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98 - 권문세가에 아첨하지 말라.

從心所欲 2021. 12. 23. 05:32

[경직도(耕織圖) 中 1, 지본담채, 조선민화박물관]

 

●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7
권문(權門)과 세가(勢家)는 후히 섬겨서는 안 된다.
(權門勢家 不可以厚事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권문(權門)과 세가(勢家) : 고려 후기인 12세기에 이르러 무신난(武臣亂)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지배세력을 권문세족(權門勢族)이라 칭하였다. 기존 문벌귀족 중의 일부와 무신(武臣)정권으로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일부 무신(武臣), 지방출신으로 새로이 과거를 통해 등장한 신진관인(新進官人), 그리고 원(元)과의 관계에서 출세한 부원세력(附元勢力) 등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는 권세가 있는 가문을 지칭한다.

 

권문에 선물 보내는 것을 후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은혜를 입었거나 혹시 의뢰하여 서로 좋게 지내는 사이에는 때때로 선물을 보내 주되 먹는 것 몇 가지에 지나지 않아야 하며 그 밖에 초피(貂皮)ㆍ인삼(人蔘)ㆍ비단 같은 값진 물품들을 바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청렴하고 맑고 식견이 있는 재상은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나를 비루하고 간사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며 혹 임금께 아뢰어 죄주기를 청하기도 할 것이다. 이는 재물을 손상하고 자신을 망치는 것이니 위험한 일이다.

만일 그 재상이 뇌물을 받기 좋아하여 이로 말미암아 끌어올려 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머지않아서 패망할 것이요, 공론도 자신을 가리켜 그 사람의 사인(私人)이라고 하여, 크게는 연루자가 되고 작게는 앞길이 막히게 될 것은 필연한 이치이다.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해만 있고 이익이 없는 일을 무엇 때문에 굳이 하겠는가.

▶초피(貂皮) : 담비 가죽. 방한(防寒)을 위해 쓰이는 모피.

 

선조(宣祖) 임진년(1592)에 찬성(贊成) 이직언(李直彥)이 헌납(獻納)으로 왕을 호종(扈從)하면서 용만(龍灣)에 있었는데, 호남의 수령 중에 부채를 선물한 사람이 있었다. 공은 이 사실을 갖추 아뢰고 탄핵하기를,

“이때가 어느 때인데 선물을 하는가.”

하니, 동료들도 두려워하였다.

▶이직언(李直彥) : 조선 문신(1545 ~ 1628). 본관은 전주(全州).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고, 뒤에 우찬성(右贊成)에 이르렀다.
▶용만(龍灣) : 의주(義州)의 별칭.

 

인조조(仁祖朝)에 북쪽 변방의 무관(武官) 출신 수령 하나가 초피(貂皮)를 정승 최명길(崔鳴吉)에게 바쳤다. 최명길이 가져온 사람을 불러서 도로 돌려주면서 꾸짖기를,

“돌아가 너희 수령에게 일러 주어라. 이런 짓은 혼조(昏朝)때의 여풍(餘風)이니, 나는 입계(入啓)하여 죄주기를 청하고 싶으나 이번만은 관대히 용서해 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최명길(崔鳴吉) : 조선 문신(1586 ~ 1647). 본관은 전주(全州). 부제학(副提學), 호조ㆍ병조ㆍ이조의 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였다.
▶혼조(昏朝) : 어두운 조정이란 뜻으로 광해군(光海君) 때를 가리킨다. 

 

현종(顯宗) 갑인년(1634)에 우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왕에게 아뢰기를,

“사대부의 대소상 기례(大小喪紀例)에는 친지(親知)들이 부의(賻儀)를 보내는 규례가 있으나 10세 이전 아이의 죽음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신이 지난겨울에 어린 자식을 잃었는데 충청병사(忠淸兵使) 박진한(朴振翰)이 무명 1동(同) - 50필 - 을 부의로 보내왔습니다. 신이 대신의 자리에 있으니 아첨하는 것이 아니면 필시 나를 시험하려 하는 것입니다. 비록 즉시 물리치기는 하였지만 결단코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율문(律文)을 상고하여 치죄(治罪)함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더니 왕이 답하였다.

“그대로 하라.”

이와 같은 일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

▶김수항(金壽恒) : 조선 중기에 예조판서,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한 문신(1629 ~ 1689). 대표적 노론 인사.

 

숙종(肅宗) 병자년(1696) 겨울에 한 늙은 아전이 궐내(闕內)에서 돌아와서 그의 처자에게 말하기를,

“근래에 이름 있는 관리들이 모여서 종일토록 하는 이야기가 한마디도 나라의 계책이나 백성들의 걱정은 전혀 없고 오직 여러 고을에서 바치는 선물의 많고 적음과 좋고 나쁨을 논하면서, 어느 원이 보낸 물건은 극히 정묘하고 어느 수령이 보낸 물건은 매우 많다 한다. 이름 있는 관리들의 품평(品評)이 이와 같으니 외방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 반드시 더 늘어날 것이다.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눈물을 흘려 마지않았다. - 정재륜(鄭載崙)의 《한거만록(閒居漫錄)》에 보인다. -

▶《한거만록(閒居漫錄)》 : 효종의 사위인 정재륜(鄭載崙)의 수필집.

 

정선(鄭瑄)은 이렇게 말하였다.

“의롭지 못한 재물을 취해다가 처자(妻子)들의 낭비하는 데에 주거나 의롭지 못한 재물을 취해다가 권귀(權貴)에게 보내는 뇌물로 충당하거나 의롭지 못한 재물을 취해다가 재(齋)를 올려서 복을 비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은 모두 그 마음을 잘못 쓰는 자들이다.”

 

이경문(李敬文) - 이회(李繪)로서 북제(北齊) 사람이다. - 이 고양내사(高陽內史)가 되었는데, 하간수(河間守) 최심(崔諶)이 그의 아우 최섬(崔暹)의 권세를 믿고 이경문에게 고라니 뿔[麋角]과 할미새 깃[翎羽] - 어느 책에는 영(翎)이 모두 영(鴒)으로 쓰여 있다. - 을 요구하였다. 이경문이 대답하였다.

“할미새는 깃촉이 6개라 날면 하늘 높이 오르고, 고라니는 발이 4개라 달리면[走] 문득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소관(小官)은 몸은 서투르고 게으르며 손발은 더디어서 나는 놈을 쫓거나 달아나는 놈을 뒤따르거나 하여 멀리 간사한 사람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신당(新堂) 정붕(鄭鵬)이 청송 부사(靑松府使)가 되었는데, 재상 성희안(成希顔)이 잣[松子]과 꿀을 요구하였다. 정붕은 대답하기를,

“잣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 있고 꿀은 민가의 통 속에 있으니 수령된 사람이 어떻게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성공(成公)이 부끄럽게 여기고 사과하였다. - 송(松)은 잣이 여는 잣나무다. -

▶정붕(鄭鵬) : 조선 전기의 문신(1467 ~ 1512). 본관은 해주(海州).

 

고려 유석(庾碩)이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어느 병마사가 처음으로 최이(崔怡)에게 강요주(江瑤柱)를 바쳤는데 그것이 드디어 상례(常例)가 되었다. 강요주는 해물(海物)로서 용진현(龍津縣)에서 산출되는데 잡기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고을 백성 50여 호가 그것 때문에 실업을 하고 거의 다 도망쳐 버렸다. 유석이 일절 금하여 끊어 버렸더니 도망쳤던 백성들이 다 돌아왔다.

그때 수령들이 다투어 토색질하여 권귀들에게 아첨하려 하므로 유석이 통첩(通牒)을 보내어 이를 금지하였다. 유석을 시기하는 자가 그 통첩을 가져다가 최이에게 보였다. 최이가 말하기를,

“유석은 제가 내게 바치지 않으면 그만이지 무슨 일로 온 도내까지 애써 금하려 하는가.”

하였다. 동북 지방 사람들은 유석의 맑은 덕에 감동하여 부모라 불렀다. 만기가 되어 돌아가게 되자 다시 더 3년을 유임해 주기를 청하였다. 뒤에 불러서 예빈경(禮賓卿)을 제수하였다.

▶유석(庾碩) : 고려 때의 문신(? ~ 1250). 본관은 무송(茂松).
▶동북면 병마사(東北面 兵馬使) : 고려 때에 함경도 지방의 민정(民政)과 군정(軍政)을 아울러 다스리던 정3품 관직.
▶강요주(江瑤柱) : 살조개.
▶예빈경(禮賓卿) : 고려 시대 예빈시(禮賓寺)에 속한 종3품 벼슬.

 

창강(滄江) 조속(趙涑)이 임피현령(臨陂縣令)이 되었는데, 죽피석(竹皮席)을 만들어 탁단(籜團)이라 이름 짓고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에게 보내어 초당(草堂)에 깔도록 하려 하다가 호주의 집 초당이 기와로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기와집에는 이 물건은 맞지 않을 것이다.”

하고 드디어 보내 주지 않았다. 호주가 이 사실을 듣고 부끄럽게 여기며 탄식하였다.

▶조속(趙涑) : 조선시대의 서화가(1595 ~ 1668).
▶채유후(蔡裕後) : 조선의 문신(1599 ~ 1660). 본관은 평강(平康).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