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허균 29 - 한정록(閑情錄) 임탄(任誕) 1

從心所欲 2021. 10. 1. 07:31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임탄(任誕)은 8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세속의 울타리를 벗어난 선비의 소행(所行)은 마음대로여서 법도(法度)가 없지만, 그 풍류(風流)와 아취(雅趣)는 속진(俗塵)을 씻거나 더러움을 맑게 하기에 족하다. 그러므로 제8 ‘임탄(任誕)’으로 한다.

 

● 혜강(嵇康)ㆍ완적(阮籍)ㆍ산도(山濤)ㆍ유령(劉伶)이 죽림(竹林)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왕융(王戎)이 늦게 왔다. 보병(步兵 : 완적(阮籍)의 별칭)이 말하기를,

“속물(俗物)이 또 와서 흥(興)이 깨졌다.”

하니, 왕융은 웃으며 말하였다.

“경배(卿輩)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 《세설신어(世說新語)》

▶ 혜강(嵇康) ... 죽림(竹林)에서 :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말한다. 진(晉) 나라 때 혜강ㆍ완적ㆍ산도ㆍ유령ㆍ상수(向秀)ㆍ왕융(王戎)ㆍ완함(阮咸) 등이 노장(老莊)의 학문을 좋아하여, 예법(禮法)을 무시하고 속세(俗世)를 피하여 죽림(竹林)에 모여 자유롭게 살았다 하여 이들을 죽림칠현이라 한다.
▶경배(卿輩) : 임금이 신하들을 가리키던 이인칭 대명사.

 

● 혜숙야(嵇叔夜 : 숙야는 혜강(嵇康)의 자)는 성품이 대장장이 일을 잘하였다. 집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매우 무성했는데, 그 주위에다 물을 끌어 둘러놓고 여름철에는 그 아래에서 대장일을 하였다. 《세설신어》

 

● 유백륜(劉伯倫 : 백륜은 유령(劉伶)의 자)은 우주(宇宙)가 좁다고 여겼다. 항상 녹거(鹿車)를 타고 술 한 병을 휴대하고는 사람을 시켜 삽(鍤)을 메고 따르게 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죽거든 그 자리에 묻으라.” 《세설신어》

 

● 유령(劉伶)은 항상 술을 실컷 먹고 방탕하여 혹 옷을 벗은 알몸으로 집에 있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나무라면 유령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천지(天地)를 집으로 삼고 옥실(屋室)을 옷으로 삼는데, 여러분은 무슨 일로 나의 옷 속에 들어왔는가?” 《세설신어》

 

● 완선자(阮宣子 : 선자는 완수(阮脩)의 자)는 항상 걸어 다니면서 돈 1백 전(錢)을 지팡이 머리에다 걸고 다녔다. 주점(酒店)에 이르면 혼자서 실컷 마셨다. 그는 비록 당세의 부귀(富貴)한 자라도 즐겨 찾아간 일이 없었다. 《세설신어》

▶돈 1백 전(錢)을 ... 다녔다 : 이 고사에서 비롯하여 길을 갈 때에, 술값으로 가지고 다니는 약간의 돈을 장두전(杖頭錢)이라고도 한다.

 

● 왕평자(王平子 : 평자는 진(晉) 왕징(王澄)의 자)ㆍ호모언국(胡母彦國 : 언국은 진(晉) 호모보지(胡母輔之)의 자) 등 제인은 방종(放縱)을 달관(達觀)으로 여겨 혹 옷을 벗고 산 사람도 있었다. 악광(樂廣)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명교(名敎 : 유교(儒敎)) 가운데도 낙지(樂地)가 있는데 하필 그렇게 해야 되는가?” 《세설신어》

 

● 장계응(張季鷹 : 계응은 진(晉) 장한(張翰)의 자)은 제멋대로 살아 거리끼는 바가 없어서 당시 사람들이 강동(江東)의 보병(步兵 : 완적의 별칭)이라 하였다. 어떤 이가,

“경(卿)은 한 세상을 방탕하게 지내면서 죽은 후의 명성(名聲)은 생각하지 않는가?”

하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에게는 죽은 후의 명성이 당장의 한 잔 술보다 못하네.” 《세설신어》

 

● 진 명제(晉明帝)가 사곤(謝鯤)에게 묻기를,

“자네는 스스로 유량(庾亮)과 비교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하니, 사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묘당(廟堂)에 앉아서 백료(百僚)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은 신(臣)이 유량만 못하고, 산중에서 조용히 즐기는 것은 제가 그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세설신어》

 

● 왕효백(王孝伯 : 효백은 진(晉) 왕공(王恭)의 자)은 이렇게 말하였다.

“명사(名士)란 반드시 기재(奇才)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고, 항상 일 없이 지내면서 술을 통음(痛飮)하고, 《이소경(離騷經)》을 숙독(熟讀)하면 가위 명사라 부를 수 있다.” 《세설신어》

 

● 왕 우군(王右軍 : 우군은 왕희지(王羲之)의 별칭)은 이렇게 말하였다.

“술이란 절로 사람을 승지(勝地)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세설신어》

 

● 왕효백(王孝伯)이 왕대(王大 : 진(晉) 왕침(王忱)의 별칭)에게 묻기를,

“완적(阮籍)은 사마상여(司馬相如 : 한(漢)의 문사(文士))에 비해 어떤가?”

하니, 왕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완적의 흉중(胸中)에는 응어리가 있기 때문에 술로 씻어내야 한다.” 《세설신어》

 

● 왕자유(王子猷 : 자유는 진(晉) 왕휘지(王徽之)의 자)는 산음(山陰)에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잠이 깨자 방문을 열어놓고 술을 따르라 명하고 사방을 보니 온통 흰빛이었다.

일어나서 바장이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갑자기 대안도(戴安道 : 진(晉) 대규(戴逵)의 자) 생각이 났다. 이때 대안도는 섬계(剡溪)에 있었다. 그는 밤에 작은 배를 타고 밤새 가서 대안도 집 문에 이르렀다가는 들어가지 않고 돌아섰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흥(興)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니, 어찌 꼭 안도를 보아야 하는가” 《세설신어》

 

● 왕자유(王子猷)가 일찍이 오중(吳中)을 지나다가 어떤 사대부(士大夫) 집에 아주 좋은 대[竹]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 주인은 자유가 꼭 자기 집에 올 것으로 알고 자리를 깨끗이 해놓고 청사(廳事)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왕자유는 견여(肩輿)를 타고 지름길로 대나무 아래로 곧바로 가서 한참 동안 읊조렸다. 실망한 주인은 그래도 돌아갈 때는 통성명을 할 것으로 알았는데 왕자유는 곧바로 문을 나서려는 것이었다.

주인은 크게 화가 나서 아랫사람에게 명하여 문을 닫고 못 나가게 하였다. 왕자유는 이런 주인을 가상하게 여겨 머물러 앉아 환담(歡談)하다가 떠났다. 《세설신어》

 

● 왕자유가 환온(桓溫)의 거기참군(車騎參軍)이 되었다. 환온이,

“경(卿)은 부(府)에 있은 지 이미 오래니, 마땅히 일을 서로 상의해 처리해야 하겠네.”

하였다. 자유는 처음에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다가 똑바로 높이 쳐다보면서 수판(手版)으로 턱을 괴고는 말하였다.

“서산(西山)에 아침이 오니 시원한 기운이 감도는군.” 《세설신어》

 

● 왕자유와 왕자경(王子敬 : 자경은 진(晉) 왕헌지(王獻之)의 자) 형제가 함께 고사전(高士傳)을 보다가 찬(贊)에 이르러 자경이 정단(井丹 : 후한(後漢) 사람으로 오경(五經)에 능했다)의 고결함에 탄상(嘆賞)하였다. 그러자 자유는 이렇게 말했다.

“장경(長卿 : 한(漢)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이 세상을 만롱(慢弄)한 것만 같지 못하다.” 《세실신어》

 

● 왕자유가 도성(都城)을 나와 저하(渚下)에 있을 때다. 전에 환자야(桓子野 : 자야는 진(晉) 환이(桓伊)의 자)가 피리[笛]를 잘 분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서로 알지 못했었는데 둑 위를 지나는 환자야를 만났다. 왕자유는 이때 배 안에 있었는데 손님 중에 그를 아는 자가 있어 환자야라고 알려 주었다. 자유는 사람을 시켜 서로 알고 지내자면서,

“그대는 피리를 잘 분다고 하니, 나를 위해 한번 불어 주시오.”

하였다.

이때 환자야는 귀현(貴顯)하였는데 평소 왕자유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수레에서 내려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세 곡조를 불고 나서는 급히 수레에 올라 떠났다. 이렇게 객(客)과 주인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세설신어》

▶귀현(貴顯) : 존귀(尊貴)하고 이름이 높음.

 

[작가미상 <산수도(山水圖)> 中 원포귀범(遠浦歸帆), 지본담채, 122.8 x 50.2cm, 국립중앙박물관 ㅣ 원포귀범(遠浦歸帆)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화제(話題) 중 하나.]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