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50살에 처음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정조가 이조판서 유언호에게 “지금 재주가 있는데도 등용되지 못한 채 불우하게 지내는 자가 누가 있는가?”고 묻자 유언호는 “신(臣)이 벼슬하기 전에 사귄 박지원이라는 자가 있사옵니다.”라고 답을 했다. 이에 정조도 “나도 오래전에 그 자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경(卿)이 책임지고 천거하도록 하라.” 해서 1786년 7월에 선공감감역에 임명되었다. 선공감(繕工監)은 공조(工曹) 소속으로 토목과 영선(營繕)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관서이고 감역(監役)은 종9품(從九品)의 관직이다. 박지원이 늦은 나이에 이런 미관말직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평생의 벗인 유언호도 그런 박지원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정조에게 그를 천거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