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20

심사정의 전이모사 1

심사정(1707 ~ 1769)은 겸재 정선(1676 ~ 1759)보다 약 30년 뒤의 화가다. 그가 활동하던 때 조선에서는 정선에 의해 주도된 소위 진경산수화가 한창 각광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심사정은 그런 시류와는 상관없이 중국의 전통 화법을 연구하는데 전념했다. 조선의 산수화는 전통적으로 중국의 정형화된 산수화 기법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유지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심사정의 선택은 당연한 순서였는지도 모른다. 6세기경 중국 육조시대 남제(南齊)의 화가이자 화론가였던 사혁(謝赫)은 ≪고화품록(古畫品錄)≫에서 회화에서 중요시되어야 하는 육법(六法)을 제시한 바가 있다. 그 육법의 하나인 ‘전이모사(轉移模寫)’는 앞선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여 그리면서 그 기법을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림..

우리 옛 그림 2022.03.09

목민심서 116 - 법을 집행하는 감사에게는 늘 예를 지켜 대하라.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4 감사(監司)는 법을 집행하는 관리이니, 비록 오랜 정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믿고 예를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監司者 執法之官 雖有舊好 不可恃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실지로 죄를 범했으면, 그가 의로써 처단하는 것은 본래 원한이 없는 것이다. 요즈음 감사는 혹시 친한 사이의 수령에게 일부러 트집을 잡아서 공정하다는 이름을 낚기도 하니, 이러한 기미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소장(蘇章)이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되었을 때, 그의..

목민심서 2022.03.05

호계에서 세 사람이 웃다.

東林送客處 동림사에서 손님 배웅하는 곳에 月出白猿啼 달뜨고 흰 원숭이 우는데 笑別廬山遠 웃으며 헤어지는 여산의 혜원 스님은 何須過虎溪 어찌 호계를 건너는가! 이 시는 당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리던 이백(李白)의 란 시이다. 이백은 자가 태백(太白)이고 우리에겐 이태백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인물이다. 이태백이 지은 시는 고사(古事)를 소재로 한 것이다. 육조시대 동진(東晋)에 중국 정토교(淨土敎)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혜원(慧遠)이라는 고승(高僧)이 있었다. 유학을 배우고 도교에도 심취했었으나 21살 때에 도안(道安)에게서 반야경(般若經) 강의를 듣고 동생 혜지(慧持)와 함께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혜원은 33살이 되는 386년부터 중국 강서성(江西省)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라는 절에서..

우리 옛 그림 2022.02.22

조선의 왕들은 누구의 젖을 먹고 자랐을까?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분유가 없었으니 모든 아이들은 젖을 먹고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은 어릴 때 왕비의 젖을 먹고 자랐을까? 조선시대의 사대부 집안에서는 유모를 들여 아이에게 대신 젖을 물리게 했는데, 이는 왕실도 마찬가지였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엄격한 심사를 통해 미리 유모를 선발하여 대기시켜 아이를 키울 준비를 시켰다. 그런데 그 유모의 신분은 대부분 천민이었다. 양가집 여인은 남녀유별의 유교적 윤리 때문에 쓸 수가 없어 결국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천민의 여자를 골라 유모를 삼았다. 몰론 아무나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종실의 여종이나 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內需司)의 여종 가운데서 골랐다. 그래서 옥체(玉體)로 불리는 조선 왕들의 귀한 몸은 아이러닉하게도 모두 천민의 젖을 먹고..

우리 옛 뿌리 2022.02.13

국뽕이 어때서

국뽕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상승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왜(倭) 우익들이 퍼뜨린 ‘헬조선’이란 말에 휩쓸려 스스로 자조하며 의기소침해있었다. 그런데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팬데믹 사태에 대처하는 체계적 의료시스템을 통하여 갑자기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우리도 세계가 왜 우리를 보는지 또 어떻게 보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와 우리나라가 이루어낸 성과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무수히 생산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우리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보니 사람들은 그것을 국뽕이라고 불렀다. 국뽕은 ‘국가’와 마약을 의미하는 ’히로뽕‘의 합성어이다. 국가..

백가쟁명 2022.02.12

정도전 17 - 불씨잡변 불씨걸식지변

불씨 걸식의 변[佛氏乞食之辨] 사람에게 있어서 먹는다는 것은 큰 일이다. 하루도 먹지 않을 수 없는가 하면, 그렇다고 해서 하루도 구차하게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목숨을 해칠 것이요, 구차스럽게 먹으면 의리를 해칠 것이다. 그러므로 홍범(洪範)의 팔정(八政)에 식(食)과 화(貨)를 앞에 두었고, 백성에게 오교(五敎)를 중하게 하되, 식을 처음에 두었으며, 자공(子貢)이 정사[政]에 관하여 물으니 공자(孔子)도 대답하기를, “먹을 것부터 족(足)하게 하라.” 하였다. ▶홍범(洪範) : 홍(洪)은 크다, 범(範)은 법(法)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큰 규범(規範)’. ▶팔정(八政) :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여덟 가지 정사(政事). 즉 식ㆍ화(食貸 : 민생(民生)문제)ㆍ사(祀 : 제사)ㆍ사공(..

우리 선조들 2022.02.11

심사정필산수도

조선시대에 이름을 얻었던 화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양반 신분으로 취미삼아 그린을 그림 이들과 전문 화원이다. 공재 윤두서와 관아재 조영석이 전자에 속하고 정선, 김홍도, 신윤복은 모두 전문 화원들이다. 그런데 이런 부류에서 벗어나 양반 신분이면서도 그림을 천직처럼 여기며 살아가야했던 인물이 있었다.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 ~ 1769)이다. 심사정의 증조부는 영의정을 지냈고 그 증조부의 형은 효종의 사위였으니 증조부대에만 해도 심사정의 집안은 명문 사대부 가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 심익창(沈益昌)이 경종 때에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 시해를 도모한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사사되면서 심사정의 집안은 몰락하였다. 심사정은 태어나면서부터 역적 집안의 자손이라는 굴레를 지고 살아야 ..

우리 옛 그림 2022.02.08

목민심서 110 - 윗사람이 독촉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 있다.

●봉공(奉公) 제2조 수법(守法) 4 이익에 유혹되지 않고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법을 지키는 도리이다. 비록 상사가 독촉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음이 있어야 한다. (不爲利誘 不爲威屈 守之道也 雖上司督之 有所不受)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2조인 수법(守法)은 ‘법을 지키는 것’이다. 이명준(李命俊)이 고산 찰방(高山察訪)이 되었는데, 그 역(驛)이 북관(北關)의 요도(要道)에 놓여 있었다. 역마를 타는 자들이 흔히 법의 한계를 넘어서 지나치게 요구하는 수가 많으므로 역졸(驛卒)들이 명령을 견디어낼 수가 없었다. 그는 법대로 집행하면서 ..

목민심서 2022.02.06

정도전 15 - 불씨잡변 불씨지옥지변

불씨 지옥의 변[佛氏地獄之辨] 선유(先儒)가 불씨의 지옥설을 변박(辨駁)하여 말하기를, “세속(世俗)이 중[浮屠]들의 그 속이고 꾀는 말을 믿어, 상사(喪事)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부처에게 공양(供養)하고 중에게 밥을 주면서 말하기를, ‘죽은 자를 위하여 죄를 없애고, 복을 받아 천당에 태어나서 쾌락(快樂)을 누리도록 하는 것인 만큼, 만약 부처에게 공양하지 않고 중에게 밥을 주지 않는 자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 썰리고, 타고, 찧이고, 갈리[磨]는 갖가지의 고초를 받는다.’고 하니 죽은 자의 형체가 썩어 없어지고 정신 또한 흩어져 버려, 비록 썰고 불태우고 찧고 갈려고 하여도, 손댈 곳이 없는 줄을 전연 모르기 때문이다. 또 불법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 선조들 2022.02.04

용 그림

갖가지 좋은 꿈 중에서 그래도 으뜸은 용꿈일 듯하다. 물론 꿈의 내용에 따라 여러 해석을 달리하겠지만 일단 꿈에 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웬만하면 기분 좋아지는 꿈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용꿈을 새해가 시작되는 밤에 꾸는 것은 누구나 바랄 일이다. 오늘 용 그림을 많이 들여다보면 혹시 밤에 용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영조의 총애를 받고 영조로부터 남리(南里)라는 호까지 하사 받은 도화서 화원 김두량(金斗樑)이 그린 는 원본 그림의 종적은 없이 1933년에 촬영된 유리건판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겨져있다. 앉은 채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고사(高士)의 오른편에 하늘로 올라가는 작은 용을 그려 그림 속 인물이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고 있음을 나타냈다. 그림 속 고사(高士)는 화양건을 쓰고 등에 칼..

우리 옛 그림 202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