때로 새 곡식[新穀]이 익어서 농가(農家)가 풍성하면 살찐 양 새끼[羜]를 삶아서 귀신께 바치고, 마른 고기 구워서 친구를 부르며, 사립(蓑笠 : 도롱이와 삿갓)은 지게문에 걸려 있고 길고(桔槹 : 두레박)는 공중에 걸려 있는데, 탁주(濁酒)를 서로 불러다 마시고서 장고를 치며 노래 부르니, 이 또한 내가 스스로 유쾌히 여김이요 고인(故人)도 허여한 바이다.” 《지비록(知非錄)》
● 왕정진(王廷陳)이 여무소(餘懋昭)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임천(林泉)에서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지내지만 위로는 예[古]를 사모하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세속과 동조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소활하고 게으른 짓은 할지언정 감히 미친 짓은 못하고, 졸렬하고 어리석은 짓은 할지언정 감히 악한 짓은 못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 : 산도(山濤)ㆍ왕융(王戎)ㆍ유령(劉伶)ㆍ완적(阮籍)ㆍ완함(阮咸)ㆍ혜강(嵇康)ㆍ상수(向秀))이 고상하지만 그 방탕함은 비루하게 여기고, 삼려(三閭 : 벼슬 이름, 굴원(屈原)을 가리킨다)의 충심이 가상은 하지만 그가 멱라수(汩羅水)에 빠져 죽은 것은 지나쳤다 여기고, 치이(鴟夷 : 월(越) 범여(范蠡)의 자호)가 벼슬을 버리고 떠난 것은 슬기롭지만 그가 이룩한 부(富)는 더럽게 여긴다. 경치가 마음에 흡족할 때마다 술을 마시고 스스로 노래하지만 술은 양껏 마시지 않고 노래도 끝까지 다 부르지는 않으며, 피곤해지면 드러눕지만 꿈을 꾸지 않는다. 세속(世俗)이 지겹도록 싫지만 어찌 마음 붙일 데가 없겠는가. 그래서 다시 노장(老莊)의 사상을 궁구하여 성명(性命)을 보양한다.
흥(興)이 일면 강호(江湖)에 노닐기 좋아하지만 물이 창일(漲溢)하면 배를 띄우지 않고, 구름 낀 산봉우리를 좋아하지만 미끄러운 이끼가 낀 위험한 비탈길이면 물러서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이 내 행동의 대략이다.” 《지비록》
● 막정한(莫廷韓 : 정한은 막시룡(莫是龍)의 자)은 말하였다.
“내가 평소에는 그리 좋아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시냇가 대나무 숲 그림자가 조그만 창문을 가리고 있는 정경을 볼 적마다, 곧 그 아래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명세설신어(明世說新語)》
● 평천(平泉) 육궁보(陸宮保)가 자신의 초상(肖像)에 글을 써 넣어 여러 절에 갖다 놓았다. 그 글은,
豈有文章置集賢 집현원(集賢院)에 둘 만한 문장도 없고 也無勳業到凌煙 능연각에 오를 만한 훈업도 없으니 只應畫作老居士 단지 그림 속의 노거사(老居士) 되어留與香山結淨緣 향산과 맑은 인연 맺고 싶을 뿐
하였다. 《암서유사(巖棲幽事)》
▶능연각(凌煙閣) : 당 태종(唐太宗) 때 24명의 공신들의 초상을 그려 걸어두었던 누각(樓閣). ▶향산(香山) : 백거이(白居易)의 호. 그가 만년에 향산에 은거하면서 스스로를 즐긴 것을 가리키는 말. |
● 박사(博士) 문수승(文壽承)이 말하였다.
“내가 장안(長安)에 있을 적에 사인(舍人) 고여유(顧汝由)의 연산재(硏山齋)에 갔다가 밝은 창 깨끗한 궤연에 소나무 가지와 매화꽃을 꺾어 꾸며 놓은 것을 보았고, 옥하(玉河)의 얼음을 떠다가 차를 끓여 마셨다. 또 새로 얻은 기이하고 고상한 부정(鳧鼎)에 내부(內府)의 용연향(龍涎香)을 끓이니, 황홀하기가 세상 밖에 있는 듯하였다. 그래서 경사(京師)에 진토(塵土)가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소창청기(小窓淸記)》
● 손일원(孫一元)은 현허(玄虛 : 노장학(老莊學))에 대한 얘기를 좋아하였다. 그의 풍후한 얼굴에 흰 수염이 나부끼는 것을 바라보면, 마치 신선(神仙) 같았다. 《명세설신어》
● 황도월(黃道月)이 경저(京邸)에 있을 때 황이상(黃履常 : 황승원(黃承元)의 자)의 누대(樓臺)에서 술을 마시며 서산(西山)의 눈을 구경하였다. 이때 황도월이 누대에 기대어 술을 마셨는데, 그의 눈[目]빛이 눈[雪]빛과 함께 반사되어 촛불처럼 번뜩였다. 그리고 격렬한 마음을 몰아내어 긴 휘파람을 부니, 산수(山水)가 찢어지는 듯하였다. 《명세설신어》
● 장유(長孺) 서익손(徐益孫)이 말하였다.
“내게 눈도 있고 발도 있으므로 내가 갈 수 있는 곳에 경치 좋은 산천이 있으면 내가 즉시 간다. 그러면 내가 바로 이 경치 좋은 산천의 주인(主人)이 되는 것이다.” 《명세설신어》
● 왕백곡(王百穀)이 말하기를,
“남은 돈으론 단지 책을 살 뿐이다.”
하였으나, 만약 돈이 남기를 기다린다면 천하에 책을 사볼 사람이 없어서 벌써 눈이 메말랐을 것이다. 나는 또한 생활비를 줄여서 서사(書肆 : 책가게)에 가서 책을 샀으니, 이것은 일찍이 ‘돈을 절약하여 책을 산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미공비급(眉公祕笈)》
● 미공(眉公 : 명(明) 진계유(陳繼儒)의 호)이 게으름을 청사(淸事)로 여겼는데, 대개 고문(高門)에 먼지가 없이 깨끗하여 하나도 게으른 것 같은 점이 없었다. 내가 일찍이 남당(南唐 : 오대(五代) 때 십국 중의 하나) 야사(野史)를 읽다가 오(吳)의 합령 도사(合靈道士)의 말을 보았는데 그 말에,
“사람이 만약 한가함을 바란다면 이것이 바로 게으른 것이요, 만약 부지런하고자 하면 곧 한가한 것이 아니다.”
하였는데, 미공은 깊이 이 뜻을 얻었다. 《소창청기》
● 내가 일찍이 어느 산간의 이웃집 노인을 찾았었다. 그런데 고운 꽃은 붉게 피어 문에 비쳤는데 손자와 햇볕을 쬐고 있는 품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까운 성시(城市)에 거마(車馬)의 시끄러움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니 먼 경도(京都)의 분분한 먼지이겠는가. 내가 그에게 시 한 수 지어 주기를,
有箇小門松下開 소나무 아래 문 열린 작은 집 한 채
堂前名藥繞畦栽 뜰 앞 밭두둑엔 약초가 빙 둘렀네.
老翁抱孫不抱甕 늙은인 술동이 아닌 손자를 안았는데
恰欲灌花山雨來 꽃에 물을 주려는 듯 산비가 오네.
하였다. 《미공비급》
● 옛날 은자(隱者)들은 흔히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 나는 근력(筋力)이 약하니 첫 번째의 불능(不能)이요, 흔히 낚시와 주살질을 했는데 나는 살생을 금하니 두 번째의 불능이요, 흔히 이경전(二頃田)과 8백 그루의 뽕나무가 있었는데 나는 가난하니 세 번째의 불능이요, 흔히 물을 마시고 새끼 띠를 띠었었는데 나는 심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니 네 번째의 불능이다. 다만 내가 능한 것은 오직 조용히 살면서 반찬 없는 밥을 먹으며 저술(著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저술가(著述家)는 절대로 선현(先賢)을 비평하거나 논박하지 말고 자기가 옳게 보는 것만을 거론해야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정(訂正)할 필요는 없다. 《미공비급》
● 갈치천(葛稚川 : 치천은 진(晉) 갈홍(葛洪)의 자)이,
“다시 고향[鄕園]에 돌아와 보니 남녀(男女)는 다 바꾸어졌는데 오직 녹수(綠水)와 청산(靑山)만은 옛 모습대로요 변하지 않았다.”
하였고, 소동파(蘇東坡 : 동파는 송(宋) 소식(蘇軾)의 호)는,
“다시 여부(廬阜)를 찾으니 19년 간 사는 동안 능곡(陵谷)의 초목(草木)은 옛 모습을 잃었고, 서현사(棲賢寺)와 개선사(開先寺)의 승경(勝景)은 자못 그 반이 없어졌으니 환영(幻影)의 허망함은 이치가 참으로 그러하다. 그러나 산중 도우(道友 : 도로 사귄 벗)들의 계합(契合)한 친분은 옛날과 같으니 도(道)가 세월을 초월해 있다는 말이 진실로 빈말이 아니다.”
하였다. 이 두 사람의 말을 되새기니 문득 원림(園林)에 가고픈 생각이 인다. 《지비록》
● 고인(古人)의 기상(氣象)을 보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가슴속이 정결한가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황숙도(黃叔度 : 한(漢) 황헌(黃憲)의 자)를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고루하고 인색한 마음을 다 사라지게 하고, 노중련(魯仲連 : 전국 시대 제(齊)의 은자(隱者))과 이태백(李太白)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명리(名利)에 대한 일을 말할 수 없게 한다.”
하였으니, 이 두 가지는 자기 스스로가 체득하여 그 강령을 얻는 데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미공비급》
● 홍애(洪崖)는 흰 나귀를 타고 다녔다. 그 나귀의 이름은 적설(積雪)이다. 그 시(詩)에,
下調無人采 낮은 격조로는 사람의 풍채가 없고
高心又被嗔 고상한 마음은 또 비난을 받네.
不知時俗意 세속의 뜻은 알 수가 없어라
敎我若爲人 나더러 어떤 사람이 되라는 것인지.
하였다. 또 황산곡(黃山谷 : 산곡은 황정견(黃庭堅)의 호)의 자제상(自題像)에,
前身寒山子 전신은 한산자(寒山子)요
後身黃魯直 후신은 황노직(黃魯直)인데
頗遭俗人惱 자못 세속 사람의 번뇌를 당하니
思欲入石壁 차라리 석벽에나 들어가고 싶네.
▶한산자(寒山子) : 당(唐) 나라 때의 고승이며 시인(詩人). 천태산(天台山) 한암(寒巖)이라는 곳에 거처했다. 그의 명성을 듣고 태주 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그를 찾아가자, 한산은 그를 피하여 몸을 줄여서 석혈(石穴)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그 석혈이 저절로 닫혀 버렸다고 한다. ▶황노직(黃魯直) : 황정견(黃庭堅)의 자. |
하였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옛사람의 말에 ‘상사(上士)는 마음을 닫고[閉心], 중사(中士)는 입을 닫고[閉口], 하사(下士)는 문을 닫는다.[閉門]’ 하였으니, 나의 품격으로는 중등이나 하등을 본받는다면 큰 탈을 면할 수 있으리라.”
오숙상(吳叔庠 : 숙상은 오균(吳均)의 자)이 고장(顧章)에게 보낸 편지에,
“병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돌아와 은거할 곳을 찾아 매계(梅溪)의 석문(石門)이란 산에 자리 잡았다. 삼엄한 암벽은 안개가 자욱이 끼어 서로 휩쓸리고 외로운 봉우리는 해를 찌를 듯하며, 그윽한 산등성이는 구름을 머금은 듯하고 깊은 계곡은 비취빛을 쌓아 놓은 듯하다. 매미가 울고 학(鶴)이 울며 굽이치는 물소리와 원숭이의 울음소리는 또렷이 서로 어울려 언제나 조화를 이룬다. 내가 본디 그윽한 거처를 좋아하였으므로 드디어 이곳에다 조그만 집을 지었다. 다행히 이곳의 풍부한 국화(菊花)와 대숲은 실로 산골짜기의 덕을 입은 것이니, 참으로 만족하다.”
하였다. 《지비록》
● 미원장(米元章 : 원장은 미불(米芾)의 자)은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문득 생각이 둔해졌고, 은중문(殷仲文)은 사흘 간 《도덕경(道德經)》을 읽지 않으면 혀가 굳은 듯하였으며, 왕불대(王拂大 : 진(晉) 왕침(王忱)의 자)는 사흘간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편하지 않았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제각기 흥취(興趣)를 붙인 곳이 달랐으나, 그 전해오는 꽃다운 이름은 천년(千年)을 밝게 비춰 주는 듯하다. 《미공비급》
● 이태백(李太白)이,
天生我才必有用 하늘이 내 재주를 내셨으니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요
黃金散盡能還來 황금이란 흩어져도 다시 모을 수 있네.
하였고, 두자미(杜子美 : 두보(杜甫)의 자)는,
爲人性僻耽佳句 내 사람됨이 좋은 글귀 찾는 성벽이 있어
語不驚人死不休 시구가 남을 놀래지 않으면 죽어도 마지않네.
하였으니, 호걸(豪傑)이라면 이 글의 뜻을 체득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소창청기》
● 세상의 범범한 친구야 쉽게 우의를 맺을 수 있지만, 단지 야성(野性)이 있는 사람만은 남과 어울리는 일이 드물다. 이청련(李靑蓮 : 이백(李白)을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 부른다)이,
忽憶范野人 홀연히 범야인을 추억하네.
하였고, 두 공부(杜工部 : 두보(杜甫))도,
聞君多道骨 그대에게 도골(道骨)이 있다 들었네.
하였으니, 이것을 본다면 티끌세상에서 벗어난 친구를 사귀기는 옛날부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법계(法界)는 심히 관대하여 진실로 횡역(橫逆)한 사람까지 다 용납할 수 있으니, 금수(禽獸)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 아무 막힘이 없이 넉넉하다면, 고난(苦難)을 참아서 보리(菩提)에 이르게 됨을 증득(證得)할 것이다.
위세마(衛洗馬 :세마는 위개(衛玠)의 별칭)가,
“다른 사람의 단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베풀어 용서해야 할 것이요, 고의적이 아닌 잘못을 한 사람은 놓아 보내야 한다.”
하였으니, 이 두 마디의 말을 명심한다면 내가 세상에 행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세상이 나에게 친비(親比)하도록 할 수도 있다.
원풍(元豐 : 송 신종(宋神宗)의 연호) 6년 10월 보름날 밤에 막 옷을 벗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밝은 달빛이 방안에 비치어 벌떡 일어났으나, 생각해보니 함께 노닐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드디어 승천사(承天寺)로 가서 장회민(張懷民)을 찾았더니, 회민도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뜨락을 거니는데, 뜨락은 마치 호수와 같아서 물 속에 수초가 서로 엇갈려 있는 듯하였으니, 대개 그것은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가 달빛에 서로 엇갈려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인들 달이 없으며 어느 곳인들 대나무와 잣나무가 없으련만, 다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로운 정취가 있는 사람이 드문 것일 뿐이다. 《소문충공집(蘇文忠公集)》
● 한 해가 다하려 하고 풍우(風雨)가 처연(凄然)하며 죽옥(竹屋)의 종이를 바른 창에 등불이 푸르게 빛나니, 이때야말로 참으로 자그마한 흥취가 있는 것이다. 《소문충공집》
● 강산(江山)의 풍월(風月)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인 것이다. 《소문공충집》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제가 아무리 화려한 것이라도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제가 아무리 시끄럽게 굴더라도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수도(修道)하는 사람은, 입산(入山)할 때는 오직 그곳이 깊은 곳이 아닐까 걱정이며, 숲에 들어갈 때는 오직 은밀한 곳이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소창청기》
● 매양 좋은 날을 만나 즐거운 회포가 있으면 가만히 팔짱을 끼고서 옛사람의 시를 읊조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청산(靑山)과 수수(秀水)가 눈에 띄면 즉시 회포를 풀고 시를 읊을 수 있는 것이니, 어찌 꼭 대울타리 안에 은거한 뒤에야 그런 것들이 내것이 되는 것이랴. 《옥호빙(玉壺氷)》
● 향을 피우고 목침에 기대면 인사(人事)가 모두 꿈속처럼 사라져 버리고, 미래(未來)도 바로 지금에 숨어 있다. 이만하면 와은(臥隱)이라고 할 수 있으니, 토굴(土窟)을 파고 산에 은거하는 것이 도리어 번거로움을 알겠도다. 《암서유사(巖棲幽事)》
● 진(晉) 나라 사람들은 명성을 좋아하여 장자(莊子)의 말로 항상 담병(談柄)을 삼으면서 그것을 청담(淸談)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 역시 담론(談論)을 좋아하나 내 나름대로 주관(主觀)으로 삼는 것은 없으니, 그 말이 맑아도 좋고 흐려도 좋으며, 고아한 말이라도 좋고 비속한 말이라도 좋으며, 우아한 것이라도 좋고 속된 것이라도 좋으며, 신선(神仙)에 대한 것이라도 좋고 불(佛)에 대한 것이라도 좋으며, 귀신에 대한 것이라도 좋고 괴이한 것이라도 좋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장심(壯心)을 그것으로 삭혀 버리고 세월(歲月)을 보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저 진 나라의 무리들의 경우는 그 여파가 조정(朝廷)과 인가(人家)에까지 미쳐 지나친 일이 되어버렸으니, 급히 이건훈(李建勳)의 옥경(玉磬)을 서너 차례 쳐서 경계하는 것이 옳으리라. 《소창청기》
▶담병(談柄) : 대화할 때 손에 쥐는 것을 말하는데 구실(口實)의 뜻으로 쓰인다. |
● 산꼭대기에는 모름지기 샘물이 있어야 하고 샛길은 모름지기 대나무가 있어야 하며, 사서(史書)를 읽을 때는 술이 없어서는 안 되고 선(禪)을 말할 때는 미인(美人)이 없어서는 안 되니, 이것이 바로 경계(境界)에 따라 정조(情操)를 찾고 정조를 따라 운치(韻致)를 찾는다는 말이다. 《소창청기》
▶정조(情操) : 정신(精神)의 활동(活動)에 따라 일어나는 복잡하고 고상(高尙)한 감정. |
● 꽃을 완상(玩賞)할 때는 모름지기 호걸스러운 벗과 어울려야 하고, 기녀(妓女)를 볼 때는 모름지기 담박한 벗과 어울려야 하고, 산에 오를 때는 모름지기 초일(超逸)한 벗과 어울려야 하고, 물에 배를 띄울 때는 모름지기 마음이 광활한 벗과 어울려야 하고, 달[月]을 볼 때는 모름지기 삽상(颯爽)한 벗과 어울려야 하고, 눈[雪]을 볼 때는 모름지기 염려(艶麗)한 벗과 어울려야 하고, 술을 마실 때는 모름지기 운치 있는 벗과 어울려야 한다. 《미공비급》
▶삽상(颯爽)하다 : 씩씩하여 시원스럽다. ▶염려(艶麗) : 태도가 아리땁고 고움. |
● 소리[聲]의 운치에 대해서 논하는 자들이 계성(溪聲)ㆍ간성(澗聲)ㆍ죽성(竹聲)ㆍ송성(松聲)ㆍ산새 소리[山禽聲]ㆍ그윽한 골짜기에서 나는 소리[幽壑聲]ㆍ파초에 내리는 빗소리[芭蕉雨聲]ㆍ낙화성(落花聲)ㆍ낙엽성(落葉聲)을 말하는데, 이런 것들은 다 천지(天地)의 맑은 소리로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소리로서는 마땅히 매화성(賣花聲)으로 으뜸을 삼아야 할 것이다. 《소창청기》
▶간성(澗聲) :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소리. ▶매화성(賣花聲) : 백거이와 유우석에 의해 칠언절구로 만들어진 당나라 때의 교방곡(敎坊曲)인 낭도사(浪淘沙)의 다른 이름. |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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