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12년인 1506년 9월 1일,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박원종(朴元宗)과 이조 참판(吏曹參判)에서 갑자기 9품의 무관직인 부사용(副司勇)으로 강등된 성희안(成希顔)이 중심이 되어 반정(反正)을 일으켰다. 이들은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그가 곧 중종이다. 멀쩡한 왕을 반역을 통하여 몰아냈으니, 반역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몰아낸 왕의 온갖 실정이 부각되어야 했다. 당연히 연산군이 운용했던 여악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고 연산군의 황음(荒淫) 무도(無道)함과 나라에 끼친 폐해가 《연산군일기》의 마지막 장과 《중종실록》첫 장에 열거되었다. 【시녀 및 공·사천(公私賤)과 양가(良家)의 딸을 널리 뽑아 들이되, 사자(使者)를 팔도에 보내어 빠짐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