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 21

나이 값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반박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말을 앞세우는 사람도 드물고 그런 가치는 어디에서도 동의를 얻기 힘들다. 이제 나이는 더 이상 이 사회에서 대우나 존경 같은 예우를 받는 조건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흔한 말로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들이 진부한 과거의 통념을 거부했기 때문일까? 나이 먹은 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만 먹었지 존경받을 구석이 없는 까닭 때문이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고사성어가 있다. 춘추시대에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늙은 말[老馬]의 도움으로 길을 찾아 무사히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

정도전 25 - 불씨잡변 서(序)와 발(跋)

정도전(鄭道傳)은 『불씨잡변』의 저술을 마친 뒤, 권근(權近)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수개월 뒤인 1398년 9월에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고 이방원이 이끄는 세력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면서 『불씨잡변』은 간행되지 못하였다. 그 뒤 근 60년이 지나서 정도전의 유고(遺稿)가 족손(族孫) 한혁(韓奕)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한혁이 같은 해 급제자인 양양 부사(襄陽府使) 윤기견(尹起畎)에게 이를 보였고, 내용에 감탄한 윤기견이 이를 간행하였다. 서(序) [권근(權近)] 내 일찍이 불씨(佛氏)의 설이 세상을 매우 미혹(迷惑)시키는 것을 근심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하늘노릇을 하고 사람이 사람노릇을 하는 데에 있어서 유교와 불교의 설이 서로 같지 않다. 역상(曆象)이 있은 뒤로부터 한ㆍ서(寒暑)의 왕..

우리 선조들 2022.03.30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2

이어지는 상소문에서 열거하는 9목(目)의 첫 번째는 이다. 궁금(宮禁)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로, 우선 임금이 거하는 곳부터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궁금(宮禁)을 엄하게 해야 합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집이 다스려지고서 나라가 다스려진다.’ 하였습니다. 그 집을 다스리지 못하고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으므로 왕화(王化)의 근본은 궁금에 있는 것입니다. ▶왕화(王化) : 임금의 덕화(德化). 궁금이 엄숙하지 않으면, 간사한 길이 안팎으로 통하고 바른길이 조정(朝廷)에서 막히어, 공정한 논의는 막혀서 통하지 않고 도리에 어긋난 것이 현혹을 하여 간사한 술책을 부리므로, 그때 가서는 난망(亂亡)을 구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대개 군신(君臣)의 위아래 사이와 친척의 안팎 사이에서 정의(情..

우리 옛 뿌리 2022.03.28

목민심서 119 - 수령의 잘못으로 인한 수하 관속의 치죄는 다른 관아로 넘겨야한다.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7 잘못은 수령에게 있는데 상사(上司)가 자기더러 아전과 군교를 치죄하라 하는 경우에는 죄수를 다른 고을로 옮겨 치죄하도록 청해야 한다. (所失在牧 而上司令牧自治其吏校者 宜請移囚)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무릇 부하 이속이 죄를 지으면, 수령에게는 살피지 못하고 단속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 상사가 추문하여 다스릴 경우에, 혹 죄수를 이웃 고을로 옮겨서 벌을 주게 하더라도, 그 사건을 따져 보아 과오에서 나온 것이면 수령끼리 서로 충고하는 것이니, ..

목민심서 2022.03.27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1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의 아들 진성대군(晉城大君)은 신하들이 이복형인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反正)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왕위에 갑자기 오르게 되었다. 그가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中宗)이다. 정현왕후(貞顯王后)는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가 1479년 왕비의 자리에서 폐출된 뒤 다음 해인 1480년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8년 후에 진성대군을 낳았다. 성종에게는 연산군에 이은 둘째 아들로 진성대군과 연산군은 12살의 터울이 있었다. 자력이 아닌 신하들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왕권은 처음부터 나약할 수밖에 없었다. 중종은 왕위에 오르자 자신이 사랑했던 부인과 강제로 헤어져야만 할 정도였다. 그의 첫 번째 정비(正妃)였던 단경(端敬)왕후가 연산군 때의 권신이었던 신수근(愼守勤)의 딸이라는 이..

우리 옛 뿌리 2022.03.26

정도전 24 - 불씨잡변 벽이단지변

이단을 물리치는 데 관한 변[闢異端之辨] 요순(堯舜)이 사흉(四凶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ㆍ환도(驩兜)ㆍ삼묘(三苗)ㆍ곤(鯀))을 벤 것은 그들이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은 좋게 꾸미면서 명령을 거스르고 종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우(禹)도 또한 말하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랴?” 하였으니, 대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사람의 본심을 잃게 하며, 명령을 어기고 종족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의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제거하여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흉(四凶) : 중국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 곤(鯀). 탕(湯)과 무왕(武王)이 걸(桀)과..

우리 선조들 2022.03.23

심사정 소상팔경도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만나는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 주변의 절경을 소재로 하는 그림이다. 처음에는 실경을 바탕으로 그려졌지만,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아름다운 경치의 전형으로 이상화 되면서 중국에서 조차 점차 관념산수(觀念山水)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본래 경치의 아름다움보다는 경치가 전해주는 의미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된 것이다. 그 결과 소상팔경은 실경과 관계없이 시대에 따른 화풍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계속 변모해갔다. 특히 소상의 실제 경치를 본 적이 없는 조선의 화가들이 그린 소상팔경도는 거의 상상화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물론 전해오는 옛 중국 그림들을 보기도 했겠지만, 대개는 소상팔경을 대표하는 각각의 4자로 된 화제(畵題)에서 느낀 자신의 의취를 붓으로 ..

우리 옛 그림 2022.03.21

목민심서 118 - 상사가 자신의 수하 관속을 조사하더라도 순종하여야 한다.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6 상사(上司)가 아전과 군교(軍校)들을 추문(推問)하여 다스릴 때는, 일이 비록 사리에 어긋나더라도 순종하고 어기지 않는 것이 좋다. (上司推治吏校 雖事係非理 有順無違焉 可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죄가 본읍(本邑)에 있어서 상사가 추문(推問)하여 다스릴 때는 본디 논할 것도 없다. 그러나 혹시 생트집을 잡아 이치에 당치 않은 일을 덮어씌우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그의 아랫자리에 있으니 그저 순종할 따름이다. 만일 상사의 뜻이 과오에서 나왔..

목민심서 2022.03.20

춘래불사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몇 주째 계속되고 있다. 독일 출생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던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의 유일한 효용은 바로 사랑은 증오보다,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뿐이다.”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크라이나 소식보다 우리나라 소식에 더 불안하다. 새로 뽑힌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한다. 안보를 의식한 쇼라고 해도 너무 유치하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모르니까 저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하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오른다. “잘못된 지식을 경계하라. 그것은 무지보다 위험하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