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138

조선의 왕들은 누구의 젖을 먹고 자랐을까?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분유가 없었으니 모든 아이들은 젖을 먹고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은 어릴 때 왕비의 젖을 먹고 자랐을까? 조선시대의 사대부 집안에서는 유모를 들여 아이에게 대신 젖을 물리게 했는데, 이는 왕실도 마찬가지였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엄격한 심사를 통해 미리 유모를 선발하여 대기시켜 아이를 키울 준비를 시켰다. 그런데 그 유모의 신분은 대부분 천민이었다. 양가집 여인은 남녀유별의 유교적 윤리 때문에 쓸 수가 없어 결국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천민의 여자를 골라 유모를 삼았다. 몰론 아무나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종실의 여종이나 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內需司)의 여종 가운데서 골랐다. 그래서 옥체(玉體)로 불리는 조선 왕들의 귀한 몸은 아이러닉하게도 모두 천민의 젖을 먹고..

우리 옛 뿌리 2022.02.13

장동의 기로회 - 북원수회첩

겸재 정선은 한성 장동(壯洞)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내내 살며 뛰어난 화업을 이룩했다. 장동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효자동, 청운동 지역으로 백악산 서남쪽과 인왕산 동쪽 기슭이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도성 내의 ‘산천(山川)’으로 불릴 만큼 숲이 우거지고 물이 맑았던 곳이다. 궁궐과 가까우면서도 한적한 곳이라 안동 김씨 집안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여러 명문가의 세거지이기도 했다. 정선의 고조부 정연(鄭演)은 종2품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지만 증조부부터 3대에 걸쳐 생원, 진사를 뽑는 사마시에도 입격하지 못하여 정선 대에 이르러서는 집안이 쇠락한 상태였다. 정선은 부친이 일찍 사망한 탓에 홀어머니와 동생을 거느리고 소년 가장노릇을 하느라 과거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는지 일찍부터 화도(畵道)에 입문한 것으로..

우리 옛 뿌리 2022.01.13

세화 - 호랑이 그림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으로 호랑이 해, 그중에서도 ‘검은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는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산군(山君)으로 여겨지던 영물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 한 구석에는 산신각(山神閣)이 있고, 그 안에는 산신령과 함께 호랑이가 그려진 탱화가 걸려 있다. 산신각은 전통적으로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 기도를 드리던 장소다. 호랑이를 그린 옛 그림은 많다. 그 가운데서도 고 오주석선생은 김홍도가 그린 ‘소나무 아래의 호랑이’ 그림을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호랑이 그림으로 꼽았다. 호랑이 특유의 민첩하면서도 유연한 생태를 그대로 살려냈으며 수천 번의 붓질을 통해 그려낸 극사실적인 호랑이의 털도 경이롭고, 화폭을 구성하는 포치(布置)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김..

우리 옛 뿌리 2022.01.01

조선시대의 신고식

중종 36년인 1541년 12월, 사헌부에서 왕에게 이런 상소를 올렸다. "급제(及第)하여 출신(出身)하는 것은 곧 선비가 벼슬길에 들어가는 처음이므로 마땅히 예모(禮貌)를 삼가고 기개(氣槪)를 양성하여 임용(任用)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체 신래(新來)라 이름하여 멋대로 침학(侵虐)하기를,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온 낯에 오물을 칠하며, 잔치를 차리도록 독촉하여 먹고 마시기를 거리낌 없이 하되, 조금이라도 뜻에 맞지 않으면 그의 몸을 곤욕(困辱)하는 등 갖가지 추태를 부리고, 아랫사람들을 매질하는데 그 맷독[楚毒]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신래인 사람들이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지공에 대응하기에 바쁘며, 비천(卑賤)하고 오욕(汚辱)스러워 모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들..

우리 옛 뿌리 2021.12.30

왕릉 조성의 기록 - 산릉도감의궤

기록에 진심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왕과 왕비의 능을 조성하는 일도 기록으로 남겼다. 소위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능(陵)을 조성하게 된 경위와 전말 또 그에 따르는 의식과 절차가 모두 들어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는 모두 28종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선조 33년인 1600년에 선조의 비(妃)인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능을 지금의 동구릉(東九陵)에 있는 목릉(穆陵) 구역에 조성한 기록인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이다. 왕릉의 조성은 국상(國喪) 직후부터 임시기관인 산릉도감이 설치되어 담당하게 된다. 산릉도감은 토목과 건축 공사를 비롯하여 각종 석물의 제작과 설치, 시신의 매장, 묘역 주변 환경 정리에 이르기까지 왕릉 조성에 관계된 모든 일을..

우리 옛 뿌리 2021.12.24

계(契)

옛 사람들은 무슨 모임을 갖고 나면 그것을 그림과 글로 남겼다. 책 형태로 남기면 계첩(契帖)이라 했고 병풍이면 계병(契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계’라고 하면 주부들이 목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조직되는 계모임부터 연상이 되는 까닭에, 선비들의 모임을 기록한 것에 왜 ‘계(契)’자가 들어가는 것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契)’자가 ‘(연분이나 인연을) 맺는다’는 뜻을 갖는 한자임을 감안하면 ‘계(契)’는 지금의 동호회와 같이 모임을 뜻하는 ‘회(會)’의 뜻도 함께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대대로 우리나라에 계는 그야말로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했다고 한다. 주부들이 돈을 목적으로 하는 계는 수많은 형태의 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계는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부상..

우리 옛 뿌리 2021.12.20

조선의 기생 26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도 명성을 얻었던 기생들이 적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의 대중잡지였던 『삼천리』 제3권 제9호에 당시 이름을 날렸던 기생들을 조명한 글이 있다. 1931년 9월의 글이다. 춤 잘 추는 서도기생(西道妓生) 소리 잘하는 남도기생(南道妓生)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옛날 아름답던 노래와 춤을 겨우 지탱하여 가주는 남도기생, 서도기생은 누구, 누구들인가? 성주풀이의 김초향(金楚香) “성주본향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본일네라. 제비원에 솔씨를 받어 대평소평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 소부동이 되었네. 대부동이 되었네 얼화- 만수 얼화- 대세니라” 하고 청산류수가치 멋지게 넘어가는 한마디가 다방골 어떤 장명등 달린 집 일각대문에서 흘러 새어나온다. 아마 장안 일등명기 김초향(金楚香)이 고수 한성..

우리 옛 뿌리 2021.09.20

조선의 기생 25 - 권번

기생조합은 1918년에 일본식 교방(敎坊)의 명칭인 권번(券番)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기생이란 직업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허가제(許可制)였기 때문에 모든 기생들은 권번에 기적을 두어야만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권번은 기생들이 요정에 출입하는 것을 지휘, 감독하고 손님에게 받은 화대(花代)와 기생들이 정부에 바쳐야하는 세금까지도 관리했다. 아울러 권번은 동기(童妓)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쳐 직업적인 기생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역할도 담당했다. 이에 따라 광교조합은 한성권번(漢城券番)으로, 다동조합은 조선권번(朝鮮券番)으로 바뀌었고, 두 조합 뒤에 생긴 경화조합과 한남조합은 각기 대동권번(大同券番)과 한남권번(漢南券番)으로 개칭(改稱)되었다. 이 4개의 권번이 19010년대 한성의 기생들을 관리..

우리 옛 뿌리 2021.09.18

조선의 기생 24 - 기생조합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공사노비법(公私奴婢法)이 혁파된 뒤에도 관기(官妓)는 한동안 존속하였다. 그러다 1897년부터 지방의 관기가 해체되기 시작하였고 1908년에 궁중 관기까지 해산되면서 조선의 관기제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어 1908년 9월에는 '기생 및 창기 단속 시행령'이 제정되면서 기생들은 예전의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을 통합한 기구인 경무청(警務廳)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즉 모든 기생들은 기생조합소(妓生組合所)에 소속되어 가무영업의 허가를 받아야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1909년에 최초의 기생조합인 한성(漢城)기생조합소가 설립되었다. 한성기생조합소는 내의원(內醫院) 의녀(醫女)와 상의사(尙衣司)의 침선비(針線婢) 등 서울의 경기(京妓)들과 진연(進宴) ..

우리 옛 뿌리 2021.09.17

조선의 기생 23 - 청루(靑樓) 홍루(紅樓)

기방의 고객을 오입쟁이라 하는데, 강명관의 「조선풍속사」에는 이 오입쟁이들이 기방에 처음 나온 기생을 길들이는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한 사람이 좌중에 통할 말 있소.” “네, 무슨 말이요.” “처음 보는 계집 말 묻겠소.” 이렇게 운을 떼면 “같이 물읍시다.” 또는 잘 물으시오.“라고 한다. 이 말이 떨어지면 “이년아, 네가 명색이 무엇이냐?”라고 묻고, “기생이올시다.”라고 하면, “너 같은 기생은 처음 보았다. 이년아, 내려가 물이나 떠오너라.”하고 뺨을 약간 때린다. 이건 기생이 아니라 하인이 아니냐는 수작이다. 기생이 여전히 “기생이올시다.”라고 하면 “이년아, 죽어도 기생이야”라고 하고, 여기에 또 “기생이올시다.”라고 답하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네가 하- 기생이라 하니,..

우리 옛 뿌리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