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236

한국화(조선 후기)

한국적 화풍이 더욱 뚜렷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후기의 회화는 영조와 정조의 재위 연간을 전후한 시대를 의미한다. 영·정조 시대에 민족 자아의식의 발현을 토대로 새로운 학풍을 진작시키던 실학의 발흥은 정선에 의해 발전된 진경산수(眞景山水),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유행된 풍속화에 영향을 미쳐 특히 한국적인 특색이 두드러졌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절파화풍이 쇠퇴하고 남종문인화풍이 크게 유행하는 한편 청나라를 통해 서양화법이 전래되는 등, 전과는 다른 경향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힝 이 시대에는 서민들 사이에서 민화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나 등에서 보듯이 실제로 우리나라에 있는 산천을 새로운 화풍을 구사하여 그림으로써 후대의 화원과 민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

우리 옛 그림 2018.08.21

한국화(조선 전기/중기)

유학(儒學)을 기조로 한 조선시대는 불교를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삼았던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의 문화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 조선시대를 시종일관 지배했던 억불숭유정책은 당시의 문화를 검소하고 실용적이며 소박한 성격의 것으로 발전하게 했다. 이 점은 회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려의 불교적이고 귀족적인 성격을 탈피하여 사찰 중심의 건축 미술은 궁궐 중심으로, 불교 중심의 회화는 중국의 북종화 취향을 거친 뒤 남종화의 담담한 화풍으로 변모되었다. 아울러 고려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승려 화가들의 활동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전기는 대체로 조선왕조의 성립으로부터 16세기 초엽인 중종(中宗) 연간까지를 의미한다. 이 시기의 회화는 송·원(宋·元)의 화풍이 그대로 잔존하여 이른바 북종화(北宗..

우리 옛 그림 2018.08.21

한국화(조선시대 이전)

우리는 ‘동양화’ 하면 막연히 韓·中·日 세 나라의 그림 그 중에서도 산수화를 떠올리며 당연히 중국과 일본도 같은 개념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과연 중국이나 일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동양화’라는 말은 1888년 일본 경도사립예술대학의 전신인 경도부(京都府) 화학교(畵學校) 2과인 ‘서양화’와 대칭하여 중국 그림을 뜻하는 ‘한화(漢畵)’의 남종, 북종과 일본그림을 가리키는 동종(東宗) 3과를 총칭하는 의미로 1과를 지칭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탄생한 동양화라는 명칭이 1922년에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선화와 일본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동양의 그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양화’는 일본이 중국의 전통적인 그림과 그 영..

우리 옛 그림 2018.08.18

동양화 화론(畵論) 10 - 임천고치와 삼원법 2

곽희의 산수화론은 정형화된 투시원근법에 비해 화가에게 많은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다양한 시점과 환경에서 관조한 상을 모아 한 장의 그림 속에 구성해내는 것은 전적으로 화가의 주관과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고원의 색은 맑고 밝으며, 그 형세는 우뚝 솟아 있다. 심원의 색은 무겁고 어두우며, 그 의취는 겹겹이 쌓임에 있다. 평원의 색은 밝고 어두운 곳에 있으며, 그 의취는 화창하게 트여 아득하게 뻗어나감에 있다. 산을 높게 하고자 하면 산을 다 드러내지 말고, 안개와 아지랑이로 산허리를 가려야 하고 물을 멀게 하고자 하면 물을 다 드러내지 말고, 가리고 비쳐 그 물결을 끊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기교가 보태지는 것 또한 화가의 역량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곽희는 ‘포유어간(飽遊飫看)’, 곧 여러 산..

우리 옛 그림 2018.08.14

동양화 화론(畵論) 9 - 임천고치와 삼원법 1

송(宋)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후에 황실에서 오대의 화원제도를 계승하여 한림도화원(翰林圖畵院)을 설립하였다. 이 시대에 중국의 산수화가 많은 발전을 보였다. '육조의 서(書), 당의 시(詩), 송의 화(畵)'라는 말이 있듯이 송대는 중국회화가 만개한 시기이다. 송대(宋代)에는 화론(畵論)에도 빼어난 것이 많이 나왔다. 특히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의 삼원(三遠)을 이론적으로 확립시킨 곽희(郭熙)1와 그의 아들 곽사(郭思)의 공저(共著)인 「임천고치(林泉高致)」는 북송(北宋)의 대표적인 산수화론서로서, 후대의 작화(作畵)나 화론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청(淸)의 「사고전서四庫全書」2에는 여섯 편으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로 구성되었다. 앞의 네 편은 곽희가 지었고 뒤의 두 편은 곽사가..

우리 옛 그림 2018.08.14

동양화 화론(畵論) 8 - 준법(부벽, 마아, 운두, 반두)

8) 부벽준(斧劈皴) 부(斧)는 큰 도끼를 뜻하고 벽(劈)은 쪼갠다는 뜻이니까 부벽준(斧劈皴)은 큰 도끼로 내리쳐서 드러난 단면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붓 사용법을 이르는 말이다. 마른 먹을 묻힌 붓을 옆으로 뉘어 빠르게 내려 그으면 도끼로 내리친 것과 같은 단면을 보이는 거친 바위가 표현된다. 매우 박력 있는 효과가 연출되어 주로 험준한 산을 표현하는데 많이 쓰였는데 남송(南宋)의 마원, 하규부터 시작되어 명나라 절파화가들이 애용했다. 붓 면을 크게 사용한 것을 대부벽, 작은 것은 소부벽, 긴 것은 장부벽 등으로 나눠진다. 대부벽(大斧劈)은 큰 도끼로 강하게 찍었을 때의 모양으로 준법 중에서도 남성적이며 힘찬 화법으로 마원(馬遠) 과 하규(夏圭)에 의해 그려져 마하파(馬夏派)화풍으로 유명해 졌다. 소부..

우리 옛 그림 2018.08.09

동양화 화론(畵論) 7 - 준법(난마,절대,하엽,하색)

4) 난마준(亂麻皴) 피마준이 평행선(平行線)인 것과는 달리 선이 교차(交差)한다. 그렇지만 요령은 대체로 피마준과 같다. 난마(亂麻)준은 삼이 흐트러진 것과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왕개(王槪)는 「개자원화전」에서 피마준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린 여아가 흐트러진 베 타래를 간추리다, 일시 당황하여 손에서 떨어뜨려 그 실마리를 찾아낼 수가 없게 된 경우 이 또한 주름사위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절대로 아니다. 그물 벼릿줄에 가닥이 있어 어지럽지 아니함과 같으니, 옛 사람들의 주름들을 배우는 데는, 모두 모아 세우고, 떨어내고, 부수고, 깨고, 어지러운 가운데, 가지런한 굳셈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피마준에 부벽준을 섞는 법으로 왕개(王槪)가 즐겨 사용했다. 5) 절..

우리 옛 그림 2018.08.07

동양화 화론(畵論) 6 - 준법(우점준, 미점준, 피마준)

준법(皴法)이란 산수화를 그릴 때 산이나 바위의 입체감과 명암, 질감을 나타내고 나아가 음양(陰陽)의 향배(向背)까지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기법을 말한다. 준(皴)이란 글자는 ‘주름’ 또는 ‘트다, 틈이 생겨 갈라지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준(皴)을 의복에 비유한다면 '옷 주름'으로 볼 수 있고 산세(山勢)에 적용한다면 요철부(凹凸部)에 의해 생기어지는 굴곡을 주름같이 보이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준법은 대자연의 산석(山石)과 능곡(陵谷)을 직접 보고 관찰한 뒤,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한 필묵의 조합이지 지질학적으로 분류한 것이 아니다. 또 그런 준법을 써서 산수화를 그린 화가가 “나는 무슨 준법을 써서 그림을 그렸다.”고 밝힌 것도 아니었다. 준법(皴法)은 산수화의 가장 기본적..

우리 옛 그림 2018.08.06

동양화 화론(畵論) 5 - 동거파, 오파, 절파

동거파(董巨派)는 중국 남당(南唐, 937~975)의 화가 동원(童源)과 거연(巨然)의 화풍을 이어받은 후대의 화가들을 가리키는 말로 마하파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북송의 미불(米芾)은 동원의 그림이 지닌 ‘천진평담(天眞平淡)’을 극찬하였고 원대의 조맹부 역시 동거파를 가장 높이 평가하여 화단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황공망을 비롯한 원말 4대가1도 동거파 화풍 육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명대 중기에는 심주(沈周) 등 오파(吳派)가 흥하자 동거파의 전통이 집대성되어 그 후 문인화풍의 전거(典據)가 되었다. 명말에 동기창은 이 계보를 남종화로서 찬양하고, 상대적인 마하파(馬夏派) 계통인 절파를 비판하였다. 동거파 화풍은 험준한 산악보다는 강이나 호수 주변의 산수를 다루고 한겨울의 고목보다는 한여름의 잎이 무성..

우리 옛 그림 2018.08.01

동양화 화론(畵論) 4 - 마하파, 원체화

마하파(馬夏派)는 중국 남송(南宋)의 화원(畵院)에서 활약했던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형성된 화파로, 주로 직업 화가들 사이에서 추종되었다. 마하 화풍은 강남 지방의 특유한 자연 환경과 이를 향유하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근경에 역점을 두되, 한쪽 구석에 치우치게 하는 일각구도(一角構圖)를 이룬다. 원경은 안개 속에 잠긴 형태로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산과 암벽의 표면은 부벽준으로 처리하며, 굴곡이 심한 나무를 근경에 그려 넣는 것도 이 화파의 독특한 작풍이다. 남송의 수도였던 저장성 항주지방의 직업 화가들에게는 원대(元代) 이후에도 그 전통이 그대로 남아, 명대(明代) 전기인 15세기에는 절파의 융성과 더불어 부흥했다. 하지만 명대 후기에 문인화가 화단의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마하파 계통..

우리 옛 그림 201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