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지옥의 변[佛氏地獄之辨]
선유(先儒)가 불씨의 지옥설을 변박(辨駁)하여 말하기를,
“세속(世俗)이 중[浮屠]들의 그 속이고 꾀는 말을 믿어, 상사(喪事)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부처에게 공양(供養)하고 중에게 밥을 주면서 말하기를, ‘죽은 자를 위하여 죄를 없애고, 복을 받아 천당에 태어나서 쾌락(快樂)을 누리도록 하는 것인 만큼, 만약 부처에게 공양하지 않고 중에게 밥을 주지 않는 자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 썰리고, 타고, 찧이고, 갈리[磨]는 갖가지의 고초를 받는다.’고 하니 죽은 자의 형체가 썩어 없어지고 정신 또한 흩어져 버려, 비록 썰고 불태우고 찧고 갈려고 하여도, 손댈 곳이 없는 줄을 전연 모르기 때문이다. 또 불법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째서 한 사람도 지옥에 잘못 들어가 소위 시왕[十王]이란 것을 본 자가 없단 알인가? 그 지옥이란 없기도 하거니와 믿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석씨(釋氏)의 지옥설은 다 낮은 근기[下根]의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겁나는 지옥설을 만들어 착한 일을 하게 할 뿐이다.”
한다.
정자(程子)는 이에 이르기를,
“지극한 정성이 천지를 관통하여도 오히려 사람이 감화되지 못하는데, 어찌 거짓된 가르침에 사람이 감화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옛날에 어떤 중이 나에게 묻기를,
“만일 지옥이 없다면 사람이 무엇이 두려워 악한 짓을 안 하겠느냐?”
하기에, 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은, 마치 좋은 색을 좋아하고 나쁜 냄새를 싫어함과 같아 모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이라도 악명(惡名)이 있게 되면 그 마음에 부끄러워하기를 마치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은 듯이 여기나니, 어찌 지옥설 때문에 악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느냐?”
하였더니, 그 중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여기에 이 사실을 아울러 써서, 그 설에 미혹되는 세상 사람들이 분변할 줄을 알도록 하고자 한다.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77, 조준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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