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기생 15

조선의 기생 9 - 여악제도의 혁파

연산군 12년인 1506년 9월 1일,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박원종(朴元宗)과 이조 참판(吏曹參判)에서 갑자기 9품의 무관직인 부사용(副司勇)으로 강등된 성희안(成希顔)이 중심이 되어 반정(反正)을 일으켰다. 이들은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그가 곧 중종이다. 멀쩡한 왕을 반역을 통하여 몰아냈으니, 반역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몰아낸 왕의 온갖 실정이 부각되어야 했다. 당연히 연산군이 운용했던 여악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고 연산군의 황음(荒淫) 무도(無道)함과 나라에 끼친 폐해가 《연산군일기》의 마지막 장과 《중종실록》첫 장에 열거되었다. 【시녀 및 공·사천(公私賤)과 양가(良家)의 딸을 널리 뽑아 들이되, 사자(使者)를 팔도에 보내어 빠짐없..

우리 옛 뿌리 2021.05.16

조선의 기생 8 - 공물(公物)

연산군의 여악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특별한 관심과 행각을 후대는 흔히 그의 황음무도(荒淫無道)함에만 초점을 맞추어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금 색다른 해석도 있다. 사대부에 대한 왕권의 우위를 확실히 하기 위한 행위로 보는 시각이다. 그렇다고 연산군의 방종과 음란함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두 요인이 합쳐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꽤 흥미가 있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폐모사건에 대한 보복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왕을 능멸한다는 ‘능상(菱狀)’에 대한 분노로 신하 전체를 대상으로 학살과 다름없는 짓을 자행한 갑자사화 즈음에 연산군의 여악 챙기기가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여악 또는 기생은 국가의 소유물이었다. 그래서 기생이나 여기(女妓)를 가리켜 공물(公物)이라는 표현이 지속적으로 등..

우리 옛 뿌리 2021.05.04

조선의 기생 7 - 관리숙창률

조선시대 초기부터도 관리를 포함한 양반 사대부들이 기생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거나 첩으로 삼는 일은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풍기문란의 문제도 일찍부터 제기되었었다. 세종 때에 평안감사 윤곤(尹坤)은 왕의 명령을 받아 사행하는 사신들이 지방 관아의 기생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하라는 아래와 같은 건의서를 올렸다. 【"우리 동방이 해외의 한 작은 나라로서, 중국과 견주는 것은 특히 예의가 존재하기 때문 이온데, 요즘 대소 사신이 명령을 받들고 외방에 나가면, 혹은 관기(官妓)와 사랑에 빠져 직무를 전폐하고 욕심껏 즐기어 못할 짓 없이 다하며, 만약 기생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면, 그 수령이 아무리 어질어도 취모멱자(吹毛覓疵)하여 일부러 죄망에 몰아넣고, 명사들끼리나, 한 고..

우리 옛 뿌리 2021.04.27

조선의 기생 2 - 관기(官妓)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고려시대의 여악(女樂)제도를 계승하고, 조선시대 내내 성리학자들의 끊임없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생 제도가 1908년까지 유지된 것은, 제도가 문란해지면서 생겨난 폐해 못지않게 애초 제도를 설립할 때의 효용성도 함께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생(妓生)은 조선의 국역체계(國役體系)의 한 부분으로, 관부(官府)에 예속된 여자 종[공노비(公奴婢)]에게 부여된 신역(身役)의 하나였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관비(官婢)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생(妓生)인데 일명 주탕(酒湯)이라고도 하고, 하나는 비자(婢子)인데 일명 수급(水汲)이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평안도 풍속에 자색이 있는 관비(官婢)를 주탕(酒湯)이라 한다”고 했다. 수급(水汲)은 수급비(水汲婢)라..

우리 옛 뿌리 2021.04.01

조선의 기생 1 - 여악(女樂)

국어사전에 ‘기생’은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로 흥을 돋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런 설명을 보면서 ‘기생’에 대해 떠올리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유녀나 작부 또는 호스티스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를 수도 있고 음식상이 차려진 술자리에서 춤추는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퇴락해가던 시기의 기생의 모습에 더 가깝다. 기생은 매춘부나 창녀처럼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직업이 아니다. 그들은 선발되어 교육받고 훈련되어 탄생한 연예인이자 예술인이었다. 기생(妓生)이라는 한자어는 조선시대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다고 하는데 그 연원을 따지자면 여악(女樂)이다. 여악(女樂)은 한성(漢城)과 지방의 국가기관에서 신..

우리 옛 뿌리 2021.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