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도 7

목민심서 125 – 정사와 법령은 계승하고 변통하되 잘못된 점은 개선해야 한다.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13 대체로 정사의 너그럽고 가혹한 것과 정령(政令)의 좋고 나쁜 것은 계승하기도 하고 변통하기도 하여, 그 잘못된 점을 해결해야 한다. (若夫政之寬猛 令之得失 相承相變 以濟其過)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한연수(韓延壽)가 영천 태수(潁川太守)로 있을 때였다. 앞서 조광한(趙廣漢)이 태수로 있을 적에 그 고을 풍속에 붕당이 많은 것을 걱정하여, 아전과 백성들을 얽어매어 놓고, 서로 잘못을 들추어내도록 하여 그렇게 하는 것을 총명한 일로 여겼다. 이..

목민심서 2022.04.25

목민심서 94 - 관가의 재물로 남을 돕는 것은 옳지 않다.

●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3 내 녹봉에 남는 것이 있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 관가의 재물을 빼내어 사인(私人)을 돌보아 주는 것은 예(禮)가 아니다. (我廩有餘 方可施人 竊公貨以賙私人 非禮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만약 공채(公債)가 실지로 많이 있으면 그 실정을 친척과 친구들에게 두루 알려,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와서 요구하게 해야 한다. 기분을 함부로 내다가 관고(官庫)를 탕진하여 아전들은 목을 매고 종들은 도망가며 그 해독이 온 경내에 미치게 되..

목민심서 2021.12.07

목민심서 81 - 사사로운 관아 출입은 엄격히 단속하라.

● 율기(律己) 제4조 병객(屛客) 6 혼금(閽禁)은 엄하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閽禁 不得不嚴)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4조인 ‘병객(屛客)’은 지방 관청에서 책객(册客), 겸인(傔人) 등 객인(客人)과 외부로부터의 청탁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혼금(閽禁) : 관청에서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 요즈음 사람들이 혹 중문(重門)을 활짝 열어놓는 것을 덕(德)으로 여기지만, 이것이 덕이기는 하되 정사(政事)할 줄은 모르는 것이다. 내 직책은 목민(牧民)하는 것이지 손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다. 생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을..

목민심서 2021.10.14

병풍 4 - 경직도(耕織圖)

조선의 궁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진상되고 열람된 화목(畵目) 중에 감계화(鑑戒畵)가 있다. 위정자(爲政者)인 왕과 왕세자가 올바른 윤리와 통치관을 확립하도록 돕고, 왕실과 종친, 신하와 백성의 교화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던 그림이다. 궁중의 대표적인 감계화로는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이나 잠업(蠶業)과 관련한 풍속을 월령 형식으로 읊은 『시경(詩經)』「빈풍편(豳風篇)」칠월(七月)조를 그린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와 역시 『시경』 「무일편(無逸篇)」의 ‘남의 위에 서는 사람은 일신의 즐거움이나 자기 몸의 편안함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그린 ‘무일도(無逸圖)’가 있었다. 이런 그림들은 왕의 등극이나 세자의 탄신, 지방 행차 등의 기념 선물로 빈번하게 진상되었다. 빈풍(豳風)은 『시경』국풍(國風)에 있는..

우리 옛 병풍 2020.12.05

정조 16 - 친민(親民)·치국(治國)

【나라의 안위는 민심에 달려 있다. 백성이 편안하면 윗사람을 가까이 하고 수고로우면 윗사람을 원망하는 법이다. 방백(方伯)이나 수령(守令)된 자들이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는다(不擾民)'는 세 글자를 염두에 둔다면 기근에 흉년이 든 해라도 그 마음이 결코 흩어질 리가 없으니, 이와 같으면 태평의 기반이 되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는데 한번 당론(黨論)이 갈린 뒤로 조정에서는 오직 언의(言議)의 가부(可否)만을 일로 간주하고 백성의 근심과 나라의 계책은 우선 한쪽에 놓아두고 있으니, 이 어찌 나라를 위해 깊이 생각하는 도리겠는가. 사대부가 조정에 서서 임금을 섬기면서 백성과 만물을 사랑하는 데 뜻을 두었다면 이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언의(..

우리 선조들 2020.07.09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6

김홍도와 신윤복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면 풍속화의 수요가 일반 서민에게까지 확산되면서 풍속화의 제작은 더욱 활발해진다. 화풍도 다양해져 김홍도의 화풍이 유행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화풍, 문인화풍, 민화풍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김홍도, 신윤복을 정점으로 이후 풍속화의 작품성은 오히려 저하되었다.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문인화의 흐름으로 인하여 풍속화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했다는 혜산(蕙山) 유숙(劉淑, 1827 ~ 1873)의 그림으로 전해지는<대쾌도(大快圖)>이다. '대쾌(大快)'는 '크게 즐겁다'는 뜻으로 제목 왼쪽에는 병오년 온갖 꽃이 만발한 때 격양세인이 태평성대에 의지하여 그렸다(丙午萬花方暢時節 擊壤世人寫於康衢煙月)”1라는 ..

우리 옛 그림 2019.02.12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

풍속화하면 대뜸 떠오르는 인물이 김홍도와 신윤복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그림이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다는 증거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주목받는 다른 풍속화가들이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풍속화 또는 풍속도는 문자 그대로 풍속을 그린 그림이다. 좁은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궁궐이 아닌 민간의 생활상을 다룬 그림으로 한정하여 사인풍속도(士人風俗圖) · 서민풍속도(庶民風俗圖)로 나눌 수 있다. 사인풍속도는 사대부의 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수렵도, 계회도, 시회도, 평생도 등이 주제가 된다. 반면 서민풍속도는 일반 백성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다룬 것이다. 궁중에서도 임금이 정치의 참고 자료로 삼기 위하여 서민 풍속화를 제작하였는데, 빈풍7월도(豳風七月圖)1, 경직도(耕織圖)2 등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여인들의 생..

우리 옛 그림 201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