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 17

유운홍 풍속도

시산(詩山) 유운홍(劉運弘)은 조선 후기의 도화서(圖畵署) 화원이다. 1797년생으로 김홍도보다는 50여년, 신윤복보다는 40년 뒤에 태어나 순조에서 헌종을 거쳐 철종 대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다. 20년이나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으로 봉직했던 그는 산수, 인물, 화조를 비롯하여 풍속화까지 다양한 화목을 두루 다뤘다. 하지만 그의 풍속화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풍을 따랐다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닌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이뤄내지 못하면 늘 아류 취급을 당하기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받기 힘들다. 그가 남긴 풍속화 중 그나마 널리 알려진 것이 이다. 툇마루에 모여 있는 3명의 기녀를 그린 이 그림은 배경을 상세히 그린 것이 신윤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 있다. 기녀라는 주제와 ..

우리 옛 그림 2022.01.04

신윤복의 또 다른 풍속화첩일까?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에 그냥 「풍속도첩(風俗圖帖)」으로만 이름을 올린 화첩이 있다. 작가는 ‘전(傳) 신윤복(申潤福)’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를 신윤복의 작품이라고 확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전체 일곱 면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화첩의 그림들은 남녀 간의 야릇한 관계를 암시하는 그림들이 다수 있다. 그림에 낙관도 없고 필치가 꼭 신윤복의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중에는 그림에 담아낸 춘의(春意)나 몇몇 인물묘사를 보면 꼭 신윤복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익히 보던 신윤복의 그림들보다는 훨씬 이른 시기에 그려진 그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이 화첩이 신윤복의 것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옛그림을 대하는 심정으로..

우리 옛 그림 2021.03.08

성협의 풍속화

성협(成夾)은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라는 사실 외에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독일신부로 조선에서 20년 머물렀던 안드레 에카르트(Andre Eckardt)의 「조선미술사(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에 성협을 신윤복의 친척이라고 소개한 것이 거의 유일한 기록일 정도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성협의 풍속화첩을 소장하고 있고 그 가운데 몇은 낯익은 그림도 있지만 그의 풍속화첩 전체가 소개된 적은 없는 듯하다. 화첩 중에서 그나마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이 야외에서 쇠 화로에 전립투를 올려놓고 고기를 구어 먹는 이라는 그림일 것이다. 제발(題跋)의 내용은 이렇다. 【술잔과 젓가락 늘어놓고 온 동네 사람 모인 자리 버섯과 고기가 정말 맛나네. 늘그막의 식탐이 이쯤에서..

우리 옛 그림 2021.02.11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9

상황에서 춘의를 느끼게 그려진 것이 조선 춘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사실 조선 춘화에서 성기가 노출되었냐 아니냐는 오히려 큰 의미가 없을 듯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傳) 신윤복 이라는 그림은 어느 춘화보다도 춘의가 넘쳐나는 그림이라 할만하다.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가체로 얹은머리를 한 여인은 여염집 아낙이다. 얹은머리는 쪽진머리와 함께 혼인한 부녀자의 대표적인 머리형태다. 이 여인을 기생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상당히 많은데 앞치마 두른 여인을 기생과 연결하는 그 창의력이 놀랍다. 누군가를, 그것도 이성을 만나길 기다린다면 둘렀던 앞치마도 벗고 한껏 치장을 해도 시원찮을 여자의 마음일 텐데 화가가 그것도 못 헤아려 앞치마를 입혔을까? 화가 역시 혹시라도 보는 이가 기생으로 오해할까봐 굳이 앞치마..

우리 옛 그림 2019.03.02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7

긍원(肯園) 김양기(金良驥)는 김홍도의 아들이다. 생몰년도 알 수 없고 조희룡과 교유관계가 있었던 사실 이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조희룡은 그의 「호산외기 壺山外記」에 “그림에 가법(家法)을 전수한 바 있어 산수와 집과 수목을 잘 그렸는데, 아버지보다 뛰어난 안목도 있다”고 하였다. 헤엄치는 오리를 그린 김양기의 이다. 산수, 화조(花鳥) 등의 소재를 잘 다루었다는 말대로 김홍도가 그렸던 몇 점의 유압도와 비교해도 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아래는 김양기의 이다. 노름이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부감으로 세세히 그려냈다. 횃대에 걸린 도포와 남바위, 벽의 자명종, 둥근 바탕에 화조도가 그려진 화초장까지 배경이 아주 풍부하다. 거기다 소반에 음식을 받쳐 들고 들어오는 두 아낙과 바닥에 누워있는 두 남정네..

우리 옛 그림 2019.02.15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2

「여속도첩(女俗圖帖)」에서 보았던 여러 그림들을 거쳐 혜원은 마침내 이 를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머뭇거림과 소심함은 모두 털어내고 여인의 모습 하나로 화폭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었다. 盤礴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가슴에 가득한 일만 가지 봄기운을 담아 붓끝으로 능히 인물의 참모습을 나타내었다”. 전신(傳神)은 인물을 그릴 때 외형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동양의 초상화론인데 자신의 그림이 그렇다고 했으니 보통의 자화자찬이 아니다. 혜원 자신이 그만큼 그림에 만족했다는 뜻이다. 이 그림은 지금 조선의 미인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혜원이 인물의 속 모습까지 그려냈다고 했으니 이 그림 속의 여인은 그냥 상상의 인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

우리 옛 그림 2018.12.20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1

인물이 등장하는 신윤복의 그림으로는 드물게 배경 없이 인물만 그린 그림이다. 단원의 풍속화처럼 여러 사람이 등장하여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여자 하나가 걸어가는 모습뿐이다. 그런데 혜원은 그림 한 쪽에 “이전 사람이 그리지 못한 것을 그렸으니 기이하다고 할만하다.(前人未發可謂奇)”고 적었다. 현대인에게는 특별할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너무도 단순한 이 그림이 뭐가 그리도 대단해서 혜원은 이런 말을 적었을까? 아래는 같은 「여속도첩(女俗圖帖)」에 있는 다른 그림이다. 이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이슬람 여자들이 히잡(Hijab)을 쓰거나 부르카(Burka)를 착용한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같은 작가가 같은 시대의 여인을 그렸는데 그림의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은 여염집 여인의 외출 패션이고, 은 ..

우리 옛 그림 2018.12.18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0

은 아마도 우리 옛 그림 가운데 가장 귀족적인 분위기의 그림이 아닐까 싶다. 학과 연못이 있고 취병(翠屛)으로 둘러싸인 정원과 그 안에 기생들을 불러 앉혀놓고 대금과 거문고 연주를 감상하는지 팔걸이에 기대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인물의 거만하고 방자한 모습까지 집주인의 위세가 어떠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슴에 두른 세조대(細條帶)의 붉은 색이 선명하니 벼슬은 당상관이다. 당상관(堂上官)은 정3품 상계(上階)이상의 품계를 가진 벼슬아치다. 거기다 집안에 연못을 파고 학을 기르고 취병까지 설치할 정도면 재물도 꽤 많은 모양이다. 집주인과 기생들이 앉아있는 바깥을 두르고 있는 나무 담장이 취병(翠屛)이다. 비췻빛 병풍 이란 뜻의 취병은 살아 있는 식물로 조성한 생나무 울타리다. 대나무를 엮어 울타리 틀..

우리 옛 그림 201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