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27 – 공문의 격식.

從心所欲 2022. 5. 4. 11:41

[ 경직도( 耕織圖) 10폭 병풍 中 6폭 , 각 폭 90.5 x 31.5cm, 국립민속박물관]

 

●봉공(奉公) 제4조 문보(文報) 2
그 격례(格例)와 문구가 경사(經史)와는 다르기 때문에, 서생(書生)이 처음 부임하면 흔히 어리둥절하게 된다.
(其格例文句 異乎經史 書生始到 多以爲惑)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4조인 문보(文報) 공문서를 말한다.
격례(格例) : 격식(格式)으로 되어 있는 관례(慣例)
경사(經史) : 경서(經書)와 사서(史書).

 

무릇 상사에 올린 보첩(報牒)에는 으레 서목(書目)이 있는데, 서목이란 원장(原狀)의 대개를 적은 것이다. 감사의 제판(題判)은 서목을 보고하게 되고 원장은 남겨 두어 빙고(憑考)하게 된다. - 현감ㆍ현령도 품계가 높은 부윤과 부사에게 서목을 갖춘다. - 대개 원장의 끝에는 화서(花書) - 속칭 착명(著名)이라고 한다. -  화압(花押) - 방언으로는 수례(手例)라 한다. - 을 갖추고 서목에는 화서만 있고 화압은 없는 것이니, 초임자는 알아 두어야 한다.

제판(題判) : 재가(裁可) 또는 판결.
빙고(憑考) :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여러 가지 근거에 비추어 상고(詳考).
화서(花書) : 자신의 이름자를 곱게 그려서 꽃송이 모양을 이루는 것인데, 당송(唐宋) 시대에 행해졌다.
화압(花押) : 화서(花書)와 동일하고 수례(手例) 곧 수결(手決)과 같은 것이다. 수결은 옛날 도장 대신으로 자기의 직함(職銜) 아래에 자필로 쓰던 일정한 자형(字形)이다.
방언 : 우리 말.

 

한 위공(韓魏公)이 위부(魏府)에 있을 때, 요속(僚屬)에 노증(路拯)이란 이가 책상 앞에 나와서 소관의 일을 아뢰는데, 서류의 말미에 서명할 것을 잊었었다. 한위공은 바로 그 자리를 소매로 덮고, 머리를 들고 이야기하면서 차츰 둘둘 말아서 이야기가 끝나자 조용히 그에게 넘겨 주었다. 노증은 물러가서 이 사실을 스스로 보고 부끄럽기도 하고 일편 감탄하였다.

참으로 천하의 훌륭한 덕이로다.”

중국에서는 문서에 격식이 틀리면 반드시 크게 죄를 받는다. 그러므로 한위공의 일을 훌륭한 덕이라 한 것이다.

한 위공(韓魏公) : 송나라 관리로 이름은 기(). 위공은 그의 봉호(封號).

 

세상에서는 이두(吏讀)가 신라 설총(薛聰)이 지은 것이라 하는데, - 이삶고[是白遣], 하오며[爲乎旀] 같은 것 그 중에는 간혹 알기 어려운 것이 있다. - 새로이[新反]ㆍ 갱세아[更良같은 것 수령은 경관(京官)으로 있을 때, 아는 사람들에게서 배워 익혀서 스스로 해득하도록 해야 한다. 또 전문(全文)의 취지를 서술하는 것을 등보(謄報)’라 하고, 요점만 따서 적은 것을 절해(節該)’라 하는데, 평소에 상세히 익히고 보아서 서툴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총(薛聰) : 신라 경덕왕 때의 학자로 자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堂). 벼슬은 한림(翰林)을 지내고 홍유후(弘儒侯)에 추봉되었다. 유학(儒學)을 깊이 연구하여 중국 문자에 국어로 토를 달았고, 이두(吏讀)를 창제했다고 전해진다.
갱세아[更良] : 다시 또는 거듭의 뜻.

 

상산록(象山錄)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도(西道)에 부임하는 사람은 중국의 공이(公移)를 가져다가 문구를 익혀 두어야 한다건륭(乾隆말년에  봉황성(鳳凰城)의 장군(將軍)이 의주 부윤(義州府尹)에게 공문을 보내어 칙사(勑使)가 지체되는 사유를 알려 왔다. 그 문서가 황주(黃州)에 도착했는데 관찰사(觀察使) 이하 그 문서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곧 논계(論啓)하지 못하여 일이 생길 뻔하였다.

만일 평소에 역원(譯院)의 문자를 대강 섭렵하고 예부(禮部)의 자문(咨文)도 익혀 그 연구에 통하였더라면, 어찌 급할 때를 당하여 당황할 리가 있겠는가. 그 문서는 관화(官話)의 구어(句語) - 속칭 어록체(語錄體)라 한다. - 를 쓰는 데 불과하고 장경(章京)ㆍ필첩(筆帖)은 만주어[滿語]를 섞어 쓸 따름이었는데, 우리나라 사대부들은 실용 문자를 전혀 익히지 않으니 그 폐해가 이와 같다.”

공이(公移) : 같은 등급(等級)의 관아(官衙) 사이에 주고받던 공문서(公文書).
서도(西道) …… 한다 : 서도는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지방의 통칭인데, 이곳은 중국과 접경해 있으므로 중국 공문을 받거나 중국 소식을 알아서 중앙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건륭(乾隆) : 청 고종(淸高宗)의 연호. 1736~1795.
봉황성(鳳凰城) : 요동(遼東)에 있는 지명으로 의주(義州)에서 북경(北京)으로 갈 때 거치게 되는 곳이다.
황주(黃州) : 황해도 황주군의 읍()으로 군청 소재지.
논계(論啓) : 사실을 적어서 임금에게 아뢰는 일.
역원(譯院) : 조선시대 한어(漢語)ㆍ왜어(倭語)ㆍ여진어(女眞語) 등 외국어를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
자문(咨文) : 청대(淸代)에는 대등한 지위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서를 가리켰으나 여기서는 공문서의 뜻.
관화(官話) : 중국의 표준말을 호칭하던 말로 관아에서 쓰이는 언어라는 뜻이다.
장경(章京)ㆍ필첩(筆帖) : 장경은 청대(淸代)에 군부(軍部)나 총리(總理)의 관아에서 문서를 맡은 관원. 필첩은 필첩식(筆帖式)으로 역시 각 관아에서 글씨 쓰는 일을 맡은 사람.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