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인물도 6

김홍도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1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명에는 《산수화》 또는 《김홍도필산수도(金弘道筆山水圖)》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에 해당하는 그림 8점이 있다. 조선에도 잘 알려져 있던 중국의 역대 인물들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그림의 크기로 미루어 병풍으로 제작되었다가 해체된 병풍차(屛風次)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 ‘취한 뒤에 꽃을 본다’는 뜻의 그림에는 두 인물이 마주 앉은 집의 넓은 창 바깥에 매화나무와 마당에 두 마리의 학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매화와 학을 근거로 그림 속 주인공이 북송 때의 시인 임포(林逋, 967 ~ 1028)로 추정되고 있다. 임포는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며 매화 300본을 심고 학 두 마리를 기르며 20년간 성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

우리 옛 그림 2021.10.16

이경윤 산수인물화첩 1

낙파(駱坡)이경윤(李慶胤, 1545 ~ 1611)은 종실화가이다. 성종의 8남(男)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褱)의 종증손(從曾孫)으로, 종친계(宗親階)에 의하여 정3품 학림정(鶴林正)에 봉해졌지만 따로 벼슬은 하지 않았다. 그런 이경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들은 당대부터 뛰어나다는 평을 받으면서 화명(畵名)을 얻었다. 당대 절파화풍(浙派畵風)의 대가로 꼽히던 김시(金禔)와의 교유를 통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경윤의 그림이 단아하면서 깨끗하고 욕심 없는 담박함이 드러나는 높은 화격(畵格)의 작품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면서, 이경윤이 죽은 뒤에도 많은 이들이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고 찾게 만들었다. 아울러 동시대와 그 뒤를 세대의 문사들이 그의 그림에 시와 글을 남겼다. 전하는 ..

우리 옛 그림 2021.10.06

허균 23 - 한정록(閑情錄) 유흥(遊興) 1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유흥(遊興)은 5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산천(山川)의 경치를 구경하여 정신을 휴식시키는 것은 한거(閑居) 중의 하나의 큰 일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5 ‘유흥(遊興)’으로 한다.” ● 순 중랑(荀中郞 순선(荀羨))이 경구(京口)의 북고산(北固山)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삼산(三山 : 봉래(蓬萊)ㆍ방장(方丈)ㆍ영주(瀛洲))은 못 보았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속세(俗世)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하였다. 만약 진시황(秦始皇)이나 한무제(漢武帝)가 보았다면 틀림없이 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려 했을 것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우리 선조들 2021.09.15

허균 19 - 한정록(閑情錄) 한적(閒適) 2

● 낙성(洛城) 안팎 60~70리 사이의 모든 도관(道觀)과 불사(佛寺)와 고적지(古跡址)와 별장 가운데 천석(泉石)이나 화죽(花竹)이 있는 곳은 놀아보지 않은 데가 없고, 좋은 술과 거문고가 있는 인가(人家)는 들러보지 않은 데가 없고, 도서(圖書)와 가무(歌舞)가 있는 곳은 구경하지 않은 데가 없다. 낙천(洛川)의 수재(守宰)로부터 포의가(布衣家)에 이르기까지 연유(宴遊 : 잔치를 베풀어 즐겁게 놂)할 일로 부르는 자가 있으면 또한 때때로 찾아갔다. 매양 좋은 계절, 좋은 경치나 혹은 눈 내린 아침, 달뜨는 저녁에 호사자(好事者)들이 서로 찾아올 때면, 반드시 그들을 위해 먼저 술항아리를 꺼내 마시고 다음엔 시 상자[詩篋]를 열어 놓고 읊으며, 술이 이미 거나해지면 이내 거문고를 가져다가 궁성(宮聲)..

우리 선조들 2021.09.02

유숙 고사인물도 2

【唐武后欲造大佛 使天下僧尼 日出一錢 以助其功 당나라 측천무후가 대불(大佛)을 만들고자 천하의 중들로 하여금 매일 1전(錢)을 내어 그 공사를 돕도록 하였다.】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624 ~ 705)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이다. 당나라 3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황후로, 고종이 사망한 뒤 두 아들을 황제에 즉위시켰다가 모두 폐위시킨 뒤 자신이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나라 이름을 대주(大周)로 바꾸고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洛陽)로 옮겼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측천무후는 당나라가 대주(大周)의 황제였던 셈이다. 설화에 따르면 고종이 측천무후에게 보살의 아름다움을 지녔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자 측천무후는 기뻐하는 대신 얼굴에 슬픔에 가득해져서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백년이 지나..

우리 옛 그림 2021.08.05

유숙 고사인물도 1

유숙(劉淑, 1827 ~ 1873)은 조선 말기에 활동했던 도화서 화원이다.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여진족의 언어인 만주어를 연구하는 청학(淸學)을 전공하여 당상관에 올랐고, 유숙도 따라서 청학을 전공했으나 그림에 대한 재능으로 인하여 도화서에 들어가 정6품직인 사과(司果)를 지냈다. 유숙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지도를 받기도 하였는데, 김정희는 유숙의 그림에 대하여 “필치에 속기(俗氣)는 없으나 다만 적윤(積潤)의 의(意)가 모자란다.”고 지적하였다.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는 말 그대로 옛 고사(故事)를 주제로 한 인물화다. 여기서 말하는 고사란 중국의 고사로, 경서(經書)에 기록되었거나 역사적 사실 또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사인물도는 초상화와 더불어 중국에서 초창기에..

우리 옛 그림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