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JAPAN 430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1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라는 타이틀로 특별전을 개최하였었다. 정선, 김홍도, 강세황, 김응환을 비롯하여 한시각, 조세걸, 김윤겸, 김하종 등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의 화가들이 그린 다양한 실경산수화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처음 계획했던 두 달간의 전시는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다시 3주간의 앙코르 연장 전시로까지 이어졌다. 전시 기간 중에 한강과 임진강을 유람하면서 그린 그림이라는 수식어로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전시물이 있었다. 정수영(鄭遂榮)의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이다. 《한임강유람도권(漢臨江遊覽圖卷)》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 목록은 《한임강명승도권》이다. 이 도권(圖卷)을 제작한 정수영(鄭遂榮, ..

우리 옛 그림 2020.11.04

겸재 정선 사계산수도첩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의 진경풍속, 그 중에서도 진경산수화를 조선적인 화풍으로 정립하고 대성시키는 창조적 성과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런 그의 화풍을 대표하는 작품이 그의 금강산 그림들이다. 하지만 너무 그 부분이 강조되어 정선은 진경산수화만 그린 화가로 인식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정선은 진경산수화뿐만 아니라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 중국풍의 인물고사도(人物故事圖)를 비롯하여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현재 전하는 정선의 작품으로는 36세 때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이 가장 이른 시기의 기년작(紀年作)이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진경산수화는 50대 이후의 노년과 만년기의 작품들이다. 그래서 30대부터 50대 중년까지 이르는 시기의 진경산수화 중 제작시기를 알 수 있..

우리 옛 그림 2020.11.03

김하종 해산도첩 5

이제《해산도첩》의 남은 그림은 설악산 지역으로 첩의 순서에는 양양의 낙산사가 제일 먼저 나온다. 계조굴(繼祖窟)은 울산바위와 그 아래에 목탁바위를 뚫고 석굴사원으로 지은 절인 계조암(繼祖庵)을 그린 것이다. 계조암은 바위 속에 법당이 들어있고 그 앞에는 지금도 유명한 흔들바위가 있다. 은 내설악 지역의 백담사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구곡담 계곡에 있는 쌍용폭포(雙龍瀑布)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쌍용폭포는 지금도 보통 쌍폭(雙瀑)이라 부른다고 한다.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라는 설명인데, 여폭(女瀑)이라고도 하는 좌폭(左瀑)은 22m이고, 남폭(男瀑)이라는 우폭(右瀑)은 46m라 한다. 김하종은 이어 설악산 전경과 설악경천벽을 그리는 것으로 《해산도첩(海山圖帖)》의 그림을 마감했다. 은 설악산의..

우리 옛 그림 2020.11.02

김하종 해산도첩 4

외금강은 태백산줄기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중앙연봉들의 동쪽지역을 가리킨다.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의 바깥쪽에 있다 하여 외금강(外金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강산의 서쪽지역인 내금강이 우아하고 그윽한 정서를 자아내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반면, 동쪽지역인 외금강은 금강산의 웅장한 산악미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은선대(隱仙臺)는 이 외금강의 가장 아래쪽이다. 은선대는 외금강 효운동(曉雲洞)에 있는 봉우리로 십이폭포의 맞은편, 송림구역 성문동(聲聞洞)에 있다.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12단으로 꺾인 벼랑 턱에 부딪치며 떨어져 ‘십이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폭포 아래에서는 폭포모습이 절반밖에 보이지 않고 맞은편의 은선대와 불정대에서 보아야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십..

우리 옛 그림 2020.11.01

김하종 해산도첩 3

구구동(九九洞)은 내금강에 있는 것이겠지만 별 다른 정보가 없고 달리 다른 화가가 그린 그림도 없다. 어쩌면 수미탑 근처에 있는 다른 바위들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금강 만폭동에 분설폭포가 있는데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흩어지며 마치 눈보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이 보이므로 분설(噴雪)폭포라고 부른다. 그 아래에 있는 소가 분설담(噴雪潭)이다. 화폭 오른쪽 바위 한 옆에 기둥 두 개가 받치고 있는 건물이 보덕암(普德庵)이다. 보덕암(普德庵)은 분설담 오른쪽 20m 벼랑에 두 구리 기둥에 의지하여 매달리듯 자리한 암자이다. 아래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가운데 암벽 위에 보덕암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흑룡담은 분설담과 같이 만폭동에 있는 소이다. 그림으로 미루어 분설담보다 더 아래쪽에 있는 소로 보인다..

우리 옛 그림 2020.10.31

김하종 해산도첩 2

19세기에 이르러 많은 화가들이 전통적인 화법에 서양화법을 비롯한 새로운 화풍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그런 시도는 산수화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정선, 강세황, 김홍도 같은 대가들이 이룩해 놓은 진경산수화의 기틀을 바탕으로 서양화의 투시법, 공간개념, 원근감, 사실적 표현과 더불어 중국 남종화의 화풍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김하종의 《해산도첩(海山圖帖)》 그림은 그런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경물에 따라 전통적 구성과 표현을 따르기도 하고, 사실적 묘사에 더 중점을 두는가 하면, 자신 만의 독특한 구성과 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첫 그림 장안사에 이어 《해산도첩》의 그림들은 내금강의 경물로 옮겨가는데, 그 첫 번째가 명경대구역 백천동(百川洞)의 명경대다. 다보탑은 내금강 명경대구역 백탑동..

우리 옛 그림 2020.10.30

You Keep Standing.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싸여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꼭 봤으면 하는 연설이다. 아래 내용은 Rick Rigsby가 2017년 4월 22일 California State University Maritime Academy의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이다. Rick Rigsby는 이 연설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후 그의 ‘희망’에 대한 연설은 온라인에서 1억 3천만 뷰 이상을 기록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Rick Rigsby는 전직 언론인으로 CBS의 시카고 제휴 채널인 KHSL-TV에서 기자와 앵커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 이후 Texas A&M 대학교의 교수로도 재직하였다. 현재는 Rick Rigsby Communications의 CEO로, 전세계에서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 한국에서의 신문방송학..

백가쟁명 2020.10.29

김하종 해산도첩 1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금강산 그림을 그리러 갔던 복헌(復軒) 김응환은 개성(開城) 김씨다. 이 개성 김씨는 조선 후기와 말기에 가장 많은 차비대령화원을 배출한 유력한 화원가문이었다. 김응환을 필두로 그의 조카 긍재(兢齋) 김득신은 도화서 화원이었고,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김득신의 두 동생인 김석신(金碩臣)과 김양신(金良臣)도 화원이었으며, 김득신의 세 아들인 김건종(金建鍾), 김수종(金秀鍾), 김하종(金夏鍾) 역시 모두 화원이었다. 특히 김득신의 셋째 아들인 김하종은 이미 13세 때인 1805년에 효명세자 책봉을 위한 책례도감[文祖王世子冊禮圖監]에 소속되어 의장(儀仗) 그림을 담당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재능을 보였다. 또한 차비대령화원으로 봉직하면서 평생 총 1..

우리 옛 그림 2020.10.29

이의성필(李義聲筆) 하외도(河隈圖)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부친인 유중영(柳仲郢, 1515 ~ 1573)이 평북 정주에서 목사(牧使)로 벼슬살이할 때 타향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고향이 그리워졌다. 이에 화공을 시켜 고향 산천의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라고 했다. 하외(河隈)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경북 안동 하회(河回)마을의 다른 이름이다. 당시 이 그림에 정유길(鄭惟吉)이 제시를 쓰고, 퇴계 이황(李滉)이 서문(序文)을 썼다. 그런데 병풍으로 만든 이 그림이 전란 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그리고 200년이 넘은 시간이 지난 뒤, 정유길의 후손인 정원용(鄭元容)이 유성룡의 후손인 유철조(柳喆祚)에게서 이 병풍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를 애석하게 여긴 두 후손은 불타 없어진 를 본 따 새로운 병풍을 만들기로 하고 이의성(李義聲)에게 그림..

우리 옛 그림 2020.10.27

전(傳) 김홍도 사인풍속도권

1745년생인 김홍도는 1738년생인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과 7살 차이다. 그럼에도 김홍도의 제발(題跋)을 보면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냈던 듯하다. 기술직 중인출신의 여항문인화가였던 강희언은 인물의 묘사 양태와 수지법 등에서 음영법과 근대원소(近大遠小)의 단축원근법 등을 활용하여 이전의 풍속화에 비하여 좀 더 현장감까지 살려낸 풍속화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의 대표적 풍속화가 《사인삼경첩(士人三景帖)》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여항문인을 비롯하여 부유한 비양반층까지 서화 애호풍조가 변화되고 확산됨에 따라 풍속화는 새로운 시대적 세태와 인정물태(人情物態)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으로 변화되고 발전하였다. 이전에는 고아하고 아취 있는 세계를 숭상하고 통속 세계를 푸대접하던 가치관이 신분..

우리 옛 그림 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