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기 40

봄의 다양한 초록 빛깔

초록동색(草綠同色). 처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한 편이 되어 어울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이 말의 원래 의미는 풀빛과 녹색(綠色)은 같은 빛깔이란 뜻이다. 잎이 한창 무성한 여름에는 짙은 녹색으로 산의 색깔이 거의 같지만, 봄 산은 다르다. 나무마다 처음 내는 나뭇잎 색깔이 달라, 같은 녹색 안에서도 울긋불긋함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을 모두 녹색이라는 한마디로 뭉뚱그리는 것은 너무 무신경한 말 같아 나무들에게 미안하다. 나뭇잎의 서로 다른 색깔 차이를 느끼든 못 느끼든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의 희비애락은 또 무엇이 특별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귀룽나무

이름도 생소한 귀룽나무는 시골이라고 해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귀룽나무는 보통 200에서 1,000m 고지의 깊은 산골짜기나 비탈, 계곡가에 주로 자라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무가 있는 곳도 600m 고지다. 자라면 높이가 10 ~ 15m까지 이른다고 한다. 나무가 커지면 가지가 길고 무성하게 나와 아래로 쳐지기 때문에, 햇빛을 잘 받으면 사진처럼 전체적으로 둥그런 모양이 된다. 원래 5월 초에 꽃이 피는데 올해는 4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했다. 흐드러지게 핀다는 표현이 딱이다.

Cherry Blossom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가는 듯하다. 봄도 그렇다. 어느새 왔는가 싶으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가버리고 만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종달새 지저귐은 봄이 오는 소리가 아니라 이미 와버린 봄이 지나가는 소리인 듯하다. 사람들이 한창 봄이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봄은 이미 저만치 가서 자신이 남긴 뒷모습을 돌아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벚꽃이 지자 체리나무에 꽃이 피었다. 연한 분홍빛을 띠는 벚꽃과 달리 체리 꽃은 흰색이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 꽃잎은 지네. 바람에.“ 봄처럼 상큼하고 아련한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밤이 오는 시골 풍경

아침에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보면 왜 태극(太極)을 남색과 홍색으로 그렸는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저녁놀의 색 대비는 아침처럼 강렬하지는 않다. 그래도 저녁놀이 만들어내는 하늘 색깔은 황홀하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은 듯도 하여 엄숙하기도 하다. 나뭇가지 끝에 걸린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마음 가득한 온갖 욕심들이 모두 허망해진다. 해가 아침 동쪽에서 떠서 하늘 높이 올랐다 다시 서쪽으로 넘어가는 일을 반복하며, 우리의 삶이 그와 같음을 매일 알려줘도 깨닫지 못함은 욕심에 사로잡힌 어리석음 때문이리라. 황혼처럼 아름다운 색을 내며 인생의 끝자리를 맞는 이는 얼마나 될까!

시골에 오는 봄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 물이 오른다. 겨울을 견뎌낸 생명력이 딱딱한 껍질을 뚫고 봉오리를 열기 시작한다. 봄비를 맞은 살구나무는 곧 꽃을 피울 기세다. 멀리 뵈는 산 정상에는 봄비와 아지랑이가 섞여 한 폭의 산수화다. 불과 일주일이면 온 주변이 연둣빛으로 물들을 것이다. 먼저 연둣빛으로 치장한 귀룽나무는 머지 않아 또 흰색 꽃으로 하얗게 물들 것이다. 언제나 봄은 이렇듯 소리 없이 온다.

백로도 고단하다.

백로는 그 몸의 흰 빛과 고고해 보이는 자태로 인하여 우아하고 고상한 새로 인식되어 왔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미동도 없이 서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세상의 모든 명리를 잊은 듯 너무도 초연해 보여 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지난 삶을 돌아보게도 만든다. 그런데 오래 지켜보니 백로의 삶 또한 우리 인간사와 하나도 다름이 없다. 그 고상하고도 초연해 보이는 모습이 사실은 먹이를 노리는 백로의 삶의 현장이었다. 물속에 일렬로 줄지어 선 이 모습이 신기해 보이지만 백로들은 흐르는 물의 길목에 각기 자리를 잡고 지켜 서서 물속의 고기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고상해 보이는 이 백로들끼리는 영역 싸움도 한다. 먼저 자리를 잡았지만 먹이가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새가 뒤늦게 오면 그 새가 멀리 도망갈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