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8

허균 26 - 한정록(閑情錄) 아치(雅致) 2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아치(雅致)는 6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한정(閑情)을 좋아하는 선비의 뜻은 자연히 달라서, 속인(俗人)은 비웃고 고인(高人)은 찬탄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6 ‘아치(雅致)’로 한다.” ● 유여려(兪汝礪)가 말하였다. “부귀(富貴)를 누리는 선비는 강산(江山)이나 송죽(松竹)의 즐거움에 뜻을 두지 못하고, 산천(山川)ㆍ괴기(怪奇)ㆍ연운(煙雲)ㆍ죽석(竹石)ㆍ시주(詩酒)ㆍ풍월(風月)은 오직 세상을 만나지 못한 사람만이 비로소 그 즐거움을 독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사이에 있는 웅위(雄偉)하고 범상치 않는 곳은 하늘이 어진 사람에게 주어 그들의 우울한 생각을 풀..

우리 선조들 2021.09.23

정조 16 - 친민(親民)·치국(治國)

【나라의 안위는 민심에 달려 있다. 백성이 편안하면 윗사람을 가까이 하고 수고로우면 윗사람을 원망하는 법이다. 방백(方伯)이나 수령(守令)된 자들이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는다(不擾民)'는 세 글자를 염두에 둔다면 기근에 흉년이 든 해라도 그 마음이 결코 흩어질 리가 없으니, 이와 같으면 태평의 기반이 되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는데 한번 당론(黨論)이 갈린 뒤로 조정에서는 오직 언의(言議)의 가부(可否)만을 일로 간주하고 백성의 근심과 나라의 계책은 우선 한쪽에 놓아두고 있으니, 이 어찌 나라를 위해 깊이 생각하는 도리겠는가. 사대부가 조정에 서서 임금을 섬기면서 백성과 만물을 사랑하는 데 뜻을 두었다면 이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언의(..

우리 선조들 2020.07.09

정조 15 - 지(知)·행(行)·지(志)

이형록(李亨祿)은 책가도로 유명했던 궁중화원이었다. 그의 책가도는 구도가 짜임새 있고, 색채가 중후하며, 표현이 매우 섬세한 것이 특징이라 한다. 이형록은 57세인 1864년에 이응록(李膺祿), 64세인 1871년에 이택균(李宅均)으로 두 번 개명하였다. 책가도(冊架圖)는 우리말로 ‘책거리(冊巨里)’라고도 한다. 책거리에는 책을 놓은 선반인 책가가 있는 그림뿐만 아니라 책가가 없이 책을 비롯한 기물들을 나열한 그림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책거리가 책가도보다는 상위 개념이다. 책거리(冊巨里)는 일거리, 이야깃거리처럼 책을 비롯한 문방사우 등 사랑방의 여러 물품을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책과 문방사우(文房四友) 등을 주제로 한 책거리 그림은 학문에 대한 열망에서부터 인생의 행복과 장수까지 상징하는 길상화(吉祥畵..

우리 선조들 2020.07.08

정조 14 - 함양공부

【함양공부(涵養工夫)가 가장 어렵다. 나는 함양 공부가 부족해서 언제나 느닷없이 화를 내는 병통이 많다.】 ▶함양공부(涵養工夫) : 사물과 맞닥치기 전, 희노애락 감정이 발동하지 않은 상태인 평상시의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주자학에서는 거경공부(居敬工夫)를 가리키는데, 거경(居敬)은 내적(內的) 수양법으로서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지는 것을 의미. 【함양(涵養)은 바로 휴식을 취할 때의 공부이고 성찰(省察)은 바로 행동할 때의 공부이다. 그러나 본체가 확립된 뒤에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학자의 공부는 당연히 함양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함양만 중요한 줄 알고 성찰에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러기에 덕성을 존중하고 학문을 하는 것 중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된다.】 【사람이 ..

우리 선조들 2020.07.07

정조 5 - 선정의 현손

정조가 즉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몇 건의 상소가 연속으로 올라왔다. 모두 임오년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는 정조를 격발하여,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지목된 노론 인사들을 치죄함으로써 노론을 공격하려는 소론의 공세였다. 그러나 정조는 상소를 올린 것과 관련된 인물들을 친국하면서, 【선대왕의 하교에서 이르시기를, ‘임오년에 관계된 일은 혹 의리에 있어 충분히 옳은 것 같다 하더라도 이는 곧 나를 모함하는 것으로서, 단지 나에게만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 아니라 또한 너에게도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다. 앞날에 이 일에 대해 간범(干犯)하는 자는 빈전(殯殿) 뜰에서라도 반드시 준엄하게 국문해야 하고, 비록 성복(成服) 이전이라 하더라도 왕법으로 처단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오늘 친히 국문을..

우리 선조들 2020.06.19

정조 2 - 피곤한 왕

관물헌이 더워 정조의 몸이 손상될까 염려할 정도였으면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신하들의 고역은 어떠했을까! 정조는 그들에게 피서법을 알려준다.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있어서 외기(外氣)가 자연히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지금도 직장생활에 잘난 상사 만나면 피곤하다. 정조를 모시던 신하들도 많이 피곤했을 듯싶다. 경연(經筵)은 ‘경전(經典)을 공부하는 자리’란 의미이다. 유학에 대한 학문이 깊은 신하들이 왕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며 왕을 학문으로 인도하는 자리다. 물론 일방적 강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토론도 이루어지지만 강의의 주체는 신하이고 임금은 주로 그것을 듣는 것이 일반적 형태다. 경연의 종류..

우리 선조들 2020.06.09

정조 1 - 수기치인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종 다음으로 호감도가 높은 조선 왕은 정조일 것이다. 세종대왕이 성군(聖君)으로 추앙받는 왕이라면 정조는 그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왕이다.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기구한 운명 속에서 성장하여 정치적 소용돌이를 뚫고 왕위에 올랐던 마치 영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가 자주 소개되어서일지도 모른다. 또한 역대 조선 왕 가운데서도 정조만큼 비난거리가 없는 왕도 없다. 정조 사후 붕당정치가 끝나고 노론이 주도하는 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실록에 정조에 대한 시빗거리가 실리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정조는 자신을 철저히 관리한 왕이었다. 『일성록(日省錄)』은 1760년(영조 36)부터 1910년까지 주로 왕의 주요업무와 국정을 담은 기록물이다. 『일성록(日省錄)』은 원래 정조의 개인..

우리 선조들 2020.06.07

연암 박지원 1 - 조선의 대문호

정조는 치세 당시 문풍(文風)이 예스럽지 못하고 소설이나 패관잡기 등에서 사용되는 자유분방한 패사소품체 (稗史小品體)가 성행하는 것을 두고 그 원인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과 그가 지은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죄라고 지적하였다. 정조는 명말청초(明末淸初)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서 사용되는 문체를 배격하고 순정(醇正)한 고문(古文)의 문풍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정조가 생각하는 좋은 문체란 전한(前漢)시대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나 후한(後漢)의 반고가 쓴 『한서(漢書)』같은 문체, 한대(漢代) 이전의 형식을 제창하여 산문 문체를 개혁한 당나라의 한유나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제창했던 당나라 유종원 같은 문체였다. 정조로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

우리 선조들 201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