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기 40

버려야 얻는다.

산의 야생 열매들이 고르지 않고 크기도 작은 것은 돌봄을 받지 못해서이다. 그런 자연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과일들이 그런 열매를 맺게 되면 농사는 망친 것이다. 과일은 무작정 많이 열리는 것보다 열린 과일의 품질이 중요하다. 아무리 많이 열리더라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이 역시 농사를 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좋은 열매를 맺어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 농부가 하는 일이다. 나무의 뿌리를 통하여 공급되는 영양분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무에 달린 열매가 많으면 분배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잘 받아먹어 튼실하게 자라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못 얻어먹어 자라다 말기도 하고 병이 드는 놈들도 있다. 그래서 농부는 나무에 달린 열매가 튼실하게 자라도록 하는 일에 앞서 먼..

혼자서도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처음 시골에 내려오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발길이 뜸해지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찾아온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고 외로움이 찾아오면서 혼자만 세상에서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언제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던 때가 그립고 사람 사는 것처럼 떠들썩한 도시 풍경이 자꾸 떠오른다. 그렇게 좋다고 생각되던 한적한 시골 풍경이 마냥 쓸쓸하게만 느껴지기 시작한다. 심해지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살던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사업도 양다리 걸쳐서 성공하는 예가 드물듯, 시골살이도 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적응하기 힘들다. 사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뭐든지 불편한 것이 많다. 그런 시골에 정을 붙이고..

시골로 내려온 이유를 잊지 말기

시골에 내려오게 되는 결심의 가장 큰 이유가 자연과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으면서도 사람들은 자주 그것을 잊는다. 돈도 벌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시골보다 도시가 낫다. 시골은 쓰고 먹고 즐기러 오는 곳이다. 그래야 자신도 행복하고 지방도 산다. 居之平 安爲福 萬事分定要知足 지내는 것이 평안하면 그것이 곧 행복, 만사의 나눔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하네. 粗衣布履山水間 放浪形骸無拘束 허름한 옷 입고 면포 신발 신은 채 자연 속에 살지만 떠도는 내 몸은 자유로워 걸릴 것 없네. 好展卷 愛種竹 花木數株喜淸目 글 읽기 좋아하고 대나무 심는 것 즐겨하여 꽃과 나무 몇 그루 눈을 맑게 해주니 기쁘도다. 滌煩襟 遠塵俗 靜裏蒲團功更熟 번거로운 생각 씻어버리고 티끌세상 멀리..

시골에선 50대도 젊은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사과 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이다. 나무에 비료만 잘 주면 알아서 열릴 것이라는 농알못의 생각과는 달리 과수원에도 의외로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1월에 비료주기부터 시작해서 가지치기, 적과를 비롯하여 팔기 좋은 사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사과를 수확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일손이 필요하다. 처음 내려왔을 때만해도 그런 일들은 주로 지역민들이 했다. 하지만 불과 2, 3년 만에 이제는 거의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일손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서로 같다보니 그 마저도 미리미리 예약을 해두지 않으면 사람 부르기도 어렵다. 농사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되면 과수원 주인들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농촌인구의 노령화는 어제 오늘 들은 얘기가 아니지만 실제로 시골에 살아보면 느끼는 ..

농사는 평생 지은 사람도 힘들다.

그래도 시골에 내려왔으니까 한 번은 농사를 지어봐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굳이 땅을 사지 않더라도 해볼 수 있는 길이 있다. 도지(賭地)를 얻으면 된다. 농촌의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농가에서 대신 농사지으라고 빌려주는 땅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지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나오는 땅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땅은 인맥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만일 시골에 그런 인맥이 없다면 농사일을 다니면서 인맥을 만들면 된다. 농사일을 아무나 붙여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인력을 필요로 하는 농사일은 대부분 팀으로 움직인다. 그것도 인맥이 없으면 농사일 경험이 없는 사람은 끼기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 무..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9년 귀농·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귀농인의 2/3 이상이 5060세대라고 한다. 30대 이하는 10% 남짓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현상은 지자체에서 바라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가 귀농인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는 젊은 세대들이 내려와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 정착하기를 바라는 착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구소멸도 막고 젊은 사람들의 신선한 발상으로 농업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5060세대의 귀농은 일시적으로 인구감소를 늦춰주는 착시현상을 보일 수는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고령인구의 증가와 가속화라는 또 다른 짐을 지자체에 안기게 된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5060세대의 귀농은 대부분 “누구는 나면서 농사지었나?!”라는 개척정신과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의 발로다...

땅에서 해방되면 자유롭다.

농사에 목숨을 걸고 시골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땅을 찾아 헤맬 이유는 없다. 오히려 땅에서 해방되면 훨씬 즐겁고도 여유로운 시골생활을 즐길 수 있다. 자연이 좋아서 내려오는 경우라도 시골은 어느 곳에서나 5분만 차로 나가면 모두 자연이다. 굳이 자연 찾아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글 쓰는 사람은 읍내 주변의 빌라에 세를 얻어 자리를 잡았다. 시장과 마트가 있는 읍내까지는 걸어서 10분, 차로 2 ~ 3분 거리로 가깝지만 읍내의 번잡함은 전혀 없다. 지금 지내는 곳은 창밖 풍경이 좋다. 비록 앞의 전신주와 전선이 시야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런 것쯤은 마음에서 지워버리면 된다. 침대에 누워서도 산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집안에서도 산 아래 냇물에 떠다니는 오리 무리를 보고 백로 수십 마..

시골텃세

시골텃세... 지역민은 없다고 하고 귀농, 귀촌인은 있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의하면 2018년까지 귀농, 귀촌인구는 50만 명에 이른다. 그리고 2016년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귀농, 귀촌인 가운데 마을 주민과 갈등을 경험한 비율은 무려 45%에 이른다고 한다. 시골에 내려온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가 지역민과 갈등을 겪는 것이다. 갈등의 주요원인은 선입견과 텃세로, 갈등 원인의 50%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우리’라는 말로 대표되는 ‘관계’를 유독 중요시해온 사회다. 그리고 그 전통적 가치관이 아직도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 농촌이다. 그곳에 ‘내돈내산’을 따지는 이질적 도시의 가치관이 들어가면 당연히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골 마을의 거의 모든 마을 안길은 마을 사람들이..

시골인심?

길을 막았느니 물을 못 쓰게 했느니 하여 귀농인과 현지인의 갈등을 보도하는 뉴스들을 접하면 도시인들은 무의식중에 “시골 인심이 옛날과 다르게 변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 땅을 사서 시골에 내려왔다고 치자. 그런데 자신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남의 땅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소위 말해서 맹지(盲地)다. 그러니까 당연히 땅값도 쌌을 것이다. 땅을 파는 사람과 부동산에 물어봤더니 그 길은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온 길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땅을 샀다. 실제로 내려와 살면서 그 길을 이용해 드나드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포장이 안 된 길이 불편하여 길을 포장하고 싶었다. 그래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 먼저 길이 속해있는 땅주인을..

서두름이 실수를 낳는다.

시골에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흔히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땅부터 사는 것이다. 미지의 거처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때 ‘내 땅’이 있다는 것은 많은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땅을 사두면 땅값이 오를 것이며 농사를 지어 소득도 올릴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있고, 남의 집에 살 때의 불편함과 경제적 부담도 고려한 것이니 일견 합리적 결정처럼 보인다. 이 글을 쓰는 자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인에게 땅을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러마고 대답은 하면서도 너무 서두르지 말고 내려와서 살며 천천히 사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지인과 부동산을 통하여 부지런히 여러 곳을 둘러보고 거의 구입 직전까지도 갔었다. 그러다 일이 틀어져서 결국 땅을 사지 못한 채 셋집을 얻어 내려왔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