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JAPAN 430

헌종가례진하계병

1844년 10월 헌종이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1903)를 맞이하여 가례를 올린 뒤 진하를 받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헌종은 1843년 효현왕후(孝顯王后)가 죽자 이듬해 10월 18일 익풍부원군 홍재룡(洪在龍)의 딸을 계비로 책봉하고 21일에 친영례(親迎禮)를 치렀다. 헌종은 가례(嘉禮) 의식을 모두 마친 이튿날인 10월 22일 경희궁 숭정전(崇政殿)에 나아가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문무백관의 진하를 받았는데 ‘헌종가례진하계병’은 바로 이 진하례 장면을 그린 것이다. 진하(陳賀)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조신(朝臣)들이 모여 임금에게 나아가 축하하는 일을 말한다. ▶친영례(親迎禮) : 『의례』·『예기』 등에 수록되어 있는 중국의 혼인의례인 6례 중 하나로 신랑이 신부집에서 신부를 맞아와 자신..

우리 옛 그림 2020.10.25

진재 김윤겸 - 다른 그림들

신선도는 환갑이나 잔치 때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축원의 의미를 담아 선물했던 주제의 그림이다. 그래서 특히 정성들여 제작한 작품들이 많다. 불로장생의 신선을 동경하고, 지상 어딘가에 있을 낙원을 소망하며 그려낸 신선도는 대개 배경을 생략하거나 간략하게 그려 인물을 부각한다.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이 동물이나 동자와 함께 있는 구도가 일반적이다. 도교에서 일컫는 신선들은 500여 명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신선도의 그림 소재로 많이 다루어졌던 대표적인 신선은 종리권(鍾離權)을 중심으로 하는 8선(八仙)이다. 팔선에는 실재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공의 인물도 있으며, 이들은 각기 관련된 이야기를 상징하는 물건을 지닌 모습으로 그려진다. 각각 따로 그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럿이 함께 술이나 차를 마시거나..

우리 옛 그림 2020.10.24

진재 김윤겸 - 산수화

조선시대에 금강산을 그린 그림은 많지만, 지리산을 그린 그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김윤겸이 지리산을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윤겸필지리전면도(金允謙筆智異全面圖)이다. 그림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설명은 이렇다. 【김윤겸(字 克讓, 號 眞宰)는 사대부 화가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서자로,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다. 그는 금강산, 한양근교, 단양, 영남 지방 등 명승을 여행하면서 점차 진경산수화에 몰두하였는데, 정선과 그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을 갖추었다. 주로 바다, 바위와 물이 있는 계곡을 소재로 하고, 경물을 대담하게 생략하는 근대적 화면 구성이 그의 진경산수화의 특징이다. 이 그림은 왼쪽 윗부분에 ‘금대암에서 마주 본 지리산 전경’이라고 적혀..

우리 옛 그림 2020.10.23

금강산 장안사 - 사성지전

대웅보전 동편에 위치한 사성지전(四聖之殿)은 대웅보전과는 별개의 축을 이룬 구역의 건물이다. 대웅보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신성루라는 누각이 있었고 사성지전에도 또한 법왕루라는 별도의 누문이 있었다. 가람배치에서 이렇게 한 개의 절 안에 2개의 축을 갖고 2개의 중층 법당과 2개의 누각 건물을 둔 것은 특이한 경우다. 사성(四聖)은 불교에서는 불(佛). 보살(菩薩). 성문(聲聞). 연각(緣覺)을 가리키거나 아미타불.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대해중(大海衆)보살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장안사의 사성지전은 어떤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성문(聲聞) : 원래의 의미는 석가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당시의 제자들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이후 불교의 교설을 듣고 스스로의 해탈을 위하여 정진하는..

금강산 장안사 - 대웅보전

겸재 정선의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그림이 많고 유명하지만 진재 김윤겸도 장안사를 그렸다. 서기 500년대 중반 즈음에 창건된 장안사는 이후 비에 무너지고, 불에 타기도 하여 여러 차례 중건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건물을 중수한 것은 1863년이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원래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림으로는 많이 본 장안사이지만, 지금 실물로 장안사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1년 6.25 전쟁 당시 폭격을 받아 모조리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흑백사진 유리 건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어 그 면모를 대강 짐작해볼 수는 있다. 장안사는 대웅보전과 사성지전을 각각의 중심축으로 하는 두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성지전은 대웅보전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

진재 김윤겸 - 영남기행화첩 3

은 화첩 중 유일하게 나무나 사람이 없는 그림으로, 농월정(弄月亭)이라는 정자 앞에 있는 계곡과 물길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월정은 ‘여덟 개 못과 여덟 개 정자’ (八潭八亭)’를 뜻하는 팔담팔정(八潭八亭)의 계곡인 경남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의 화림동 계곡에 있다. 화림동(花林洞)은 안의삼동 중에서도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간직한 곳으로 예부터 정자 문화의 보고라 불렸으며 그 중에서도 농월정이 그 백미로 꼽혀왔다. ‘달을 희롱하며 즐긴다’는 뜻의 농월정(弄月亭) 앞 계곡에는 너른 반석이 펼쳐져 있어 ‘달빛이 비추는 바위’라는 뜻의 월연암(月淵岩)으로 불렸으니 월연(月淵)은 그 곳에 있는 물길이나 못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김윤겸의 에는 농월정이 없다. 농월정은 1637년에 지어진 정자로 알려..

우리 옛 그림 2020.10.18

진재 김윤겸 - 영남기행화첩 2

1740년에 제작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태종대는 동래부의 남쪽 30리 되는 절영도의 동쪽 바닷물이 돌아가는데 서쪽에 돌다리가 하나 있어 놀이 오는 사람들이 겨우 통할 수 있다”고 했는데 김윤겸의 그림에도 바위 사이로 얼기설기 짜놓은 사다리 모양이 보인다. 태종대는 부산 영도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는 구릉 지역으로,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100m 높이의 해안 절벽과 울창한 해송, 기암괴석이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예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부산의 대표적인 명승지였다. 신라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가 순행하다 이곳의 절경에 취해 활을 쏘면서 즐긴 것에서 유래되어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어지는 화첩의 그림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居昌)의 , , , 이다. 조선시대..

우리 옛 그림 2020.10.16

광(狂)과 상(常)

일반의미론의 개념을 창시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코집스키(Alfred Korzybski, 1879 ~ 1950)는 정신이상자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신이상자(insane person)는 현실의 세계를 자기 머릿속에 있는 생각에 맞추려고 한다.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신이상자는 바깥세상으로 하여금 자신을 나폴레옹으로 생각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반면 제정신인 사람(sane person)은 현실을 계속 분석해 나가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현실 세계의 팩트(facts)에 맞게 변경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일은 엄청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현실 세계의 fact에 맞추어 자신의 의견을 계속 바꾸어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자신의..

백가쟁명 2020.10.12

난정집서와 Don't Touch Me

왕희지(王羲之, 307 ~ 365)는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는 동진(東晋)의 서예가이다. 특히 그는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일컬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쓴 는 왕희지 글씨 중에서도 ‘행서(行書)의 신품(神品)’이라고 불리며 이후 한·중·일 삼국의 서예가들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353년 3월 3일 회계(會稽) 산음의 난정(蘭亭)에 당시의 명사 41명이 모여 시회를 갖았다. 그때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지은 시들을 모아 난정집(蘭亭集)이라는 시집을 만들기로 하여 왕희지가 이 시집의 서문을 썼다. 당시 왕희지는 술을 마신 가운데 글을 썼는데 글자는 모두 28행 324자였고 그 가운데 ‘지(之)’자가 모두 스무 자였다. 왕희지가 나중에..

흔적들 2020.10.10

가을소리 - 성재수간(聲在樹間)

【구양자(歐陽子)가 바야흐로 밤에 책을 읽는데, 서남(西南)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이에 흠칫하며 듣고 말하기를, “이상하도다!” 처음에는 비 소리 같더니 바람소리로 변하고, 갑자기 뛰어오르며 부딪치는 것이 마치 파도가 밤에 놀라고, 비바람이 몰려오는 듯 하고. 물건이 서로 부딪혀 쨍그랑거리며 쇠붙이가 울리는 듯하더니, 다시 적에게 다가가는 병사들이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데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듯하였다. 내가 동자에게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네가 나가 살펴보아라.” 동자 가로되, “별과 달은 밝고 맑으며, 은하수는 하늘에 있고, 사방에 사람소리는 없는데 소리는 나무사이에 있습니다.“】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시와 글씨로 이름..

우리 옛 그림 202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