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에 의하면 1592년 6월 13일 분조(分朝)가 결정됨으로 해서 광해군은 그 다음날인 6월 14일부터 분조를 이끌고 선조가 머물고 있는 의주를 떠났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과 형조판서, 좌찬성 등 10여명의 대신이 분조를 따랐다. 광해군은 평안도의 맹산(孟山), 양덕(陽德), 황해도의 곡산(谷山)을 거쳐, 7월 9일 강원도 이천(伊川)에 도착해 이곳에서 20일간 머물렀다. 광해군은 각 처의 장수들과 의병장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독려하고 공을 칭찬하고 또 상과 관직을 내렸다. 그러다 왜구의 위협이 가까워지자 다시 황해도와 평안도 성천을 거쳐 영변에 머물며 분조를 이끌어갔다.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면서 자리가 빈 고을의 수령(守令)을 임명하고, 지방관들이 올린 상소와 보고를 처리하고, 무장들 사이의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