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정도전 9 - 불씨잡변 불씨작용시성지변

從心所欲 2022. 1. 12. 11:27

불씨 작용이 성이라는 변[佛氏作用是性之辨]

 

나는 살피건대, 불씨(佛氏)의 설에서는 작용(作用)을 가지고 성(性)이라고 하는데,

방거사(龐居士)의 이른바 ‘먹을 물과 땔나무를 운반하는 것이 모두 묘용(妙用) 아닌 것이 없다.’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안(按)】 방거사의 게송(偈頌)에 “날마다 하는 일이 별 다름이 없으니, 내 스스로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이네. 취할 것 취하고 버릴 것 버리고 과장하지도 말고 어긋나게 하지도 말 것. 신통(神通)에다 묘용(妙用)을 겸한 그것이 바로 먹을 물과 땔나무를 운반하는 것일세.” 하였다.

 

대개 성(性)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 태어난 이(理)이고, 작용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 태어난 기(氣)이다. 기가 엉기어 모인 것이 형질(形質)이 되고 신기(神氣)가 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정상(精爽)함이나 이목(耳目)의 총명함이나 손으로 잡음이나 발로 달림과 같은 모든 지각(知覺)이나 운동을 하는 것은 모두 기(氣)이다. 그러므로 ‘형(形)이 이미 생기면 신(神)이 지(知)를 발(發)한다.’ 하나니, 사람에게 이미 형기(形氣)가 있으면 이(理)가 그 형기 가운데에 갖추어진다. 마음에 있어서는 인ㆍ의ㆍ예ㆍ지(仁義禮智)의 성(性)과 측은(惻隱)ㆍ수오(羞惡)ㆍ사양(辭讓)ㆍ시비(是非)의 정(情)이 되고, 머리 모양에 있어서는 직(直)이 되고, 눈 모양에 있어서는 단(端)이 되고, 입 모양에 있어서는 지(止)가 되니, 이런 등속의 것은 모두가 당연한 법칙이라 바꿀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理)이다.

 

유강공(劉康公)은 말하기를,

“사람이 천지의 중(中)을 받아 태어났으니 이른바 명(命)이다. 그러므로 동작(動作), 위의(威儀)의 법칙을 두어 명(命)을 정(定)한다.”

하였다. 그가 말하는 ‘천지의 중(中)이다.’고 한 것은 곧 이(理)를 말함이요, ‘위의(威儀)의 법칙이다.’고 한 것은 곧 이(理)가 작용에 발(發)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위의(威儀) : 예법에 맞는 몸가짐.

 

주자(朱子)도 말하기를,

“만일 작용을 가지고 성(性)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칼을 잡고 함부로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것도 감히 성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또 이(理)는 형이상(形而上)의 것이요, 기(氣)는 형이하(形而下)의 것인데, 불씨는 스스로 고묘무상(高妙無上)하다 하면서 도리어 형이하의 것을 가지고 말하니 가소로울 뿐이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우리 유가의 이른바 ‘위의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과, 불씨의 이른바 ‘작용이 성’이라고 하는 것을 놓고서, 안으로는 심신(心身)의 체험에 비추어 보고 밖으로는 사물(事物)의 증험(證驗)에 비추어 본다면 마땅히 저절로 얻는 바가 있으리라.

 

[<필자미상 불화(筆者未詳佛畵)> 中 흑암지옥(黑闇地獄), 견본채색. 156.1 x 113cm, 국립중앙박물관 ㅣ 흑암지옥은 죽은 지 3년째에 마지막 심판을 받는 곳이다. 생전의 업(業)에 따라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이 심판하여 육도윤회의 길로 나선다.]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77, 조준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