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11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예전 우리나라의 자랑이 ‘높고 푸른 가을하늘’ 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기자들이 방금 공항에 내린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한국의 가을하늘이 어떠냐?”고 묻고는 그 외국인의 입 발린 칭찬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싣곤 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Do you know...?" 이니 기자들은 정말 공부도 안 하고 취재준비도 안 하나 보다. 오랫동안 회색 구름과 비만 보다가 간만에 하늘이 개였다. 시골이라도 이런 색의 하늘 보기는 쉽지 않다. 지금은 낯선 이 시리도록 파란 빛깔의 하늘이 어린 시절에는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밤이면 도시에서도 은하수는 물론 온 하늘을 덮은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꼭 누군가가 견우직녀 얘기를 꺼냈고 서로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이 별 저별을 손가락질하며 견우..

사과가 빨갛다고 맛있는 것은 아니다.

추석이 다가온다. 과일, 그 중에서도 사과는 가장 일상적인 추석선물의 하나다. 백화점에서 선물용으로 파는 사과들은 하나 같이 빨갛고 크다. 따라서 값도 비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사과들은 보기에 먹음직하면 맛도 좋다는 속설을 깨뜨린다. 이 사과들은 애초에 맛있는 사과를 생산해내기 위해 재배된 사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 특유의 향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냥 보기에만 좋은 사과일 뿐이다. 각 지역 농협에서 사과를 수매할 때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색깔과 크기다. 겉모양만 좋으면 맛과는 상관없이 높은 등급을 받고 높은 가격을 받는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굳이 사과 맛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맛있는 사과보다는 보기 좋은 사과를 키워내야 더 소득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무 ..

농사는 평생 지은 사람도 힘들다.

그래도 시골에 내려왔으니까 한 번은 농사를 지어봐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굳이 땅을 사지 않더라도 해볼 수 있는 길이 있다. 도지(賭地)를 얻으면 된다. 농촌의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농가에서 대신 농사지으라고 빌려주는 땅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지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나오는 땅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땅은 인맥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만일 시골에 그런 인맥이 없다면 농사일을 다니면서 인맥을 만들면 된다. 농사일을 아무나 붙여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인력을 필요로 하는 농사일은 대부분 팀으로 움직인다. 그것도 인맥이 없으면 농사일 경험이 없는 사람은 끼기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 무..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9년 귀농·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귀농인의 2/3 이상이 5060세대라고 한다. 30대 이하는 10% 남짓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현상은 지자체에서 바라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가 귀농인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는 젊은 세대들이 내려와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 정착하기를 바라는 착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구소멸도 막고 젊은 사람들의 신선한 발상으로 농업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5060세대의 귀농은 일시적으로 인구감소를 늦춰주는 착시현상을 보일 수는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고령인구의 증가와 가속화라는 또 다른 짐을 지자체에 안기게 된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5060세대의 귀농은 대부분 “누구는 나면서 농사지었나?!”라는 개척정신과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의 발로다...

시골텃세

시골텃세... 지역민은 없다고 하고 귀농, 귀촌인은 있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의하면 2018년까지 귀농, 귀촌인구는 50만 명에 이른다. 그리고 2016년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귀농, 귀촌인 가운데 마을 주민과 갈등을 경험한 비율은 무려 45%에 이른다고 한다. 시골에 내려온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가 지역민과 갈등을 겪는 것이다. 갈등의 주요원인은 선입견과 텃세로, 갈등 원인의 50%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우리’라는 말로 대표되는 ‘관계’를 유독 중요시해온 사회다. 그리고 그 전통적 가치관이 아직도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 농촌이다. 그곳에 ‘내돈내산’을 따지는 이질적 도시의 가치관이 들어가면 당연히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골 마을의 거의 모든 마을 안길은 마을 사람들이..

시골인심?

길을 막았느니 물을 못 쓰게 했느니 하여 귀농인과 현지인의 갈등을 보도하는 뉴스들을 접하면 도시인들은 무의식중에 “시골 인심이 옛날과 다르게 변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 땅을 사서 시골에 내려왔다고 치자. 그런데 자신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남의 땅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소위 말해서 맹지(盲地)다. 그러니까 당연히 땅값도 쌌을 것이다. 땅을 파는 사람과 부동산에 물어봤더니 그 길은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온 길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땅을 샀다. 실제로 내려와 살면서 그 길을 이용해 드나드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포장이 안 된 길이 불편하여 길을 포장하고 싶었다. 그래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 먼저 길이 속해있는 땅주인을..

느리게 가는 시골길

도시인들이 애초에 시골에 내려오면서 원하는 땅은 대개 몇 백 평 내외의 작은 땅이다. 그런데 막상 시골에는 그런 크기의 땅이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흔치 않다. 작아도 천 평은 훌쩍 넘기가 예사다. 마음에 드는 작은 크기의 땅이 있더라도 그런 땅은 가격이 높아, 그 돈이면 좀 외진 곳의 몇 천 평 땅도 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경제논리에 익숙한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같은 값에 큰 땅을 산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았던 귀농인이 되는 것이다. 도시에서 집을 살 때는 나름 교통이나 주거환경 등 여러 가지를 꼼꼼히 따진다. 그런데 잘 모르는 농촌에서 땅을 살 때는 가격에만 매달린다. 그 땅이 내게 필요한지, 어떤 용도에 적합한 땅인지, 하다못해 좋은 땅인지 아닌지에 대한 깊은 생각도 없이 가격이 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