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카이코리아 96

병풍 4 - 경직도(耕織圖)

조선의 궁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진상되고 열람된 화목(畵目) 중에 감계화(鑑戒畵)가 있다. 위정자(爲政者)인 왕과 왕세자가 올바른 윤리와 통치관을 확립하도록 돕고, 왕실과 종친, 신하와 백성의 교화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던 그림이다. 궁중의 대표적인 감계화로는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이나 잠업(蠶業)과 관련한 풍속을 월령 형식으로 읊은 『시경(詩經)』「빈풍편(豳風篇)」칠월(七月)조를 그린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와 역시 『시경』 「무일편(無逸篇)」의 ‘남의 위에 서는 사람은 일신의 즐거움이나 자기 몸의 편안함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그린 ‘무일도(無逸圖)’가 있었다. 이런 그림들은 왕의 등극이나 세자의 탄신, 지방 행차 등의 기념 선물로 빈번하게 진상되었다. 빈풍(豳風)은 『시경』국풍(國風)에 있는..

우리 옛 병풍 2020.12.05

병풍 3 - 십장생도(十長生圖)

십장생도(十長生圖)는 도교와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배경으로 하여 불로장생(不老長生)에 대한 꿈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상(吉祥) 장식화(裝飾畵)이다. 십장생도(十長生圖)는 적어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세화(歲畵)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궁중의 장식화로 선호된 주제였다. 왕실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원하는 의미에서다. 아울러 십장생도는 임금이나 왕세자의 국혼(國婚), 대왕대비나 왕비의 회갑연(回甲宴)과 같은 궁중의 주요한 행사에도 장엄과 치장을 위해 사용되었다. ▶세화(歲畵) : 정초에 신년을 송축하기 위해 왕과 신하들이 서로 주고받던 그림 고려 말의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이라는 시를 지으면서 그 서문에 세화십장생은 日雲水石松竹芝龜鶴鹿 이라고 ..

우리 옛 병풍 2020.12.04

병풍 2 - 요지연도(瑤池宴圖)

왕실에서의 병풍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의례용뿐만 아니라 실내 장식과 감상의 용도로도 병풍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정조가 개인적으로 주문하여 제작했던 그림 대부분이 병풍 형식이었던 점은 병풍이 더 이상 사치품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궁중 행사를 기록한 계병이 아닌 것으로 궁중에서 병풍으로 많이 제작되었던 화재(畵材) 중의 하나가 요지연도(瑤池宴圖)였다. 요지연도(瑤池宴圖)는 서왕모(西王母)가 자신의 곤륜산 궁중의 요지(瑤池)에서 주목왕(周穆王)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푸는 장면이다. 서왕모(西王母)는 도교에서 중국 대륙 서쪽의 곤륜산에 살고 있으면서 모든 신선들을 지배하는 최고위직 여신(女神)이다. 중국에서는 한때 불로불사의 여신으로 서왕모를 섬기는 민간신앙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적이 있었다. ..

우리 옛 병풍 2020.12.03

병풍 1 - 계병(稧屛)

조선시대의 서화(書畵)는 족자, 두루마리, 첩(帖), 병(屛)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왔다. 병(屛)은 후세에 와서 병풍(屛風)으로 불리면서 바람을 막는 용도가 더 강조되었지만, 원래는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그리거나 수놓아 뒷벽을 장식한 부의(斧扆)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의 왕 어좌 뒤에 배설되었던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처럼 장엄(莊嚴)장식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병(屛)이 서화의 장황(粧潢) 형식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제작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형태보다는 제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왕실에서 제례나 혼례 또는 제왕 교육용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왕실에서조차 병풍을 사치의 대상으로 생각했..

우리 옛 병풍 2020.12.02

항해조천도(航海朝天圖) 6

사신들은 북경의 옥하관(玉河館)에 머무르면서, 10월 18일 새벽에 조회(朝會)에 참석하여 황제를 알현하고, 다섯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린[五拜三叩頭] 뒤 물러나왔다. 그 뒤 그들의 북경에서의 나날은 바다에서 겪던 고초만큼이나 고달팠다. 11월 8일 【예부의 복제(覆題)가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므로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여 소갑(小甲)을 불러 그 연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근자에 남교(南郊)의 대례(大禮)가 박두하였으므로 지체되었습니다. 일전에 예부의 여러 관원이 회의하는 곳에서 들으니 평이 좋았으니, 과히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였다.】 ▶복제(覆題) : 회답하는 글. 인조의 왕위 책봉을 상주한 글에 대한 회답. 11월 15일 【맑음. 세월은 흘러가고 사세(事勢)는 점점 요원하므로, 황효성(黃孝..

우리 옛 뿌리 2020.11.27

토정(土亭) 이지함

《조선왕조실록》에는 조헌이 평생에 세 인물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이 이 세상에서 스승으로 섬기는 사람이 셋이 있는데 이지함·성혼·이이입니다. 세 사람이 성취한 학문은 다른 점이 있지만 깨끗한 마음과 욕심을 적게 가지는 자세, 그리고 뛰어난 행실이 세상의 모범이 되는 것은 똑같은데, 신이 일찍이 그들의 만에 하나라도 닮아보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제독(提督)의 임무를 맡고 나서 알량한 재주와 견문을 헤아리지 않고 세 사람이 신에게 가르쳐 준 것으로 어진 선비들을 깨우치려 하였으나...】(《선조수정실록》 선조 19년(1586년) 10월 1일 3번째 기사) 조헌이 스승으로 꼽은 세 사람 중 이이와 성혼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학자들인 반면, 이지함은 「토정비결」이 먼저 떠올라 의아한 ..

우리 선조들 202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