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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95 - 녹봉을 절약한 이익은 백성에게 돌아가야 한다.

●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4 관에서 받는 녹봉을 절약하여 그 지방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자기 농토의 수입으로 친척들을 돌보아 주면 원망이 없을 것이다. (節其官俸 以還土民 散其家穡 以贍親戚 則無怨矣)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벼슬살이가 왜 즐거운가. 남는 것은 집안 살림이다.” 하는데, 벼슬사는 동안 전장(田莊)에서 수확되는 것은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저축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니, 이것이 남는 것으로 토지를 더욱 늘릴 수 있음을 말하는 것..

목민심서 2021.12.11

김수철 3 - 담채산수

서양에 유토피아(Utopia)가 있다면 동양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理想鄕)이다. 그런데 서양의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nowhere)’의 개념이지만 동양의 무릉도원은 ‘어딘가에는 꼭 있을 것’이라 믿어지고 또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념이다. 김수철이 그린 에도 그런 생각이 담겨있다. 種桃隨處武陵春 복숭아나무 심은 곳마다 무릉도원의 봄이거늘 那必雲中去問津 어찌 곡 구름 속으로 들어가 나루터를 묻는가. 相見當年源裏客 그때의 도원(桃源) 속 나그네를 만나보니 多應本分力田人 본분이 응당 농사에 힘쓰는 사람이로세. 굳이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나루터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복숭아나무를 심어놓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림 속 아래쪽 ..

우리 옛 그림 2021.12.10

허균 49 - 장산인전(張山人傳)

벼슬살이에 문제가 될 만큼 도가와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허균은 「한정록」을 지을 만큼 은거(隱居)에 대해 동경하면서 동시에 양생술과 신선사상에도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선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일사소설(逸士小說)’이라 부르는데, 은 그런 류에 속하는 글이다. 장산인(張山人)의 이름은 한웅(漢雄),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임은 알 수 없다.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3대에 걸쳐 양의(瘍醫) 업무에 종사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에 상륙(商陸)을 먹고서 귀신을 볼 수도, 부릴 수도 있었다 한다. 나이 98세 때 40 정도로 보였는데, 출가(出家)하여 가신 곳도 알지 못했다. 그분이 집을 떠날 때, 2권의 책을 아들에게 주었으니 바로 《옥추경(玉樞經)》과 《운화현추(運化玄樞)》였..

우리 선조들 2021.12.09

목민심서 94 - 관가의 재물로 남을 돕는 것은 옳지 않다.

●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3 내 녹봉에 남는 것이 있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 관가의 재물을 빼내어 사인(私人)을 돌보아 주는 것은 예(禮)가 아니다. (我廩有餘 方可施人 竊公貨以賙私人 非禮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만약 공채(公債)가 실지로 많이 있으면 그 실정을 친척과 친구들에게 두루 알려,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와서 요구하게 해야 한다. 기분을 함부로 내다가 관고(官庫)를 탕진하여 아전들은 목을 매고 종들은 도망가며 그 해독이 온 경내에 미치게 되..

목민심서 2021.12.07

김수철 2 - 북산산수화첩

김수철은 산수화와 화훼화를 잘 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하는 김수철의 산수화들은 남종화풍(南宗畫風)이다. 그러나 김수철의 산수화는 전통적인 남종화풍을 따르면서도 속도감 있는 필치로 단순하게 윤곽을 잡고 맑은 담채(淡菜)로 색을 가미하며 담백하게 그리는 특징을 지녔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그의 산수화 특징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북산산수화첩(北山山水畵帖)》에도 잘 드러나 있다. 첩에는 미처 채색하지 못한 그림도 하나 함께 있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옛 그림 2021.12.06

허균 48 - 장생전(蔣生傳)

장생(蔣生)이란 사람은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인 줄을 알 수가 없었다. 기축년(1589, 선조22) 무렵에 서울에 왕래하며 걸식하면서 살아갔다. 그의 이름을 물으면 자기 역시 알지 못한다 하였고,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거주했던 곳을 물으면, “아버지는 밀양(密陽)의 좌수(座首)였는데 내가 태어난 후 세 살이 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께서 비첩(婢妾)의 속임수에 빠져 나를 농장(農莊) 종의 집으로 쫓아냈소. 15세에 종이 상민(常民)의 딸에게 장가들게 해주어 몇 해를 살다가 아내가 죽자 떠돌아다니며 호남(湖南)과 호서(湖西)의 수십 고을에 이르렀고 이제 서울까지 왔소.” 하였다. 그의 용모는 매우 우아하고 수려했으며 미목(眉目)도 그린 듯이 고왔다. 담소(談笑)를 잘하여 막힘이 없었고 더욱 노래..

우리 선조들 2021.12.05

목민심서 93 - 가난한 친구와 곤궁한 친척은 힘닿는 대로 도와줘야 한다.

●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2 가난한 친구나 궁한 친척들은 힘을 헤아려서 돌보아 주어야 한다. (貧交窮族 量力以周之)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한집안 사람들을 임지에 데리고 오지는 못하더라도 이들 중에 가난하여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식구를 따져서 매월 생활비를 대 주지 않을 수 없으며, 소공친(小功親) 중에서 가난하여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달 생활비를 대 주어야 하며,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곤경에 처했을 때만 돌보아 주면 될 것이다. ▶소공친(小功親..

목민심서 2021.12.03

병풍 50 - 강세황 병도

병도(屛圖)는 병풍그림이라는 뜻이다. 는 표암(豹菴) 강세황의 그림만으로 만든 8폭 병풍이다. 아래는 이 병풍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설명이다. 강세황(字 光之, 號 豹菴)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서화가로서 담백한 필치, 먹빛의 자연스러운 변화, 맑은 채색 등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그는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남달리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춰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그림을 평가하는 데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18세기 조선 화단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한국적인 남종(南宗) 문인화풍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여덟 폭으로 이루어진 이 병풍에서 강세황의 유려한 필선과 맑은 채색의 구사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폭의 필치와 채색의 사용에서 일관선이 보..

우리 옛 병풍 2021.12.02

목민심서 92 - 기꺼이 베푸는 것이 덕을 심는 근본이다.

●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1 절약만 하고 쓰지 않으면 친척이 멀어지니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이 바로 덕(德)을 심는 근본이다. (節而不散 親戚畔之 樂施者 樹德之本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못에 물이 괴어 있는 것은 흘러내려서 만물을 적셔 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약하는 자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고 절약하지 못하는 자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한다. 기생을 가까이하고 광대를 부르며, 가야금을 타고 피리를 불리며, 비단옷을 걸치고 높은 말 좋은 안장을 사용..

목민심서 2021.11.30

허균 46 -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역시 처럼 매우 짧은 글이다. 조선시대의 불우했던 이달(李達)이라는 시인을 조명했다. 이달은 허난설헌과 허균의 시(詩) 스승이기도 했다. 허균이 이 작품을 통하여 ‘능력은 있으나 적서(嫡庶)차별에 의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불우한 일생을 작품으로 형상화시켜 모순된 사회를 비판하려고 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적자와 서자의 차별에 대한 허균의 관심은 높이살만 할지라도, 시를 잘 짓는다는 것 하나로 관직에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아무리 글재주를 통하여 인재를 뽑았던 조선시대라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조선시대에 관리가 되려면 시 짓는 재주뿐만 아니라 거경궁리(居敬窮理)나 극기복례(克己復禮) 같은 소양도 겸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손곡산인(蓀谷山人) 이달(李達)의 ..

우리 선조들 202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