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99 - 군수와 현령은 임금의 은덕을 널리 퍼지게 하는 직분이다.

從心所欲 2021. 12. 27. 07:39

[경직도(耕織圖) 中 2, 지본담채, 조선민화박물관]

 

●봉공(奉公) 제1조 선화(宣化) 1
군수(郡守)ㆍ현령(縣令)은 본래 승류(丞流)와 선화(宣化)가 그 직분인데, 요즈음은 감사(監司)만이 이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郡守縣令 本所以承流宣化 今唯監司 謂有是責 非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1조인 선화(宣化)는 ‘임금의 교화를 편다’는 의미이다.
▶승류(丞流)와 선화(宣化) : 승류(丞流)는 위로 임금의 은덕을 받들어 흐르게 한다는 뜻이며, 선화(宣化)는 아래로 그 은덕을 널리 펼친다는 뜻이다.

 

동중서(董仲舒)의 대책(對策)에 이렇게 말하였다.

“요즈음 군수나 현령은 백성의 스승이요 지도자이니, 그들로 하여금 은택을 입히어 덕화를 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령이 현명하지 못하면 임금의 덕이 선양되지 못하고 은택이 입혀지지 못합니다. 오늘날 관리들은 아랫사람을 교훈함이 없고, 혹은 주상의 법을 이어받아 쓰지 않고 백성들에게 포학하게 하여 간악한 아전들과 부동하여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외롭고 약한 백성들은 원통하고 괴로워서 생업을 잃어버리게 되니 심히 폐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음양(陰陽)이 순조롭지 못하고 나쁜 기운이 충만하여, 뭇 생령(生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백성들이 제대로 구제되지 못하니, 이는 모두 수령이 현명하지 못하여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동중서(董仲舒) ; 중국 한나라 학자(B.C. 179 ~ B.C. 104). 한나라의 무제가 유학을 국교로 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책(對策) : 무제(武帝)의 책문(策問)에 대답한 것.

 

살펴보건대, 덕화(德化)를 펴고 은택을 입히는 것이 수령의 책임인데도 오늘날은 감사의 정청(政廳)에만 ‘선화당(宣化堂)’이라는 현판을 써 붙였다. 수령들은 평소에 이 현판을 익히 보고 마음속으로 덕화를 펴고 은택을 입히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며, 우리들은 부세(賦稅)를 독촉하여 거두어들여서, 상사(上司)의 꾸지람만 면하면 그뿐이라고 여긴다. 슬프다! 어찌 고루하지 않은가.

《서경(書經)》에,

“신하는 나의 팔ㆍ다리가 되고 귀와 눈이 된다. 내가 사방에 힘을 펴고자 하면 너희들이 하여라.”

하였으니, 군수와 현령은 사방에 힘을 펴는 것이다. 조정의 덕의(德意)를 선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애모하고 받들게 하는 것을 가리켜 백성의 관장(官長)이라 이른다. 요즈음 수령들은 스스로 학정(虐政)을 행하여 원망이 조정에 돌아오게 한다.

 

조정에서 부세 징수를 연기하라는 조서(詔書)가 내렸는데도, 그것을 감추어 반포하지 않고, 한결같이 토색하여서 그것으로 치부하기 위한 거래를 자행하며 - 대동미(大同米)의 징수 연기를 말한다. - 부채(負債)를 탕감(蕩減)하라는 조서가 내렸는데도, 그것을 감추고 반포하지 않고서 아전들과 농간하여 그 요리(料理) - 처리 - 하는 밑천으로 삼으며, - 환자(還上) 탕감을 말한다. - 병자를 구하고 시체를 묻어 주라는 영이 내려도 이를 감추고서 반포하지 않으며, - 건륭(乾隆) 말년에 서방에서 온 역질(疫疾)과 같은 것이다. - 혼인 못한 자의 혼인을 권하고, 어린애를 돌보아 주라는 영이 내려도 감추고서 반포하지 않는다. - 선조(先朝 : 정조를 말한다) 때 자주 이런 영이 내렸다. -

재상(災傷)을 도둑질하고는,

“조정에서 삭제하였다.”

하고, 굶주리는 백성을 구호 대상에서 제외하고는,

“조정에서 어렵게 여긴다.”

하고, 피륭(罷癃)이 호소하면,

“조정의 영이 지엄하니 난들 어찌할 수 있나.”

하고, 옥사(獄事)를 팔고자 할 때에는,

“조정의 금법이 본시 엄한데, 너는 왜 범했나.”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곤궁하여 시끄럽게 조정을 원망하게 한다.

아! 그래서 되겠는가. 수령은 마땅히 이를 생각하여 백성을 대할 때는 오직 조정의 은덕을 선포하는 것을 제일의 직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동미(大同米) : 공물의 세목을 모두 전세화(田稅化)하여 쌀로 바치게 한 대동법에 따라 거두던 쌀.
▶환자(還上) : 조선 시대 각 고을의 사창(社倉)에서 백성들에게 꾸어 주었던 곡식을 가을에 이자를 붙이어 받아들이는 일. 환곡(還穀).
▶건륭(乾隆) : 청나라 고종 때의 연호로 1736년부터 1796년까지 사용되었다. 
▶재상(災傷) : 천재(天災)로 인하여 농작물이 입은 피해.
▶피륭(罷癃) : 곱사등이. 이들에게는 국역(國役)이 면제되었었다.

 

한 문공(韓文公)이 조주 자사(潮州刺史)가 되어 올린 사표(謝表)는 다음과 같다.

“부임하고 나서, 관리와 백성들을 만나서 갖추 말하기를, ‘조정이 태평하고 천자께서는 신성(神聖)하고 위무(威武)하며 인자하여 억조창생을 자식처럼 기르되, 거의 친소(親疎)나 원근(遠近)이 없다. 비록 만리 바깥 영해(嶺海)의 궁벽진 곳에 있더라도 한결같이 기전(畿甸) - 서울 지방 - 지방 연곡(輦轂) 아래에 있는 것처럼 대우한다. 좋은 일은 반드시 듣고 악한 일도 반드시 살펴서, 아침에는 일찍이 일 보고, 저녁에는 늦게 파하여 조심조심하되 온 천하의 어느 곳에서나 하나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할까 걱정하므로, 자사(刺史)를 보내어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묻게 하는 것이니, 진실로 불편한 것이 있으면 위로 알릴 수 있다. 국가의 헌장(憲章)이 완전히 구비되고 태평한 지 오래되어, 수령들은 조서(詔書)의 조목을 받들어 그것을 범하는 자가 적으니, 비록 맨 남쪽 변두리에 있을지라도 태평을 누리지 않는 곳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민(吏民)들은 성덕(聖德)을 칭송하는 소리를 듣고 고무(鼓舞)되어 환호(讙呼)하니 정치를 하는 데에 힘들이지 않고 앉아서도 일이 없었습니다.”

▶한 문공(韓文公) : 당송(唐宋)팔대가로 유명한 한유(韓愈). 문공(文公)은 그의 시호이다. 
▶사표(謝表) :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올리는 글.
▶연곡(輦轂) : 임금이 타는 수레. 전(轉)하여 임금이 있는 수도를 뜻한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