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호계에서 세 사람이 웃다.

從心所欲 2022. 2. 22. 15:05

東林送客處 동림사에서 손님 배웅하는 곳에

月出白猿啼 달뜨고 흰 원숭이 우는데

笑別廬山遠 웃으며 헤어지는 여산의 혜원 스님은

何須過虎溪 어찌 호계를 건너는가!

 

이 시는 당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리던 이백(李白)의 <동림사 스님과 헤어지다 [別東林寺僧]>란 시이다. 이백은 자가 태백(太白)이고 우리에겐 이태백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인물이다. 이태백이 지은 시는 고사(古事)를 소재로 한 것이다.

 

육조시대 동진(東晋)에 중국 정토교(淨土敎)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혜원(慧遠)이라는 고승(高僧)이 있었다. 유학을 배우고 도교에도 심취했었으나 21살 때에 도안(道安)에게서 반야경(般若經) 강의를 듣고 동생 혜지(慧持)와 함께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혜원은 33살이 되는 386년부터 중국 강서성(江西省)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라는 절에서 수행하였다. 그는 30년 동안 여산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손님을 배웅할 때도 결코 절 입구의 개울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무릉도원을 노래한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시인 도연명(陶淵明)과 도사 육수정이 혜원을 찾아왔다.이때의 일을 후대의 송(宋)나라 진성유(陣聖兪)는 <여산기(廬山記)>에 이렇게 적었다.

 

 

샘물이 절 아래를 돌다 호계(虎溪)로 흘러 들어간다. 옛날에 혜원 스님이 손님을 전송하면서 이곳을 지나는데 때마침 호랑이가 울었기 때문에 호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뒤로 혜원스님이 손님을 전송할 때 호계를 넘어가지 않았다. 당시 도연명은 율리(栗里) 남쪽에 살았고 육수정 또한 도를 추구하는 도사였다. 혜원 스님이 어느 날 이 두 사람을 전송할 때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서로 맞아 지나는 줄도 모르고 호계를 지났는데, 이로 인하여 서로를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이러한 고사로 인하여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말이 생겨났다. 호계에서 세 사람이 웃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를 화제(畵題)로 삼아 그려진 그림이 호계삼소도이다. 중국 송(宋)대의 석각(石恪)이 이 고사를 화제로 삼아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이후 많은 화가들이 이 고사를 소재로 그림을 남겼다.

 

[중국 송나라 석각 <호계삼소도>]

 

그러나 이 고사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세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차이가 난다. 혜원의 생몰년은 335 ~ 417이고, 도연명은 365 ~ 427이며, 육수정은 406 ~ 477이다. 이에 따르면 혜원이 입적한 해인 417년에 육수정의 나이는 10세에 불과했다. 육수정은 처자를 버리고 운몽산(雲夢山)이란 곳에 은거하며 수도하다가 여산(廬山)으로 은거처를 옮긴 것은 461년부터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혜원과 육수정이 만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도연명은 여산 인근의 시상(柴桑)이란 곳이 고향이었다. 그래서 이 고사는 여산을 매개로 세 인물을 엮어 만든 설화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이 설화의 의미는 결국 유불선(儒佛仙) 3교의 진리가 그 근본에 있어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는데 있다는 해석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이었던 이제현(李齊賢)은 이 설화를 소재로 하여 <여산삼소(廬山三笑)>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

 

釋道於儒理本齊 불교와 도교도 유교와 이치는 본디 같은데,

强將分別自相迷 억지로 분별하여 스스로 서로를 미혹(迷惑)하네.

三賢用意無人識 세 사람의 어진 뜻을 사람들은 모르니,

一笑非關過虎溪 한바탕 웃음은 호계를 지난 것과는 상관이 없다네.

 

[최북 <호계삼소(虎溪三笑)>, 견본 담채, 29.7 X 21,0 cm, 간송미술문화재단]

 

[필자미상 <제계삼소(帝溪三笑)> 또는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 지본, 국립중앙박물관]

 

 

참고 및 인용 : 한자성어 고사명언구 대사전(조기형, 2011, 이담북스), 한시어사전(전관수, 2007, 국학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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