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1

從心所欲 2021. 10. 11. 12:02

2020년 7월, 케이옥션 경매에 2013년에 문화재 보물 제1796호로 지정된 겸재 정선의 화첩이 경매품으로 나온 일이 있었다. 화첩의 정식 명칭은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筆海嶽八景 宋儒八賢圖 畵帖)》으로, 당시의 경매 추정가는 50억 ~ 70억 원이었다. 이 화첩은 그동안 전 용인대 이사장이 설립한 우학문화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인데, 낙찰이 되었다면 국내 고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기록을 세웠겠지만 유찰되고 말았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鄭敾筆海嶽八景 宋儒八賢圖 畵帖)》은 금강산의 진경산수화 8점과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8인의 고사인물화 8점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화첩의 낙관에 사용된 '정(鄭)'과 '선(敾)'을 각각 따로 새긴 두 개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겸재가 66세 때인 1741년부터 70대 후반까지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대략 1740년대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정선의 70대 작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화첩에 대한 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화첩의 그림들은 원숙한 필치와 과감한 화면구성이 돋보인다고 했다. 또한 소품(小品)이지만 산수화에서는 화면의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의 풍도가 넉넉하게 잘 표현되어 있으며, 고사인물화 역시 산수를 배경으로 유유히 자연을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고 했다.

 

 

수묵으로 그린 해악팔경은 금강산의 <단발령>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고성문암> <총석정> <해금강> 순서로 구성돼 있다. 비단 바탕인 화폭의 크기는 세로 25.1㎝, 가로 19.2㎝이다. 화첩에는 그동안 정선의 다른 금강산 화첩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혈망봉(穴望峰), 구룡연(九龍淵), 해금강(海金剛), 비로봉(毘盧峰) 그림이 들어있는 점이 특이하다.

 

[정선필 해악팔경(鄭敾筆海嶽八景), 견본수묵, 각기 25.1 x 19.2cm, 케이옥션사진]

 

혈망봉(穴望峰)은 봉우리꼭대기에 큰 구멍이 나있어 그것을 통하여 푸른 하늘을 내다볼 수 있다 하여 혈망봉(穴望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내금강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정선의 또 다른 혈망봉 그림으로는 서울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선과 심사정의 그림 합본첩인 《겸현신품첩(謙玄神品帖)》에 들어있는 <혈망봉>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소략한 느낌이다.

 

[정선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中 <혈망봉>, 견본담채, 25.1 x 19.2cm, 우학문화재단]

 

[정선 《겸현신품첩》 中 <혈망봉>, 견본수묵, 33.3 x 21.9cm, 서울대학교박물관]

 

<구룡연>은 독일 성오틸리엔(St. Ottilien)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영구대여 형식으로 왜관수도원에 반환된 《겸재정선화첩》의 <구룡폭(九龍暴)>과 구도가 같지만, 해악팔경에서는 주위의 경물을 모두 걷어내고 폭포와 소(沼)에만 집중했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중 <구룡연>, 견본수묵, 25.1 x 19.2cm, 우학문화재단]

 

[정선 《겸재정선화첩》 中 <구룡폭>, 견본담채, 29.8 x 23.5cm, 왜관수도원]

 

정선의 그림 중에 육지의 풍경 없이 바다 풍경만 그린 것은 해악전신첩의 <칠성암>을 제외하고는 이 그림이 유일한 듯하다. <칠성암>과는 달리 수직준으로 각진 암벽들이 첩첩이 둘러서 있는 각진 돌기둥들을 그려냈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중 <해금강>, 견본수묵, 25.1 x 19.2cm, 우학문화재단]

 

[정선 《해악전신첩》 중 <칠성암(七星巖)>, 견본수묵, 31.9 x 17.3cm, 간송미술관]

 

<단발령>은 통상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이라는 화제가 쓰이는데 여기서는 그저 단발령이라고만 했다. 기존 정선의 그림들과 유사한 구도이지만 단발령 쪽 토산의 산세를 줄이고 금강산 봉우리들을 좀 더 가깝게 끌어당겨 그린 듯한 차이는 있다. 그 바람에 원근감이 약해졌다고 느꼈는지 그동안 여백으로 놓아두었던 금강산과 단발령 사이에 굳이 운해(雲海)를 그려 넣었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중 <단발령>, 견본수묵, 25.1 x 19.2cm, 우학문화재단]

 

[정선 《해악전신첩》 중 <단발령망금강>, 견본수묵, 32.2 x 24.4cm, 간송미술관]

 

<옹천>은 기존 그림들에 비하여 묘사가 덜 세밀하고 <총석정>은 높낮이에 변화를 준 세 개의 돌기둥을 화면 중앙에 배치하는 노년의 익숙한 구도를 따르고 있지만 원경으로 그리면서 바다의 물결이 더 강조된 느낌이다. <고성일암>은 고성의 문암(門巖)을 그린 것으로 해악전신첩의 <문암관일출>과 같은 구도이지만 중경(中景)에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중 <옹천>과 <고성일암>, 견본수묵, 각 25.1 x 19.2cm, 우학문화재단]

 

비로봉(毘盧峰)은 금강산 말고도 우리나라의 묘향산, 속리산, 오대산, 치악산 등 높고 이름난 산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산 비로봉 역시 금강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에 솟아있다. ‘비로(毘盧)’는 불교의 3불 가운데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비로봉>은 정선의 《신묘년 풍악도첩》이나 《해악전신첩》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개별로 전하는 그림은 몇 점이 있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중 <비로봉>, 견본수묵, 25.1 x 19.2cm, 우학문화재단]

 

[정선 <비로봉> 지본수북, 개인]

 

[정선 <비로봉도>, 지본수묵, 100 x 47.7cm,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