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 21

대군, 군, 공주, 옹주

조선시대의 왕실 자녀들에 대한 호칭을 보면 대군(大君)이 있는가 하면 군(君)이 있고, 공주(公主)가 있는가 하면 옹주(翁主)도 있다. 3대 왕인 태종에게는 양녕대군, 효령대군, 그리고 나중에 세종이 된 충녕대군 같은 아들들과 함께 경녕군, 함녕군, 온녕군 처럼 군(君)으로 불리는 아들들도 있었다. 또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가 있었는가 하면 정신옹주, 정정옹주, 숙정옹주 등도 있었다. 이런 호칭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군은 왕자 가운데 정비(正妃)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주어지던 작호(爵號)이다. 왕비 외에 후궁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은 군(君)이다. 공주도 마찬가지다. 왕비에게서 태어난 딸은 공주, 후궁에게서 난 딸은 옹주의 작호가 주어졌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과 정선공주, 경정공주, ..

우리 옛 뿌리 2022.03.18

정도전 23 - 불씨잡변 사불심근년대우촉

부처 섬기기를 극진히 할수록 연대는 더욱 단촉 되었다.[事佛甚謹年代尤促] 원화(元和) 14년에 불골(佛骨)을 경사(京師)에 맞아들여 왔는데, 이보다 먼저 공덕사(功德使)가 아뢰기를, “봉상사(鳳翔寺) 탑에 부처의 지골(指骨)이 있어 전하여 오는데, 30년 만에 한 번씩 탑문(塔門)을 열며, 탑문을 열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며 백성들이 편안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내년에 응당 탑문을 열 것이니 청컨대 맞이하여 오소서.” 하였으니, 이에 임금이 그 말을 따랐다. ▶원화(元和) : 당헌종(唐憲宗) 때의 연호(806년 ~ 820년) 이 불골(佛骨)이 경사(京師)에 이르렀을 때 궁중에 3일 동안을 두었다가 여러 절을 거쳐 가는데 왕공(王公)들과 사민(士民)들이 쳐다보며 받들어 시주하기를 남보다 뒤질까봐 두려워할 정..

우리 선조들 2022.03.16

심사정의 전이모사 3

심사정은 송나라 화가들을 거쳐 소위 원말(元末) 4대가로 불리는 예찬, 오진(吳鎭), 황공망(黃公望), 왕몽(王蒙) 등의 그림도 따라 그렸다. 원말 4대가는 나이로 보면 황공망(黃公望, 1269 ~ 1354), 오진(吳鎭, 1280 ~ 1354), 예찬(倪瓚, 1301 ~ 1374), 왕몽(王蒙, 1308 ~ 1385)의 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찬 대신에 조맹부(趙孟頫, 1254 ~ 1322)를 넣기도 한다. 자구(子久)는 황공망(黃公望)의 자이다. 원래 이름은 육견(陸堅)이었으나 황씨(黃氏) 성을 가진 사람의 양자로 들어가 성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황공망은 조맹부(趙孟頫)의 영향을 받아 50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원(董源)과 거연(巨然)의 화법(畵法)..

우리 옛 그림 2022.03.14

목민심서 117 - 영하판관의 상영에 대한 예는 극진하여야 한다.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5 영하판관(營下判官)은 상영(上營)에 대하여 각별히 공경하며 예를 극진히 하여야지, 소홀한 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營下判官 於上營 宜恪恭盡禮 不可忽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영하판관(營下判官), 상영(上營) : 감사나 병사는 감영(監營)이나 병영(兵營) 소재지 고을의 수령을 겸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감사나 병사를 상영(上營)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상영이 고을 수령을 겸할 경우 그 고을의 행정관으로 종5품의 판관이 임명되었다. 이를 영..

목민심서 2022.03.13

심사정의 전이모사 2

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에 심사정은 '의동북원(擬董北苑)'이라고 적었다. 동북원(董北苑)을 모방했다는 뜻인데 동북원은 중국 남당(南唐)에서 북송(北宋) 사이의 화가인 동원(董源, 미상 ~ 962년 추정)을 가리킨다. 동원이 북원부사(北苑副使)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이다. 중국의 산수화는 5대 10국(907 ~ 960) 시대에 많은 발전을 거둬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동원은 이 시기에 활동하면서, 제자인 거연(巨然)과 함께 강남 산수화 양식을 완성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동원과 거연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을 동거파(董巨派)라고 부르는데 황공망을 비롯한 원말 4대가와 명대 중기의 심주(沈周) 등 오파(吳派)를 통하여 동거파의 전통이 문인화풍의 전거(典據)로 계승되었다. 그런 만..

우리 옛 그림 2022.03.12

정도전 22 - 불씨잡변 사천도이담불과

천도를 버리고 불과를 말함[舍天道而談佛果] 당대종(唐代宗)이 처음에는 그다지 부처를 중히 여기지 않았는데, 재상인 원재(元載)와 왕진(王縉)이 다 부처를 좋아했고 그 중에도 왕진이 특히 심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묻기를, “부처가 보응(報應)을 말했다는데 과연 있느냐?” 하였다. 원재(元載) 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국가의 운수가 장구한 것은 일찍이 복업(福業)을 심은 것이 아니면 무엇을 가지고 이르게 하겠습니까? 복업이 이미 정해지면 비록 때때로 작은 재앙이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해(害)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녹산(安祿山)ㆍ사사명(史思明)은 다 그 자식에게 죽음을 당했고, 회은(懷恩)은 군문을 나와 병들어 죽었고, 회흘(回紇), 토번(吐蕃) 두 오랑캐는 싸우지 않고 저절로 물러갔으니, 이것은..

우리 선조들 2022.03.11

심사정의 전이모사 1

심사정(1707 ~ 1769)은 겸재 정선(1676 ~ 1759)보다 약 30년 뒤의 화가다. 그가 활동하던 때 조선에서는 정선에 의해 주도된 소위 진경산수화가 한창 각광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심사정은 그런 시류와는 상관없이 중국의 전통 화법을 연구하는데 전념했다. 조선의 산수화는 전통적으로 중국의 정형화된 산수화 기법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유지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심사정의 선택은 당연한 순서였는지도 모른다. 6세기경 중국 육조시대 남제(南齊)의 화가이자 화론가였던 사혁(謝赫)은 ≪고화품록(古畫品錄)≫에서 회화에서 중요시되어야 하는 육법(六法)을 제시한 바가 있다. 그 육법의 하나인 ‘전이모사(轉移模寫)’는 앞선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여 그리면서 그 기법을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림..

우리 옛 그림 2022.03.09

목민심서 116 - 법을 집행하는 감사에게는 늘 예를 지켜 대하라.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4 감사(監司)는 법을 집행하는 관리이니, 비록 오랜 정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믿고 예를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監司者 執法之官 雖有舊好 不可恃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실지로 죄를 범했으면, 그가 의로써 처단하는 것은 본래 원한이 없는 것이다. 요즈음 감사는 혹시 친한 사이의 수령에게 일부러 트집을 잡아서 공정하다는 이름을 낚기도 하니, 이러한 기미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소장(蘇章)이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되었을 때, 그의..

목민심서 2022.03.05

봄의 말

헤르만 헤세 봄이 속삭인다.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소년 소녀들은 모두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두려워하지 마라! 노인들도 모두 봄의 속삭임을 알아듣는다. 늙은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어라. 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젊은 날 「데미안」과 「싯다르타」, 그리고 그의 수많은 글과 시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다. 수십 년이 지나 지금에 다시 읽는 그의 시는 또 다른 느낌이다. 혹시 나는 새싹이 피어오를 자리에 뭉개고 앉아 있는 폐목의 죽은 뿌리는 아닐까?...

정도전 21 - 불씨잡변 사불득화

불씨를 섬겨 화를 얻음[事佛得禍] 양무제(梁武帝)는 중대통(中大通) 원년(元年) 9월에 동태사(同泰寺)에 나아가 사부(四部) 대중을 모아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고 어복(御服)을 벗고 법의(法衣)를 걸친 후 청정대사(淸淨大捨)를 행하니 모든 신하들이 돈 1억만(一億萬)을 가지고 삼보(三寶)앞에 빌고 황제의 몸을 굽혀 속죄하는데, 중들은 그대로 절을 받으면서 말 한마디 없었고, 임금은 궁궐로 돌아왔다. 무제(武帝)가 천감(天監) 연간으로부터 석씨(釋氏)의 법을 써서 오래도록 재계하여 고기를 먹지 않고 하루에 한 끼니만 먹는 것도 나물국에 거친 밥뿐이요, 탑을 많이 쌓아 공사(公私)간에 비용을 많이 소비하였다. ▶중대통(中大通) : 중국 남북조 시대의 양(梁)나라 초대황제인 양무제의 연호로 원년은 529년...

우리 선조들 2022.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