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객 심용이 죽었을 때 모인 예인들이 “공은 풍류를 즐기는 사람 중에서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었고 또 소리를 아는 사람이었소.” 라고 했다. 이 말은 풍류를 즐기는 선비와 사대부들 중에서도 음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사실과 또 예인들의 음악을 즐길지언정 그들을 제대로 대접해주는 사람도 드물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이정보나 서평군 정도로 음률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갖는 것은 특별한 경우였을 것이다. 또한 당시의 예인들은 중인, 양인 때로는 천민 출신까지 있었으니 많은 사대부들은 그들을 아랫것 정도로 여기고 대했을 것이다. 심평이나 서평군처럼 그들과 가까이 하여 어울리는 것은 양반으로서 체면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높다. 이세춘과 계섬 일행이 평안감사 취임연에 가서는 신명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