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 21

여산(廬山)

여산(廬山)은 중국 양자강 중하류의 남쪽에 위치한 장시성[江西省]에 있는 높이 약 1,600m의 산이라 한다. 주(周)나라 때의 현자(賢者)인 광속(匡俗)이라는 인물이 이곳에 숨어 살았는데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찾았더니, 이미 신선이 되어 사라지고 빈 초막만 남아있었기에 ‘초막이 있는 산’이라는 뜻의 ′여산(廬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도가의 8선(仙)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 때의 여동빈(呂東賓)이 도를 닦았다고 전하는 선인동(仙人洞)이라는 동굴도 있어 여산은 도교와 연관이 깊다. 그래서인지 여산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은일(隱逸)의 땅으로 이름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4세기 말에는 동진(東晋)의 혜원(慧遠)이 여산에 백련사(白蓮社)를 창건하고 수행도량으로 삼으면서 중국 정토종(淨土宗)의 성지로 떠올랐고, 지..

우리 옛 그림 2022.04.11

목민심서 123 - 임무를 교대할 때는 동료로서의 우의가 있어야 한다.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11 교승(交承)에는 동료의 우의가 있어야 한다. 내가 후임자에게 당하기 싫은 일은 나도 전임자에게 하지 않아야 원망이 적을 것이다. (交承有僚友之誼 所惡於後 無以從前 斯寡怨矣)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교승(交承) : 전임자와 후임자의 교대.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 : 남송(南宋)의 여본중(呂本中)이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 부친의 일화를 모아 엮은 책. 동몽훈(童蒙訓)은 통상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목민심서 2022.04.10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6

9목의 여덟 번째 항목은 이다. 사치(奢侈)를 막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사치가 폐해가 됨이 심합니다. 하늘이 온갖 물건을 낳되 사람이 그것을 취하여 쓰니 사람은 온갖 물건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욕망이 있는데 그 욕망이 끝이 없고, 물건은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에서 나는 것인데 그 나는 것에 한정이 있습니다. 욕망은 끝이 없기에 천하의 물건으로 한 사람을 받들어도 넉넉하지 못하고, 나는 것은 한정이 있기에 한 사람이 천하의 물건을 다 써도 모자랍니다. 하늘이 낸 물건을 다 없애어 하늘이 노하고, 백성의 고혈을 짜서 백성이 원망하여, 원망을 쌓고 노여움을 쌓는데도 알지 못하면, 쟁탈이 일어나서 난망(亂亡)이 뒤따를 것입니다. 근래 왕자(王子)의 집은 극도로 넓고 크..

우리 옛 뿌리 2022.04.09

조선경국전 1

조선의 건국과정에 정도전이라는 이름은 빠질 수가 없다. 그 정도전의 가계(家系)에 대하여 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지낸 한영우(韓永愚) 교수는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의 에 이렇게 소개하였다. 단양팔경(丹陽八景)의 하나에 삼봉(三峰)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정도전의 출생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鄭云敬)이 젊었을 때 이곳을 지나다가 어떤 상(相) 보는 사람을 만났다. 상 보는 사람은 그에게 10년 후에 혼인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정운경은 그 말대로 10년 뒤에 삼봉에 다시 돌아와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서 아이를 얻게 되었다. 그 아이를 길에서 얻었다 해서 이름을 도전(道傳)이라 하고, 부모가 인연을 맺은 곳이 삼..

우리 선조들 2022.04.08

목민심서 122 - 이웃 고을과는 화목하고 예로 대하라.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10 이웃 고을과는 서로 화목하고 예로써 대접하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다. 이웃 수령과는 형제의 의가 있으니, 저쪽에서 잘못이 있더라도 그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隣邑相睦 接之以禮 則寡悔矣 隣官有兄弟之誼 彼雖有失 無相猶矣)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웃 수령과 불목(不睦)하게 되는 까닭은, 송사(訟事)에 관계된 백성을 찾아내려 하는데 그를 비호하여서 보내주지 않으면 불목(不睦)하게 되고, 혹 차역(差役)을 당연히 해야 하는데도 회피하여 서로 미..

목민심서 2022.04.07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5

9목의 여섯 번째 항목은 이다. 교화(敎化)를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두 가지가 있는데, 형정(刑政)과 교화(敎化)뿐입니다. 형정은 밖에서 제재하는 방도이고 교화는 마음에서 느끼게 하는 방도인데, 형정으로 제재하면 백성이 면하되 염치가 없게 되고 교화하여 느끼게 하면 염치가 있고도 바루어지는 것입니다. 대저 교화하는 방도는, 그 사람의 마음에 없는 것을 굳이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도(常道)를 지키는 덕(德)은 각각 스스로 넉넉히 갖추었으므로, 그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것에 말미암아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소 행하여 이끌어 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것이 없어서 떨쳐 일어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근년 이래로 교화가 밝지 않아서 사습(士習)이 바르..

우리 옛 뿌리 2022.04.06

석당 이유신

석당(石塘) 이유신(李維新)은 낯선 이름이다. 그의 가계와 행적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조선 후기의 학자 유재건(劉在健)이 쓴 여항인들의 전기집인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통하여 그가 여항문인이자 화가였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이유신이 돌을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다. 1753년에 그의 이름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고, 1790년대에도 화가 이인문(李寅文), 서예가 유한지(兪漢芝), 서화가 신위(申緯) 등과 교유한 기록들로 미루어 대략 그의 생몰년도는 1730년대에서 1800년경까지로 미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하는 이유신의 작품들은 산수화, 인물화, 영모화, 화훼화 등 그 화목이 다양하지만, 대부분 산수화이다. 그의 그림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옛 그림 2022.04.05

목민심서 121 - 예와 의가 모두 도리에 맞아야 군자라 할 수 있다.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9 예(禮)는 공손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의(義)는 결백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예와 의가 아울러 온전하여 온화한 태도로 도(道)에 알맞아야 이를 군자(君子)라 한다. (禮不可不恭 義不可不潔 禮義兩全 雍容中道 斯之謂君子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사대부(士大夫)로서 벼슬살이하는 법은 마땅히 버릴 ‘기(棄)’자 한 자를 벽에 써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보아, 행동에 장애가 있으면 벼슬을 버리며, 마음에 거리끼면 벼슬을 버리며, 상사가 ..

목민심서 2022.04.04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4

9목의 네 번째 항목은 이다. 제사를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역경(易經)》 췌괘(萃卦)에 이르기를 ‘임금이 사당을 두었다.’ 하였습니다. 제사하여 보답하는 것은 인심에 근본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의례를 제정하여 덕(德)을 이룸으로써, 사람은 매우 많으나 마음이 향하여 우러르는 데를 하나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심이 향하는 데를 몰라도 성경(誠敬)을 다할 수는 있고, 귀신을 헤아릴 수는 없어도 귀신이 오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인심을 모아 합치고 중지(衆志)를 모아 거느리는 도리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지극히 큰 것으로는 종묘(宗廟)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죽은 이를 살아 있을 때처럼 섬기고 없는 이를 있는 것처럼 섬기는 것이 지극한 효성입니다. 사직(社稷)에 제사하는 것은..

우리 옛 뿌리 2022.04.03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3

9목의 세 번째 항목은 이다. 인재를 가려 쓰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뭇 관원에게 달려 있으니, 관직은 사사로이 친근한 사람에게 주지 말고 오직 재능 있는 사람에게 주며, 관작은 악덕(惡德)한 사람에게 주지 말고 오직 어진 사람에게 주소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재를 가려 쓰는 것은 나라를 가진 이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본디 스스로 군자라 생각하고 소인을 소인으로 여기지만, 소인 또한 스스로 군자라 생각하고 군자를 소인으로 여기니, 각각 자기가 옳다 하여 서로 배척하면, 임금은 그 간사함과 바름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경방(京房)이 원제(元帝)에게 묻기를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은 어찌하여 위태로워졌겠습니까?’ 하..

우리 옛 뿌리 202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