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163

연암 박지원 23 - 벼슬살이

박지원은 50살에 처음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정조가 이조판서 유언호에게 “지금 재주가 있는데도 등용되지 못한 채 불우하게 지내는 자가 누가 있는가?”고 묻자 유언호는 “신(臣)이 벼슬하기 전에 사귄 박지원이라는 자가 있사옵니다.”라고 답을 했다. 이에 정조도 “나도 오래전에 그 자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경(卿)이 책임지고 천거하도록 하라.” 해서 1786년 7월에 선공감감역에 임명되었다. 선공감(繕工監)은 공조(工曹) 소속으로 토목과 영선(營繕)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관서이고 감역(監役)은 종9품(從九品)의 관직이다. 박지원이 늦은 나이에 이런 미관말직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평생의 벗인 유언호도 그런 박지원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정조에게 그를 천거했던 것이다. ..

우리 선조들 2020.04.30

연암 박지원 21 - 허생전

정조 연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묵사동(墨寺洞)을 설명하면서 “옛날 허생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은거하였는데 집이 가난했으나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자못 사적이 있어 박연암이 그를 위해 전을 지었다"는 글이 있다. 이 글에 나오는 ‘허생(許生)’과 의 주인공이 같은 인물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의 내용을 보면 오히려 실재했던 ‘허생’이라는 인물에 착안하여 박지원이 창작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한경지략(漢京識略)』은 수도 한성부의 역사와 모습을 기록한 부지(府誌)1인데, 지은 이는 수헌거사(樹軒居士)로 되어 있다. 후세는 이 수헌거사를 4검서의 하나였던 유득공(柳得恭)의 아들 유본예(柳本藝)로 추정하고 있다. 허생이 살던 곳은 허생전 원문에는 ‘묵적동(墨積洞)’으로 나오는..

우리 선조들 2019.12.09

연암 박지원 20 - 옥갑야화

『열하일기』가 당대에 세간의 큰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진부한 관념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근간으로, 사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박지원은 그것을 고리타분하지 않은 문체로 풀어냈다. 박지원은 그가 늘 비판했던 사대부들의 판에 박힌 글과는 달리 구어체 중국어나 소설 문체도 사용하고 토속적인 속담을 섞기도 하였으며, 아랫사람들과 주고받은 농담까지도 거리낌없이 인용하였다. 거기에 해학과 풍자까지 곁들였다. 문체 때문에 정조에게 질책을 받고 일부 사대부들의 비난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글이 가볍거나 천박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해박한 지식이 글의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글 읽는 선비들에게는 내용이나 문체 모두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

우리 선조들 2019.12.07

연암 박지원 18 - 우상전 1

은 영조 때의 역관(歷官)이었던 우상(虞裳) 이상조(李湘藻, 1740 ~ 1766)1가 죽자 박지원이 그가 남긴 시와 행적을 모아 엮은 열전(列傳) 형식의 한문소설이다. 하지만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있던 끝부분이 , 과 같이 떨어져 나가, 전해지는 글은 완결본이 아니다. 박지원이 <우상전>을 쓴 것은 이상조가 죽은 1766년(영조 42) 이후로, 박지원이 서른이 넘은 때이다. 우상(虞裳)은 이상조의 자(字)이고, 호는 송목관(松穆館)이다.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나, 20세 때인 1759년(영조 35) 역과(譯科)에 합격하여, 뒤에 종6품인 사역원(司譯院)2 주부(主簿)3에 까지 올랐다. 그의 아버지 이덕방(李德芳) 역시 역관으로서 정5품의 상계(上階)인 통덕랑(通德郎)까지 올랐던 인물인..

우리 선조들 2019.11.29

연암 박지원 16 - 호질(虎叱)

양반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한 소설은 이다. 이 한문소설은 『열하일기(熱河日記)』의 「관내정사(關內程史)」편 7월 28일자에 실려 있다. 박지원은 을 실으면서 이 글의 출처에 대하여, 북경으로 가는 도중 하룻밤 묵었던 옥전현(玉田縣)의 심유붕(沈由朋)이라는 사람 점포 벽에 걸려 있는 격자(格子)에서 이 기문(奇文)을 발견했다고 그 경위를 밝혔다. 그래서 주인의 허락을 얻어 동행한 정진사와 함께 이 글을 베꼈다고 했다. 또한 의 본문을 게재한 말미에 에 대한 논평을 적으면서, 이 글은 근세 중국인이 비분강개하여 지은 것으로서 청조(淸祖)의 위선적인 정책과 그러한 청조에 곡학아세하며 일신의 안주를 추구한 한족(漢族) 출신 유학자들에 대한 풍자 비판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이로 인하여 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

우리 선조들 2019.11.25

연암 박지원 14 - 광문자전

광문(廣文) 또는 달문(達文)이라 불리는 의 주인공은 실존인물이다. 영조 초년에 태어나 정조 말년까지 생존했던 학자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은 『일몽고(一夢稿)』라는 인물지(人物誌)를 지었는데, 책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는 유학자, 선비, 문인, 화가, 실학자 등 영조, 정조 시대의 문화부흥기를 이끈 주역들을 분야별로 나누어 망라하였다. 그 가운데 각 방면의 재인(才人)들을 묶어 소개한 에는 달문이라는 이름으로 광문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달문이란 사람은 성씨를 알지 못하는데, 서울 종루 거리의 걸인이다. 의협을 숭상했으며 얼굴이 크고 이마가 넓었고 입이 커서 주먹이 들락거렸다. 그는 늘그막에도 상투를 틀지 않고 총각머리를 하였으며, 온통 기운 옷을 입고 성한 ..

우리 선조들 2019.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