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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국전 9 – 치전 재상연표

從心所欲 2022. 5. 14. 10:22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정도전이 중국의 주례(周禮)대명률(大明律)을 바탕으로 하여, 치국의 대요와 제도 및 그 운영 방침을 정하여 조선(朝鮮) 개국의 기본 강령(綱領)을 논한 규범 체계서(規範體系書)로 후에 조선 법제의 기본을 제공한 글이다.

내용은 먼저 총론으로 정보위(正寶位)ㆍ국호(國號)ㆍ정국본(定國本)ㆍ세계(世系)ㆍ교서(敎書)로 나누어 국가 형성의 기본을 논하고, 이어 동양의 전통적인 관제(官制)를 따라 육전(六典)의 담당 사무를 규정하였다.

육전(六典)국무(國務)를 수행하는 데 근거가 되는 6()의 법전을 의미한다. 통상

이전(吏典) · 호전(戶典) · 예전(禮典) · 병전(兵典) · 형전(刑典) · 공전(工典)을 말한다. 육전이란 말은 원래 주례(周禮)에서 나온 말로, ()나라 때는 치() ·() ·() ·() ·() ·()6전으로 되어있었다. 정도전은 이를 치전(治典)ㆍ부전(賦典)ㆍ예전(禮典)ㆍ정전(政典)ㆍ헌전(憲典)ㆍ공전(工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17세기 중국 명나라 초기에 제작된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 제갈공명 초상]

 

치전(治典) : 행정조직에 대한 법전

<재상연표(宰相年表)>

재상(宰相)의 직책에 대하여서는 신이 치전(治典)에서 논하였다. 그러나 재상이 된 사람은 훌륭한 인군을 만나야 위로는 도가 행해지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은혜가 미치게 되며, 살아서는 일신이 명예로워지고 죽어서는 후세에 이름이 떨치게 된다. 그런데 인군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나기란 옛날부터 어려운 일이다.
재상(宰相) : 옛날 조정에서 임금을 보필하던 최고책임자의 총칭. '()'라는 글자의 원뜻은 요리인, '()'은 보행을 돕는 자로 둘 다 노예적인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진(() 시대에 최고 행정책임자를 일컫는 말로 전용되어 진·한나라 재상은  삼공(三 公), 후한(後 漢)에서는 사도(司 徒태위(太 尉사공(司 空)을 재상이라 불렀다.
조선에서는 정3품 이상의 당상관(堂 上 官)으로 임금을 보필하여 국무를 처리하던 관직을 재상이라 불렀다. 상은 정1품의 삼의정(三議政 :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재는 정3품 당상관 이상으로서 중앙의 중요 관직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제자(帝者)의 시대에는 인군과 신하가 모두 성인이었다. 그래서 서로 더불어 당폐(堂陛)의 위에서 ‘도(都)’라, ‘유(兪)’라 하면서 태평한 정치를 이루었다. 왕자(王者)의 시대에는 인군과 신하가 모두 현인이었다. 그래서 서로 더불어 정사에 부지런히 힘써서 융숭한 치세를 이루었다. 패자(覇者)의 시대에는 인군이 신하만 못하였으나 신하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래서 또한 일대의 공업을 이루었던 것이다.
제자(帝者) : ()ㆍ순()임금.
당폐(堂陛) : 원래는 전당(殿堂)과 섬돌이라는 뜻으로, ‘군주의 존귀함은 비유하건대, 집과 같고 뭇 신하는 대궐 섬돌과 같다[人主之尊譬如堂群臣如陛]’ 한서(漢書)의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임금과 신하를 가리킨다.
()ㆍ유() : 감탄사. 요제(堯帝)가 군신(羣臣)들과 정치를 의논할 때 흔히 이 말을 사용하였는데, 대략 찬성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것이 전()하여 군신 간에 토론하고 논의하는 뜻으로 쓰였다.
왕자(王者) : 우왕(禹王)ㆍ탕왕(湯王)ㆍ문왕(文王)ㆍ무왕(武王)을 가리킴.
패자(覇者) : 춘추시대의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진목공(秦穆公), 송양왕(宋襄王), 초장왕(楚莊王) 등을 가리킴.

만약 인군의 자질이 중간 정도인 경우에는 재상에 훌륭한 사람을 얻으면 정치가 잘되고, 재상에 훌륭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정치가 어지러워진다. 예컨대, 당현종(唐玄宗)은 송경(宋璟)과 장구령(張九齡)을 재상으로 등용하였을 때에는 개원(開元)의 태평한 정치를 이룩하였으나, 이임보(李林甫)와 양국충(楊國忠)을 재상으로 등용하였을 때에는 천보(天寶)의 화란을 초래하였다.
당현종(唐玄宗) : 당나라 제6대 황제. 712 ~ 756.
개원(開元) : 당현종 초기의 연호(713 ~ 741).
송경(宋璟)과 장구령(張九齡) : 송경은 현종 때 형부 상서(刑部尙書)를 지냈고 뒤에 요숭(姚崇)의 추천으로 정승이 되었는데, 그는 요숭과 함께 현종을 도와 이른바 개원(開元)의 치()’를 이룩하였다. 장구령은 상서 우승상(尙書右丞相)으로 선정(善政)을 베풀다가 이임보(李林甫)에게 밀려났다.
천보(天寶)의 화란 : 천보(天寶)는 중국 당나라의 제9대 황제인 현종(玄宗)의 세 번째 연호이다. 천보 연간에 당나라는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안사의 난(安史之亂)’으로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였다.

아! 신하가 명군(明君)을 만나기도 진실로 어렵거니와, 인군이 양신(良臣)을 만나기도 역시 어렵다. 바야흐로 지금은 명군과 양상이 서로 만나서 성의로써 서로 믿음성을 보이며 함께 유신의 정치를 도모하고 있으니, 천 년이나 백 년에 한 번 맞이하는 융성한 시대이다. 그래서 재상의 연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시중(侍中)만을 적는 것은, 총재는 여러 직책을 겸임하고, 인주의 직책은 한 사람의 재상을 잘 선택하는 데 있으며, 모든 집사(執事) 이하는 여기에 참여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김동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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