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대 이후로는 서울에 악가무를 전업으로 하는 장악원 여기(女妓)를 따로 두지 않았다. 소위 경기(京妓)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이다. 물론 내의원, 혜민서의 의녀(醫女)와 공조, 상의원의 침선비(針線婢)는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들은 장악원 소속도 아니고 연향에 보조자로 동원될 뿐 악가무가 주업도 아니다. 그래서 궁중의 연향행사가 있으면 그때마다 각 지방에서 뽑아 올린 선상기(選上妓)들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궁궐 행사를 마치면 다시 자기 소속 고을로 돌아가는 체제로 바뀌었다. 이런 체제는 이후 조선 말기까지 계속 유지되었고, 영조 대에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도 “진연 때에, 여기 52명을 선상한다. 특별한 지시가 있으면 가감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서울에 따로 머물 곳이 없는 이들 선상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