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11

김홍도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1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명에는 《산수화》 또는 《김홍도필산수도(金弘道筆山水圖)》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에 해당하는 그림 8점이 있다. 조선에도 잘 알려져 있던 중국의 역대 인물들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그림의 크기로 미루어 병풍으로 제작되었다가 해체된 병풍차(屛風次)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 ‘취한 뒤에 꽃을 본다’는 뜻의 그림에는 두 인물이 마주 앉은 집의 넓은 창 바깥에 매화나무와 마당에 두 마리의 학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매화와 학을 근거로 그림 속 주인공이 북송 때의 시인 임포(林逋, 967 ~ 1028)로 추정되고 있다. 임포는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며 매화 300본을 심고 학 두 마리를 기르며 20년간 성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

우리 옛 그림 2021.10.16

김홍도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1085년 중국 송나라의 제7대 황제인 철종(哲宗)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철종의 할머니인 선인태후(宣仁太后) 고씨(高氏)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고태후는 구법당(舊法党)의 영수인 사마광(司馬光)을 재상으로 등용하고 그간 실시되었던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모두 폐지하였다. 이렇게 구법당이 다시 세력을 되찾기 시작하던 때인 1086년, 당시 송나라 수도인 개봉(開封)에 있는 왕선(王詵)의 저택 서쪽 정원에서 구법당 인물들의 모임이 있었다. 왕선(王詵)은 송나라 5대 황제인 영종(英宗)의 부마(駙馬)로 귀족이면서 산수화에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평소 교유하던 소식(蘇軾), 미불(米芾), 황정견(黃庭堅)을 비롯하여 당시 명성이 높던 문인, 유학자, 승려 등의 묵객 (墨客)을 불러 아회(..

우리 옛 그림 2021.01.15

전(傳) 김홍도 사인풍속도권

1745년생인 김홍도는 1738년생인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과 7살 차이다. 그럼에도 김홍도의 제발(題跋)을 보면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냈던 듯하다. 기술직 중인출신의 여항문인화가였던 강희언은 인물의 묘사 양태와 수지법 등에서 음영법과 근대원소(近大遠小)의 단축원근법 등을 활용하여 이전의 풍속화에 비하여 좀 더 현장감까지 살려낸 풍속화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의 대표적 풍속화가 《사인삼경첩(士人三景帖)》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여항문인을 비롯하여 부유한 비양반층까지 서화 애호풍조가 변화되고 확산됨에 따라 풍속화는 새로운 시대적 세태와 인정물태(人情物態)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으로 변화되고 발전하였다. 이전에는 고아하고 아취 있는 세계를 숭상하고 통속 세계를 푸대접하던 가치관이 신분..

우리 옛 그림 2020.10.26

풍류와 가락 2 - 삭대엽과 가곡

현재 전하는 가곡의 역사는 세조 때 음악을 집대성한 『대악후보(大樂後譜)』에 실려 있는 만대엽(慢大葉)에 뿌리를 두고, 그 만대엽의 모체는 고려 의종 때 정서(鄭敍)가 지은 "정과정"(鄭瓜亭)의 삼기곡(三機曲)이라 한다. 즉 삼기곡에 만기(慢機), 중기(中機), 급기(急機)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만(慢)대엽, 중(中)대엽, 삭(數)대엽이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만대엽은 선조 무렵부터는 거문고 독주용으로 바뀌어 연주되었다. 그러나 숙종 때부터 중대엽(中大葉)이 유행하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다가, 삭대엽이 유행하던 영조 무렵에는 아주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년 ~ 1763)의 평소 글을 모아 놓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우리나라 가사에는 대엽조(大葉..

우리 옛 뿌리 2019.04.06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0

은 아마도 우리 옛 그림 가운데 가장 귀족적인 분위기의 그림이 아닐까 싶다. 학과 연못이 있고 취병(翠屛)으로 둘러싸인 정원과 그 안에 기생들을 불러 앉혀놓고 대금과 거문고 연주를 감상하는지 팔걸이에 기대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인물의 거만하고 방자한 모습까지 집주인의 위세가 어떠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슴에 두른 세조대(細條帶)의 붉은 색이 선명하니 벼슬은 당상관이다. 당상관(堂上官)은 정3품 상계(上階)이상의 품계를 가진 벼슬아치다. 거기다 집안에 연못을 파고 학을 기르고 취병까지 설치할 정도면 재물도 꽤 많은 모양이다. 집주인과 기생들이 앉아있는 바깥을 두르고 있는 나무 담장이 취병(翠屛)이다. 비췻빛 병풍 이란 뜻의 취병은 살아 있는 식물로 조성한 생나무 울타리다. 대나무를 엮어 울타리 틀..

우리 옛 그림 2018.12.12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9

김홍도의 풍속화하면 과 같은 그림들이 먼저 떠오른다. 모두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들이다. 《단원풍속도첩》에는 이외에도 , , , , , , 등 모두 25점의 그림이 실려 있다. 단원의 풍속화는 거의 대부분 이《단원풍속도첩》에 있는 그림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단원의 풍속화는 이것이 전부인 것으로 오해되기 쉬우나 기실 병풍 그림으로 남긴 풍속화들이 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산수풍속도병」,「행려풍속도병」,「풍속도병」과 파리 기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계풍속도병」이다. 각각 8첩으로 되어있는 병풍형태의 작품들이다. 「행려풍속도병」은 1778년 김홍도가 34세 때 강희언의 집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지방의 풍속을 담았는데, 그림의 각 폭마다 표암 강세황(姜..

우리 옛 그림 2018.12.08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5

영조 24년인 1748년. 숙종의 어진을 다시 제작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누구에게 이 일을 맡길 것인가를 두고 영조와 어진제작에 참여하는 신하들과 논의하는 중에 다시 조영석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세조어진 제작에 참여를 거부한 이후 조영석이 비록 친구가 부채 하나 그려달라고 해도 거절한다는 말을 듣고 영조는 “이번에도 어렵겠구나!”라고 했지만 어쨌든 조영석을 다시 불렀다. 이에 조영석이 또 다시 거부했다는 설도 있고, 이때는 조영석이 감동관(監董官)으로 참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왕이 이처럼 어진을 그리는 화가에까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선왕(先王)의 어진을 제작한다는 것은 자손으로써 조상을 추모하는 효(孝)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개인적 일이기기도 하지만, 제작된 어진을 진전(眞殿)에 봉안하여 조종(祖宗)이 ..

우리 옛 그림 2018.11.26

문인화 3

물(水)만큼이나 문인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소나무다. 지금도 소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물로 낯설지 않지만 중국 고전에 나타나는 소나무와 지조에 대한 칭송의 역사는 길다. 추사의 세한도를 통해 더욱 익숙해진 ‘날씨가 추워진 뒤라야 송백이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는「논어」의 구절을 비롯하여「장자」에는 ‘하늘이 차고 눈서리가 내려서야 송백의 무성함을 알게 된다(天寒旣至霜雪旣降 吾是以知松柏之茂也)’는 구절이 있다. 「순자(荀子)」에도 ‘추운 계절이 아니면 송백을 알 수 없고 어려운 일이 없으면 군자를 알 수 없다(歲不寒無以知松柏 事不難無以知君子)’는 구절이 있고「예기」에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깊은 뜻이 있어 사시절 내내 가지가 변함이 없다(松柏之有心也 貫四時而不改柯易)’는 구절..

우리 옛 그림 2018.09.21

김홍도의 20대 그림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가 20대 때 그린 작품으로 추정되는 풍속화 7점이 담긴 화첩이 지난 9일 처음 공개됐다. 이 화첩은 자크 모니에즈라는 프랑스 신부가 1912년 4월에 입수해 프랑스로 가져간 후, 1994년 프랑스 유명 경매업체인 타장(Tajan) 옥션에 매물로 나온 것을 국내의 독지가가 구매했다고 한다. 그간 풍속화첩을 보관·관리해온 서울 반포동 소재 AB갤러리 성석남 관장은 "익명을 원하는 소장자가 24년이 흐른 지금 공개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으로 남겨줄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공개 이유를 밝혔다. 화첩이 처음으로 공개되고 아직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김홍도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홍도의 화풍 특징을 잘 모사한 ..

우리 옛 그림 2018.07.11

단원 김홍도 - 주상관매도

단원 김홍도가 남겨 지금까지 전해지는 시조가 두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연인과 보낸 밤에 대한 아쉬운 정을 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봄 풍경을 감상하는 모습을 그린 시조이다. 봄 물(春水)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霧中)인가 하노라 그런데 사실 이 시조는 김홍도의 독창적인 작품은 아니다. 중국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가 만년에 양자강 일대를 배를 타고 떠돌며 생활하다가 죽던 해인 59세에 지었다는 ‘소한식주중작(小寒食舟中作)’이라는 제목의 칠언율시가 있다. 소한식은 한식 다음 날이란 설도 있고 한식 전 날이란 해석도 있다. 어쨌거나 그 날도 찬밥을 먹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글로 옮겨진 시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 옛 그림 201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