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이 5호 16국이 되어야 세계가 평안하다 85

조선시대 비옷

겸재정선미술관이 지난 2019년 11월, 미술관에서 새롭게 소장하게 된 을 공개한 일이 있었다. ‘백납(百納)’은 ‘백가지를 꿰맨다’는 뜻으로, 온갖 종류의 그림들을 모아 만든 병풍이다. 겸재정선미술관에서 공개한 병풍에는 조선과 중국 화가들의 그림 42점이 망라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았던 것은 정선의 였다. 사문탈사(寺門脫蓑)는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다’의 뜻이다. 는 율곡 이이의 고사(故事)를 그린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고사의 내용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선의 「경교명승첩」하첩(下帖)의 와 거기에 함께 장첩 되어 있는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의 편지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편지는 이병연이 1741년 겨울에 양천 현령으로 있던 ..

우리 옛 그림 2021.10.02

허균 29 - 한정록(閑情錄) 임탄(任誕) 1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임탄(任誕)은 8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세속의 울타리를 벗어난 선비의 소행(所行)은 마음대로여서 법도(法度)가 없지만, 그 풍류(風流)와 아취(雅趣)는 속진(俗塵)을 씻거나 더러움을 맑게 하기에 족하다. 그러므로 제8 ‘임탄(任誕)’으로 한다. ● 혜강(嵇康)ㆍ완적(阮籍)ㆍ산도(山濤)ㆍ유령(劉伶)이 죽림(竹林)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왕융(王戎)이 늦게 왔다. 보병(步兵 : 완적(阮籍)의 별칭)이 말하기를, “속물(俗物)이 또 와서 흥(興)이 깨졌다.” 하니, 왕융은 웃으며 말하였다. “경배(卿輩)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 《세설신어(世說新語)》 ▶ 혜강..

우리 선조들 2021.10.01

허균 27 - 한정록(閑情錄) 숭검(崇儉) 1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숭검(崇儉)은 7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퇴거(退去)한 사람은 맛 좋은 음식이나 화려한 의복을 취해서는 안 되고 오직 검소해야 돈도 절약이 되고 복(福)도 기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7 ‘숭검(崇儉)’으로 한다.” ● 안자(晏子)가 제 나라 재상으로 한 벌의 여우 갖옷[狐裘]을 30년 동안이나 입었다. 《권계총서(勸誡叢書)》 ● 손숙오(孫叔敖)는 초 나라 영윤(令尹)이 되어 사슴 갖옷[鹿裘]으로 조회하였으며 그가 살고 있던 가옥은 띠로 지붕을 덮은, 비바람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집이었다. 《권계총서》 ● 오고대부(五羖大夫 : 백리해(百里奚))는 피곤하여도..

우리 선조들 2021.09.29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예전 우리나라의 자랑이 ‘높고 푸른 가을하늘’ 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기자들이 방금 공항에 내린 외국인에게 다짜고짜 “한국의 가을하늘이 어떠냐?”고 묻고는 그 외국인의 입 발린 칭찬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싣곤 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Do you know...?" 이니 기자들은 정말 공부도 안 하고 취재준비도 안 하나 보다. 오랫동안 회색 구름과 비만 보다가 간만에 하늘이 개였다. 시골이라도 이런 색의 하늘 보기는 쉽지 않다. 지금은 낯선 이 시리도록 파란 빛깔의 하늘이 어린 시절에는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밤이면 도시에서도 은하수는 물론 온 하늘을 덮은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꼭 누군가가 견우직녀 얘기를 꺼냈고 서로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이 별 저별을 손가락질하며 견우..

허균 19 - 한정록(閑情錄) 한적(閒適) 2

● 낙성(洛城) 안팎 60~70리 사이의 모든 도관(道觀)과 불사(佛寺)와 고적지(古跡址)와 별장 가운데 천석(泉石)이나 화죽(花竹)이 있는 곳은 놀아보지 않은 데가 없고, 좋은 술과 거문고가 있는 인가(人家)는 들러보지 않은 데가 없고, 도서(圖書)와 가무(歌舞)가 있는 곳은 구경하지 않은 데가 없다. 낙천(洛川)의 수재(守宰)로부터 포의가(布衣家)에 이르기까지 연유(宴遊 : 잔치를 베풀어 즐겁게 놂)할 일로 부르는 자가 있으면 또한 때때로 찾아갔다. 매양 좋은 계절, 좋은 경치나 혹은 눈 내린 아침, 달뜨는 저녁에 호사자(好事者)들이 서로 찾아올 때면, 반드시 그들을 위해 먼저 술항아리를 꺼내 마시고 다음엔 시 상자[詩篋]를 열어 놓고 읊으며, 술이 이미 거나해지면 이내 거문고를 가져다가 궁성(宮聲)..

우리 선조들 2021.09.02

허균 17 - 한정록(閑情錄) 고일(高逸) 2

● 양적(陽翟)의 신군(辛君)은 선배들 가운데 어진 사람이다. 어려서 아버지의 덕으로 벼슬을 얻었으나 은거(隱居)하고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그는 소자용(蘇子容) 승상(丞相)의 처남(妻男)이고 이정(二程 : 정호(程顥)ㆍ정이(程頤)) 선생의 외숙(外叔)이다. 당시 소 승상이 한창 성할 때여서 자주 그를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천(伊川 : 정이(程頤)) 선생이 원풍(元豐) 연간에 해마다 낙중(洛中)으로부터 와서 영창(潁昌)에 있는 한지국(韓持國 : 지국은 한유(韓維)의 자)을 방문했는데, 양적을 지날 때는 반드시 신군의 집에서 10여 일씩 머무르곤 하였다. 그의 집에는 7칸짜리 대옥(大屋)이 있었는데, 집 뒤에는 온통 기화이초(奇花異草)가 피어 있어 평생토록 자락(自樂)하였다. 《와유록(臥遊錄)》 ●..

우리 선조들 2021.08.18

허균 13 - 한정록(閑情錄) 은둔(隱遁) 1

● 소부(巢父)는 요(堯) 시절의 은자(隱者)인데, 산 속에 살며 세속의 이욕(利慾)을 도모하지 않았다. 늙자 나무 위에 집을 만들어 거기에서 자므로 당시 사람들이 ‘소부’라고 했다. 요(堯)가 천하(天下)를 허유(許由)에게 양여(讓與)하려 할 때, 허유가 소부에게 가서 그 말을 하자 소부가, “자네는 어찌하여 자네의 형체를 숨기지 않고 자네의 빛깔을 감추지 않는가?” 하며, 그의 가슴을 밀쳐 버리므로 허유가 서글픔을 주체하지 못하여, 청랭(淸冷)한 물가를 지나다가 귀를 씻고 눈을 씻으며 말하기를, “전일에 탐욕스러운 말을 들음으로써 나의 벗을 저버리게 되었도다.” 하고, 드디어 떠나 일생을 마치도록 서로 만나지 않았다. 《고사전(高士傳)》 ● 허유는 사람됨이 의리를 지키고 행신이 발라, 부정한 자리에는..

우리 선조들 2021.08.09

목민심서 64 - 부친이 아들의 임지에 따라가는 일은 피하라.

● 율기(律己) 제3조 제가(齊家) 2 국법에 어머니가 아들의 임지에 가서 봉양을 받으면 나라에서 그 비용을 대주고, 아버지의 경우에는 그 비용을 회계해 주지 않는다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國法 母之就養則有公賜 父之就養 不會其費 意有在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가정을 바로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제가(齊家)는 그 가운데 3번째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임지에 가서 있으면 친구들은 그 부친을 춘부(春府)라 부르고, 이속이나 하인들은 대감(大監)이라 부른다. 대감이 나이 60이 넘어 노쇠해져서 봉양을 받아야 할 처지이면 부득이 따라가지만, 그렇지..

목민심서 2021.08.06

조선시대에는 어디서 자고 먹으며 여행했을까? 3

인조 때인 1644년 무과(武科)에 급제한 박취문(朴就文, 1617 ~ 1690)은 바로 그 해에 함경도로 출발하여 회령에서 약 1년간 부방(赴防)을 했다. 그리고 부방을 위해 길을 떠나 돌아올 때까지의 일을 일기로 남겼고, 그보다 40년 앞서 부방을 했던 그의 아버지 박계숙의 일기와 함께 「부북일기(赴北日記)」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 사람의 일기에는 당시 사람들이 어디서 자고 먹으며 어떻게 여행했는지를 알 수 있는 생생한 기록들이 담겨있다. 부자는 모두 무과(武科)에 급제하였으나 당시에는 아직 벼슬에 오르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여행이 북쪽 국경을 지키는 임무라는 공무(公務)를 위한 여행이었기에 그들도 관원(官員)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연도(沿道)의 각 역참(驛站)에서 ..

우리 옛 뿌리 2021.08.02