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생활 18

시골에 오는 봄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 물이 오른다. 겨울을 견뎌낸 생명력이 딱딱한 껍질을 뚫고 봉오리를 열기 시작한다. 봄비를 맞은 살구나무는 곧 꽃을 피울 기세다. 멀리 뵈는 산 정상에는 봄비와 아지랑이가 섞여 한 폭의 산수화다. 불과 일주일이면 온 주변이 연둣빛으로 물들을 것이다. 먼저 연둣빛으로 치장한 귀룽나무는 머지 않아 또 흰색 꽃으로 하얗게 물들 것이다. 언제나 봄은 이렇듯 소리 없이 온다.

백로도 고단하다.

백로는 그 몸의 흰 빛과 고고해 보이는 자태로 인하여 우아하고 고상한 새로 인식되어 왔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미동도 없이 서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세상의 모든 명리를 잊은 듯 너무도 초연해 보여 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지난 삶을 돌아보게도 만든다. 그런데 오래 지켜보니 백로의 삶 또한 우리 인간사와 하나도 다름이 없다. 그 고상하고도 초연해 보이는 모습이 사실은 먹이를 노리는 백로의 삶의 현장이었다. 물속에 일렬로 줄지어 선 이 모습이 신기해 보이지만 백로들은 흐르는 물의 길목에 각기 자리를 잡고 지켜 서서 물속의 고기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고상해 보이는 이 백로들끼리는 영역 싸움도 한다. 먼저 자리를 잡았지만 먹이가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새가 뒤늦게 오면 그 새가 멀리 도망갈 때까지 ..

버려야 얻는다.

산의 야생 열매들이 고르지 않고 크기도 작은 것은 돌봄을 받지 못해서이다. 그런 자연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과일들이 그런 열매를 맺게 되면 농사는 망친 것이다. 과일은 무작정 많이 열리는 것보다 열린 과일의 품질이 중요하다. 아무리 많이 열리더라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이 역시 농사를 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좋은 열매를 맺어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 농부가 하는 일이다. 나무의 뿌리를 통하여 공급되는 영양분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무에 달린 열매가 많으면 분배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잘 받아먹어 튼실하게 자라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못 얻어먹어 자라다 말기도 하고 병이 드는 놈들도 있다. 그래서 농부는 나무에 달린 열매가 튼실하게 자라도록 하는 일에 앞서 먼..

혼자서도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처음 시골에 내려오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발길이 뜸해지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찾아온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고 외로움이 찾아오면서 혼자만 세상에서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언제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던 때가 그립고 사람 사는 것처럼 떠들썩한 도시 풍경이 자꾸 떠오른다. 그렇게 좋다고 생각되던 한적한 시골 풍경이 마냥 쓸쓸하게만 느껴지기 시작한다. 심해지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살던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사업도 양다리 걸쳐서 성공하는 예가 드물듯, 시골살이도 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적응하기 힘들다. 사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뭐든지 불편한 것이 많다. 그런 시골에 정을 붙이고..

시골로 내려온 이유를 잊지 말기

시골에 내려오게 되는 결심의 가장 큰 이유가 자연과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으면서도 사람들은 자주 그것을 잊는다. 돈도 벌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시골보다 도시가 낫다. 시골은 쓰고 먹고 즐기러 오는 곳이다. 그래야 자신도 행복하고 지방도 산다. 居之平 安爲福 萬事分定要知足 지내는 것이 평안하면 그것이 곧 행복, 만사의 나눔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하네. 粗衣布履山水間 放浪形骸無拘束 허름한 옷 입고 면포 신발 신은 채 자연 속에 살지만 떠도는 내 몸은 자유로워 걸릴 것 없네. 好展卷 愛種竹 花木數株喜淸目 글 읽기 좋아하고 대나무 심는 것 즐겨하여 꽃과 나무 몇 그루 눈을 맑게 해주니 기쁘도다. 滌煩襟 遠塵俗 靜裏蒲團功更熟 번거로운 생각 씻어버리고 티끌세상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